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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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21 조회수713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6년 3월 21일 사순 제3주간 화요일

 

 

 

제 1독서 다니엘 3,25. 34-43

 

복음 마태오 18,21-35

 

 

이번 주는 기분이 너무나도 좋은 주간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좋아하는 모임이 계속 이어지거든요. 우선 어제는 동창신부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사제 전체 교육이 있어서 인천교구의 모든 신부님들 모임이 있지요. 그리고 내일은 한 달에 한 번씩 인천교구 신부들이 모여서 그 본당 공동체를 위해서 함께 미사를 하고 미사 후에는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 있답니다. 그렇다면 제가 좋아하는 모임은 과연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바로 사제 모임입니다. 어렵고 힘들었을 때, 이 사제 모임을 통해서 위로를 받고 그래서 힘을 얻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 사제 모임에는 어떻게든 참석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저의 삶에 있어 힘이 되는 사제 모임이 세 차례나 연달아 있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문득 왜 사제 모임만을 좋아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즉, 같은 지향을 가지고 같은 일을 하니 서로의 공감대가 이루어지기 때문이겠지요.

이렇게 서로 같은 지향을 가지고 같은 일을 해나갈 때, 우리들은 보다 더 긍정적인 마음과 사랑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살다보면 함께 살을 비비며 사는 가족 안에서도 서로 원수가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이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바로 서로 같은 지향을 바라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지향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인정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문제는 나에게 있었습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토록 미워했었던 것이고, 판단하고 단죄했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제 같은 곳을 바라보라고 그 당시에는 있을 수 없는 파격적인 원칙을 하나 제안하십니다. 바로 사랑의 원칙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율법에 따르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아주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를 훨씬 뛰어넘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을 하시지요. 즉, 같은 곳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내 쪽에서 먼저 그러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그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 그러한 말들이 바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데 장애가 되는 말들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신 사랑의 말, 용서의 말이 내 안에 가득해질 때, 우리들은 진실로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참된 사랑의 세상을 완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십시오.



 
살아있기에 누릴 수 있는 행복('좋은 생각' 중에서)


 

 

아침을 볼 수 있어 행복하고
붉게 물든 저녁을 볼 수 있어 행복하고

노래가 있어 행복하고
꿈이 있어 행복하고

사랑을 베풀 수 있어 행복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어 행복하고
기쁨도 슬픔도 맛볼 수 있어 행복하고
더불어 인생을 즐길 수 있어 행복하고

누군가가 그리워 보고픔도
그리워 가슴 아리는 사랑의 슬픔도
모두 다 내가 살아있기에 누릴 수 있는
행복입니다.

누굴 사랑하기 전에
이런 행복을 주는 내 자신을
먼저 사랑으로 감싸줬는지요


Lotus Of He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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