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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3) 주님의 섭리는 오묘하고 신비하여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17 조회수565 추천수5 반대(0) 신고

 

우리 구역 반원들의 판공성사표를 받아다 놓은지 사흘이 지났는데도 아직 돌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계속 몸 컨디션이 좋지않아서다. 이번이 성사표 돌리는 마지막 봉사가 될 거라는 생각에 후련하기도 하고 성사 보기 전에 빨리 돌려야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2001년도 4월 말에 반장일을 맡은지 벌써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2002년도 3월 부활절을 앞둔 성사표 돌리기와 12월 성탄을 앞둔 성사표 돌리기 때는 그 해 일년동안 심한 건강상의 문제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무슨 정신으로 그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는 꼭 내가 해야할 일로 생각하고 아픈 중에도 책임을 다 했다. 성전건축을 위한 준비단계로 하는 판매를 위해 수시로 시간을 내야 하는 일도 성당 청소를 하는 일도 반모임을 하는 일도 제반 여러가지 반장이 해야할 일을 빠지지 않고 수행하면서 내 평소의 성격에 비해서는 분명 억척스러움을 보였다. 그러면서 건강상의 어려움도 정신적인 불안감도 극복하면서 신앙적으로도 많이 성숙하는 은총을 받았다는 생각이다.

 

가장 열정을 가지고 봉사했다고 생각되는 기간은 처음 반장을 맡으면서의 3년간이었다. 그 후로는 매너리즘(?)에 빠졌다고나 할까, 어떡하면 반장자리를 내놓을까 하는 생각으로  마지못해, 하는 수 없이, 지금껏 흘러왔다는 느낌이다.

더우기 재작년 8월에 재건축 문제로 다른 구역으로 이사오면서 먼저 살던 그 구역은 거리가 있는데도 성전건축이 끝날 때까지 반구역장들은 그대로 자리를 지키라는 신부님의 엄명(?)으로 지내왔다. 금년 1월에 있은 구역 미사때 총구역장에게 나 반장 좀 그만 두게 해달라고 했더니 4월에 있을 성전 축성식 때까지만 참아 달라고 했다. 축성식만 끝나면 어차피 그만 둘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래 4월까지만 참자! 했던 것이다. 지금 건강이 안좋지만 그래도 2002년도 보다는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몸상태가 아니라 이미 군기가 빠져버린, 열정이 사라져버린 마음이 문제가 아닌가 싶다.

 

반장일을 하면서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2002년도 12월로 기억된다.

12월에 성사표를 돌리려면 달력과 함께 돌려야 하므로 대개는 전화로 확인을 하고 방문을 한다. 성사표는 우선 가족별로 분리를 하여 떼어내고, 번지수가 비슷한 단독 주택, 같은 연립, 같은 아파트별로 분리를 해 놓는다. 그리고 나서 방문을 해야 효율적으로 돌릴 수가 있다. 그때의 기억 중에서 어떤 할머니에게 성사표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통화를 하고 나서 들려도 좋다는 말을 듣고   5분만에 그 연립주택의 3층으로 가서 벨을 눌렀는데  젊은 남자의 벼락치는  고함소리가 문 저쪽에서 터져나왔다. "가요 가, 가란 말이야" 하는 고함이었다. 집을 잘 못 찾아왔나 싶어 호수를 확인했는데 틀림없었다. 다시 벨을 눌러 성당에서 왔노라고 했더니 다짜고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상욕으로 소리소리 질러대는 것이었다. "가라는데 왜 X X 이야? 이 X X X아" 나는 난생 처음으로 이 나라에서는 그 이상 더 심할 수 없는 상욕을 듣고 너무 놀라 심장이 펄떡펄떡 뛰는 가슴으로 정신없이 계단을 뛰어내려 왔다. 

더 머뭇대다가는  그 남자가 현관문을 박차고 뛰어나와 주먹으로 한 대 칠 것 같은 기세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때의 기분은 완전 밑바닥이었다.

내가 왜 저런 허접한 인간에게 이런 심한 욕을 먹으면서,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이 일을 해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에 눈물까지 찔끔거렸다.

 

그때 내가 그 남자의 얼굴을 보지 못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었다. 아마도 얼굴을 보았더라면 같은 동네에서 어쩌다 얼굴이 마주칠 적도 있었을 터이니 두고두고 그 밑바닥 기분을 상기하게 되었을 것이고 혹시라도 미워하는 감정이 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사표를 돌리다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덤덤하게 무표정으로 받는 사람, 친절하게 웃는 얼굴로 수고 많다고 하면서 정중하게 인사하는 사람.... 한 번은 성당에서 나온 수건과 함께 돌려야해서 전화로 방문하겠다고 했더니 퉁명스럽게 성당 사무실에 맡기라고 한다. 수건 때문에 안된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오라고 한다. 직장땜에 낮에는 도통 집에 없는 여자여서 나도 피곤하지만 그래도 밤중에라도 전해주려 하는데 이건 완전 반장은 무슨 하인이나 귀찮은 빚쟁이쯤으로 대하는 언사에 속이 부글거리면서도 꾹꾹 눌러 참으며 참으로 많은 수양의 기회가 되었다.

