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제의 일기]* 마음의 눈과 귀 ................. 이창덕 신부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18 조회수826 추천수11 반대(0) 신고

                                                                           * 이현철 님의 글에서 빌려온 사진

 

  주님,

삶의 회의와 갖은 상념으로

하고 많은 밤들을 어둡게 지새우다가

기지개 켜는 소리로 보고드립니다.

 

시각 장애자 중 신자들의 모임인

'글라라 회' 창립 2 주년과

맹인 선교회 창립 1주년 기념 '한줄기 빛' 과 '참빛' 의

잔치를 마련하기 위해

우리는 부푼 가슴을 움츠려 심호흡을 했습니다.

 

그때 거친 당신의 숨결도 들었습니다.

 

그날,

제단에다 무대를 꾸미면서 못내 염려되었던 것은

당신이 보실 수 있도록 하기위해,

숨어 계신 성체를 옮겨 모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땅히 모실 장소가 없는 저희 성당이라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어릿광대의 웃음을 짓고서

당신을 그 잔치의 주빈으로 초대했기 때문입니다.

 

'한줄기 빛' 그 빛을 보고자 감겨진 눈을 움직거리며

한 어린 소녀가 등단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소원을 얘기했습니다.

 

그 소원은

"하얀 백지 위에 빨강색도 파랑색도 칠해 보고 싶고

그것이 어떤 빛깔이며 얼마나 고운지 보고 싶다" 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녀는 그 색깔들을 귀로써 듣고  입으로 말할 순 있지만

정작 보아야 할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안타까움을

당신께 기도로 올렸습니다.

 

마음의 눈으로 색깔을 볼 수 있도록

청중들은 그 소녀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때 그 소녀의 동공 없는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고

눈물은 조명을 받아 한줄기 빛이 되었습니다.

 

주님,

빛을 보여달라고 하기 전에 스스로 빛이 되자는

'참빛'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맹인의 음악제라서 '청중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으로

흠짓 몸을 떨었습니다.

 

그 음악제는

숨어든 비운을 거부하는 도리질의 축제였습니다.

혈류를 삼켰다가 다시 토해내는 듯한 그 노래들은..

하나의 기도였습니다.

 

심미안으로 꿰뚫어 본 진실을 표출하는 성업(聖業)이었습니다.

땀으로 응집되었다가 퉁겨지는 소리 다음엔

한 발자국의 가능성을 귀로 확인하는 작업이 뒤따랐습니다.

 

뜨거운 눈시울로 맞이한 사람들은

빈객의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제일 앞자리에서

가장 많은 박수를 하며 환호하는 사람들은 뜻밖에도

농아들이었습니다.

 

행사 후에 맹인들과 농아들은

그 누구보다도 편히 웃음을 나눌 수 있는 이웃이었습니다.

 

초대해 준 맹인들에게 감사하는 답으로

농아들은 무언극에 맹인들을 초대하는 것이었습니다.

 

맹인들의 음악제를 농아들이 감상하고

농아들의 무언극에 맹인들이 초대받아

서로를 성원하는

그 특이한 이웃의 끈끈한 정은

주님,

당신이 심어 주셨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당신의 마음으로 보고,

그들의 소리를 당신의 마음으로 들으니

당신은 공통분모가 되어 그들을 잇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빛의 잔치는 그 순간이었을 뿐,

그들은 빛을 찾기 위해

또 흰 지팡이로 숱한 어둠을 제쳐야 합니다

 

그 행사가 있은 후 주님,

당신은 한 맹인을 저에게 보내셨습니다.

 

서른네 살의 훤칠한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형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두렵고 서러운 삶의 도정에서 비척이고 있었습니다.

어려서 폭발사고로 집과 가족을 잃고

눈마저 잃어 이곳저곳 떠돌아 다니다가

대전 맹인학교에서 고등교육까지 마쳤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졸업과 동시에 학교를 떠나야 하지만

그 한몸을 의탁할 방 한 칸이 없다는 것입니다.

 

두 달 동안 흰 지팡이를 휘두르며

자신의 몸을 지탱할 곳을 찾았지만

가는 곳마다 외면을 당했다고 합니다.

 

익힌 침술로 반드시 자립하여

불우한 이웃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텐데.....

 

주님,

"먹을 것이 있는 자의 보이기 위한 단식은 사치입니다" 란

그의 절규가 귀에 맴돕니다.

 

그리고 못내

이 사제의 가슴을 쥐어뜯는 것은.....

 

그가 돌아서면서 먼 하늘, 당신을 응시하고는

"나에게는 죽을 권리마저 없습니다.

'베드로'라는 세례명이 빼앗아 갔습니다." 라는 독백이었습니다.

 

이 소리를 사방에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유행인 '민주화 소리'에 묻혔습니다.

 

주님,

어떤 소리가 꽹가리입니까?

 

이 응답을 기다리며..

한때나마..

오늘의 교회를 미워한 죄에 대하여

용서 청합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