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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대한 업적 그러나 남겨놓은 1% -여호수아47
작성자이광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21 조회수556 추천수2 반대(0) 신고
위대한 업적 그러나 남겨놓은 1%
 
<오늘의 말씀>

20 이상이 유다 후손 지파에게 갈래를 따라 돌아 간 유산이다.
21 네겝 쪽으로 에돔과 접경하고 있는 유다 후손 지파 남단 성읍들은 아래와 같다. 캅스엘, 에델, 야굴,
22 키나, 디모나, 아드아다,
23 케데스, 하솔, 잇난,
24 지브, 텔렘, 브알롯,
25 하솔하다따, 크리욧헤스론 곧 하솔,
26 아맘, 세마, 몰라다,
27 하살가따, 헤스몬, 벳벨렛,
28 하살수알, 브엘세바, 비즈요드야,
29 바알라, 이임, 에셈,
30 엘돌랏, 그실, 호르마,
31 시글락, 마드만나, 산산나,
32 르바옷, 실힘, 엔림몬. 이렇게 모두 스물 이홉 성과 그 변두리 천막촌들이다.
33 야산지대에 있는 성읍은 아래와 같다. 에스다올, 소라, 아스나,
34 자노아, 엔간님, 다부아, 에남,
35 야르뭇, 아둘람, 소코, 아제카,
36 사아라임, 아디다임, 그데라, 그데로다임. 이렇게 열 네 성과 그 변두리 천막촌.
37 스난, 하다사, 믹달가드,
38 딜르안, 미스베, 욕드엘,
39 라기스, 보스캇, 에글론,
40 가뽄, 라마스, 기들리스,
41 그데롯, 벳다곤, 나아마, 막케다. 이렇게 열 여섯 성과 그 변두리 천막촌들.
42 리브나, 에델, 아산,
43 입다, 아스나, 느십,
44 크일라, 악집, 마레사. 이렇게 아홉 성과 그 변두리 천막촌들.
45 에크론과 그 변두리 촌락과 천막촌들.
46 에크론과 바다 사이의 땅, 아스돗 경계에 이르는 전지역의 천막촌들.
47 아스돗과 그 변두리 촌락과 천막촌들. 가자와 그 변두리 촌락과 천막촌들. 에집트 개울과 대해가 경계를 이룬다.
48 산악지대에 있는 성읍은 아래와 같다. 사밀, 야띨, 소코,
49 단나, 키럇산나 곧 드빌,
50 아납, 에스드모, 아님,
51 고센, 홀른, 길로. 이렇게 열 한 성과 그 변두리 천막촌들.
52 아랍, 두마, 에스안,
53 야님, 벳다부아, 아베카,
54 훔타, 키럇아르바 곧 지금의 헤브론, 시올. 이렇게 아홉 성과 그 변두리 천막촌들.
55 마온, 가르멜, 지브, 유타,
56 이즈르엘, 욕드암, 자노아,
57 카인, 기브아, 딤나. 이렇게 열 성과 그 변두리 천막촌들.
58 할훌, 벳술, 그돌,
59 마아랏, 벳아놋, 엘드콘. 이렇게 여섯 성과 그 변두리 천막촌들.
60 키럇바알 곧 지금의 키럇여아림, 라빠 이 두 성과 그 변두리 천막촌들.
61 사막지대에 있는 성읍은 아래와 같다. 베다라바, 미띤, 스가가,
62 닙산, 소금성, 엔게디. 이렇게 여섯 성과 그 변두리 천막촌.
63 그러나 유다 후손들은 예루살렘에 사는 여부스족은 몰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여부스족은 이날까지 유다 후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섞여 살고 있다. <여호수아 15:20-63>

<묵상>

유다 지파가 차지하여 점령한 성읍의 이름이 쭈욱 나옵니다. 먼 땅에서 이주해 온 민족이 이렇게나 많은 도시를 정복하여 정착민들을 쫓아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 정복의 역사는 엄청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이 기록을 남긴 사람도 자기 손으로 기록하면서 놀랐을 것이고 그 공로를 모두 하느님의 능력으로 돌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가나안 남부 지방의 대부분을 손에 넣은 유다 지파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서 장자 지파가 되리라는 야곱의 예언대로 그 역할을 충실히 해 냈던 것입니다. 가장 정복하기 어려운 곳을 거의 대부분 손에 넣음으로써 다른 지파에 모범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도 이 유다 지파를 친히 택하셔서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지상에 보내주십니다. 선조들이 믿음에 충실하여 목숨을 바쳐서 그 사명을 다하면 하느님께서는 그 자손에게까지도 은혜를 베푸셔서 당신의 구원 사업의 파트너로 협력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고 또 구원하시기를 원하시지만 인간에게 오실 때 마치 서유기의 손오공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오시는 것이 아니라 순종의 훈련을 겪음으로써 성실하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통하여 인간에게 오십니다.
 
공동체 안에서 부르심 받고 섬기는 사람들이 이런 유다 지파와 같은 소명의식을 가질 때 그 공동체 안에 하느님께서 비로소 오셔서 함께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섬기는 이들에게는 더 많은 도전 정신과 자기 것을 아낌없이 내어 놓는 희생의 정신이 필요한 법입니다. 
 
그러나 이런 유다 지파에게도 한 가지 흠은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요르단 강을 건널 때 백성들에게 전했던 하느님 말씀 -

 "살아 계시는 하느님께서 너희 가운데 계신다. 가나안족, 헷족, 히위족, 브리즈족, 기르갓족, 아모리족, 여부스족은 반드시 쫓겨나리라." (여호수아 3:10)

-에는 여부스족을 반드시 쫓아내리라고 했는데 유다 지파가 모든 민족들은 다 물리쳤으면서도 여부스족은 쫓아내지 못한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정복한 성읍에 비하면 여부스족의 성읍 하나는 미미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느님이 본래 주셨던 사명을 망각하고 배가 불러서 '이만 하면 됐다.'하는 마음 때문에 생기는 부지불식간의 불순종은 공동체에 큰 족쇄로 작용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대해 그 본질을 깊이 있게 고민해 보려 하지 않고 그저 좋게만 긍정적으로만 해석하고 '이 정도면 됐으니 만족하자'라고 하며 대충대충 살아가려는 혹은 공동체를 섬기려는 태도가 바로 유다 지파가 범한 실수와 같은 맥락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의 노력과 고민이 부담스러워 자족(自足)이라는 포장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 같지만 실상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공동체 내에 치명적인 불순종과 대충 살기가 공존하는 것입니다.
 
경계 근무를 서는 초병이 99일 근무를 완벽하게 하다가 하루 졸아서 적군이 침입했다면 99일의 공로는 허사가 됩니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물 많은 인간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기회를 주시지만 그 은혜를 빌미 삼아 인간의 불순종과 대충 섬기기를 정당화해서는 안 됩니다.
 
유다 지파가 상당히 위대한 일을 했지만 남겨 놓은 그 1% 때문에  가나안 정착 생활이 한 참 진행된 후에는 멸하지 않고 남겨놓은 정착민들의 우상을 함께 섬기는 큰 죄를 범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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