 

그래도 친절한 신자들이 대부분이어서 보람으로 여기며 그 일을 했다.

12월 판공성사표 돌릴 적엔 너무 추워 더욱이 나는 추위를 심하게 타고  피부가 약해서 얼굴이 잘 익은 토마토처럼 새빨갛게 되어 꽁꽁 얼고 갈라지면서 하는 그 고충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알 것인가.

그런 중에서도 한 할머니는 잊을 수 없는 분이다.

노상 하벌통처럼 대문이 열려있는 단독주택의 마당을 들어서서 좁다란 골목을 빙 한바퀴를 돌아가면 부엌문이 달린 아마도 삼분의 일은 지하일 것같은 셋방에 사는 할머니다. 70대 중반쯤 되는 분이다. 성사표를 가지고 가서 문을 두드리면 얼굴에 온통 스마일을 달고 맞아주는 그 할머니, 어린애같이 천진한 그 웃음은 천사가 있다면 아마 그런 웃음을 짓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보는 사람 마음까지 어린애처럼 순진하게 만든다.

 

그 할머니는 안채에서 낮에는 일을 하고 있었다. 가내공업식으로 하는 안채엔 언젠가 한 번 보니 알록달록한 천이 잔뜩 쌓여 있었다. 할머니는 내게 세 번이나 머풀러를 주셨다. 비록 고급은 아니고 내 취향도 아닌 색깔이었지만 할머니는 당신이 일하는 그곳에서 만드는 머플러 두 개가 든 비닐 봉투를 12월마다 선물하는 것이었다.

친정 어머니께 드렸더니 노인이라 그런지 제법 화사해 보였고  참 좋아 하셨다.

 

이번 정월 대보름 즈음하여 본당에서 척사대회가 있어 티켓을 판매했는데 어느 자매가 2000원짜리 티켓 다섯장을 팔아주면서 자기는 그날 새벽미사 보고 어디 간다고 누구 필요한 사람에게 주라고 했다.

그 할머니가 생각나서 추운 날씨에 일부러 그 동네엘 갔다.

할머니에게 만원어치 공짜표를 드려서 그날 상품 좀 타게 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할머니는 마침 안채에서 일을 하고 계시다가 나오셨다.

표 공짜이니까 주일날 윷놀이 하고 상품 타시라고 했더니 " 아이 난 늙어서 그런 거 못해요." 아이처럼 수줍게 웃으며 사양을 하신다. 아무리 권해도 난 그런거 못해요 하신다.

난 반장 노릇 하면서 그렇게 순진하고 어린애처럼 맑은 모습으로 내마음까지 동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그 할머니를 만난 것이 행운이라 생각하며 돌아오는 길은, 뼛속까지 파고드는 매운 날씨임에도 마음은 한없이 따뜻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성사표를 분리하면서 내 머리 속을 전광석화처럼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그 연립주택에 갔을 때, 소리소리 지르며 욕을 해대던 젊은 남자의 기억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때 얼핏 보았던 그 성사표의 이름과 주민등록 앞자리 번호에 대한 기억이 났는지 모르겠다. 사실 수많은 신자들의 이름과 나이와 전화번호 주소까지 기억하기란 가당치도 않다. 더욱이 그때는 반장된지도 일년밖에 안되었으니.....그 연립주택은 그 얼마 후에 헐리고 지금은 재건축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니 그 스마일 할머니 주민번호의 30몇년생이라는 기억과 이름이 어렴풋하게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 소리지르며 욕하던 남자는 바로 할머니의 아들임이 확실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나는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날 그 모자는 나와 전화 통화한 후 5,6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토록 아들은 화가 나서 엉뚱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했는지 모른다. 사실은 모자간에 싸우고 있는 중이었는데 내가 갔던 건 아니었을까. 아무튼 아파트가 재건축되어 입주한지 꽤 되었는데도 단독에서 세살고 있는 걸 보면 아마 그 연립에서도 세를 살았나 보다. 중요한 건 아들에게서 받은 마음의 상처를 그 어머니가 그 몇배 이상으로 보상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왜 이제 반장일도 끝나가려는 이 마당에 그 기억이 났을까!

 

주님은 그당시 일정부분은 자만으로 차있던 나의 마음에 그렇게 상처를 주고 한 편으론 그 상처를 치유하게 하는 기회를 주시면서 내마음에 차있던 교만함을 버리게 하는 훈련을 시키신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주님은 주님의 일을 하는 자에게 그렇게 오묘하고도 신비로운 은총으로 답을 해주시는 것일까. 그 아들에게서 받은 상처를 그의 어머니를 통해 치유받게 하시는 이 오묘하고도 놀라운 신비로움! 참으로 주님의 깊은 섭리는 알 길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숙연해지는 느낌이다.

나는 그 남자가 그 할머니의 아들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4년전의 상처가 눈녹듯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차오르는 행복감으로 마음이 충만해짐을 느꼈다.

할머니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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