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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불공주<1> / 예수회 신원식 신부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19 조회수720 추천수6 반대(0) 신고

3월 19일 (일)요일 (요한 2, 13-25)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19절)

 

가톨릭 출판사에서 있었던 가르멜 동정녀회 주관의 관상피정 중의 신원식 신부님의 강론 말씀입니다.

 

얼마전에 TV에서 토요일 저녁마다 하는 프로그램에서 "우리 아이가 이렇게 달라졌어요." 라는 작은 제목중에 '이불 공주' 라는 프로를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나온 여아의 별명이 이불 공주인데 왜 이불공주인가? 

 

그 여자 아이는 24시간 그 이불을 옆에 끼고 다닙니다. 그게 있어야 마음이 안심이 되고 없으면 난리가 납니다. 그 이불과 똑같이 만들어 놓아도 가짜는 금방 알아냅니다. 냄새로 아는 것입니다. 제 조카도 어렸을 때 이와 유사한 행동을 보였는데 왜 그랬는지 몰랐다가 이 프로를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이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 아이의 목숨 만큼 중요합니다. 이불을 빼앗기면 새파랗게 죽어갑니다. 이불을 빨 때는 대체용 이불을 주는데 빨래를 하고 나면 바로 그 이불을 손에 쥐어 주어야 합니다.

 

어른들 생각에는 "뭐가 그리 중요한가?"... 하지만 아이에게는 목숨보다 소중하고 그 이불이 없으면 불안해 합니다. 그 아이에게 이불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그 원인은 엄마의 사랑이 중요한 것입니다. 

 

포근하고 따뜻한 이불이 그 엄마의 사랑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 이불이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의 사랑을 대체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원인을 알고 엄마와 아빠가 사랑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불에 대해 깜박깜박 잊다가 나중에는 이불의 존재에 대해서 완전히 잊어 버립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가 모두 이불자락을 한 자락 씩 끼고 사는구나! 어른들이 볼때는 불쌍하고 바보같이 느끼지만 우리도 한 자락 씩 끼고 살고, 여러자락 끼고 살 수도 있고, 그 이불이 없으면 뒤집어 집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어머니의 사랑이듯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안에 가득차면 우리가 끼고 살던 이불은 까맣게 잊게 될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어떤 이불자락을 끼고 사는지? 돈, 돈이 없으면 자살하고, 죽는 것 같고 그렇습니다. 그 아이가 이불이 없으면 죽는다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제가 예수회의 수도회에 입회한 것이 20년 전 2월 20일입니다. 어제 청양에서 동기생 6명이 다 모였는데 미사를 같이 하면서 다들 훌쩍 훌쩍 울었습니다. 잘 살았든 못 살았든 20년을 살았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미사를 같이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라는 말씀이 저한테는 "네 성전을 허물어라, 네 성전이 허물어져야한다." 그렇게 다가온다고... 

 

유다인에게는 성전이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하나만 있고 지방에 있는 것은 회랑이라고 합니다. 성전을 크고 아름답게 지었고 거기에 하느님이 계시다고 생각 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성전은 혼란스럽고 시끄럽고 온갖 장사꾼들로 쌓여 있었습니다. 성전안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이 정말 하느님의 뜻과는 반대되고 사람을 속박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이 성전을 세우신 것입니다.

 

유다인들에게는 성전이 절대적인 것이고 무너지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솔로몬 왕 때 지은 것이 한 번 무너지고 그 후에 다시 한 번 지은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그 성전이 바벨탑처럼 되었습니다.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고 사람을 속박하는 도구로 전락해버렸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워진 성전, 사람들이 하느님께 기도하고 구원을 청하는 성전이 사람을 속박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종교나 신앙이든지 사랑이 배제되면 이데오르기나 신념에 불과합니다.

 

그 율법으로 사람을 단죄하고 끊임 없이 사람을 압박하는 도구가 되니까 예수님께서 성전을 허물고 새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같은 동료 신부님들과 미사를 드리면서 나눈 것은 내가 20년간 수도 생활하고 사제 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성전을 허문 작업이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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