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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총애를 입은 이여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24 조회수644 추천수3 반대(0) 신고

<총애를 입은 이여>(루가1,26-38)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총애를 입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하고 말하였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는 마리아를 찾아가 "총애를 입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하고 인사하였다. 이 인사는 마리아에게만 하신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총애를 입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하고 인사하시는 것이다. 하느님은 늘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은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느님의 은총이 없이는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너희는 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다만 우리가 그것을 느끼지 않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한결같이 누구에게나 은총을 내려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받아들이거나 안 받아들이거나 알아듣거나 못 알아듣거나 관계없이 선인이나 악인이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시고 햇빛을 내려주시듯이 같은 은총을 내려주신다. 하느님의 은총이 누구에게는 큰 것을 내려주시고 누구에게는 작은 것을 내려 주시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에게 가장 알맞는 큰 은총을 내려주신다.

 

 문제는 하느님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은총을 받아들이는 이에게 달려 있다. 은총을 받아들이는 그릇이 크면 많은 은총을 받을 것이고 그릇이 작으면 조금밖에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은총은 받아들이는 만큼 받는 것이다.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은총이 있다. 가장 큰 은총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은총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은총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은총을 가장 큰 은총이라고 생각하고 가장 중요한 은총은 소홀히 하면서 다른 은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만 받아들이려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무엇이 갖아 큰 은총인가를 잘 알고 가장 큰 은총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럼, 가장 큰 은총이란 무엇일까?

 오늘 복음을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총애를 입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가장 큰 은총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 은총이다. 사실 이보다 더 큰 은총은 없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듯이 모든 것이 가능하신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보다 더 큰 은총이 어디 있겠는가?


 마리아가 총애를 입었다는 것은 바로 "주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게 되었다는 것도 아니고, 로또 복권에 당선되었다는 것도 아니고, 미스 월드에 뽑혀서도 아니다. 단 하나 즉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은총이요, 총애를 입은 거다.
 
 가장 큰 은총을 받으면 어떻게 되는가? "보라. 이제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낳게 된다.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워지는가?

주님께서 어떻게 함께 계시는가?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마리아도 처음에는 그 방법을 몰라서 천사에게 물었다. "저는 어떻게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으니까 천사가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 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셨듯이 남자 즉 인간을 통해서가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거룩한 아기를 갖게 되는 것이다.

 

 즉 예수를 잉태하는 일은 하느님이 내 안에서 하시는 일이지 내가 하는 일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은총이 필요한 것이고 그 은총을 받아들이는 이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은총 중에 가장 큰 은총은 성령을 통하여 예수를 잉태하는 은총이다.

 

 그럼 오늘 내가 예수를 잉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령이 내 안에서 활동하시도록 나를 성령께 맡기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따라는 사는 삶이다. 그래서 성 바오로는 "여러분은 성령의 지도를 따라 사는 사람"(갈라 6,1)이라고 했던 것이다. 


 성령의 지도를 따라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성령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성령을 따라 살 수 있는가? 요한은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요한16,13-15)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오늘 가장 큰 은총은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셨던 분이 다시 말씀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여 낳으셨듯이 내가 말씀을 받아들여 다시 말씀을 내놓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은총을 받는 사람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복음을 다시 사람들에게 낳아주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가? 마리아는 우리에게 그 모범을 보여 주셨다. 즉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듣고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바로 마리아의 이런 자세가 바로 은총을 받아들이는 자세요, 예수를 내 안에 잉태해서 낳아주는 사람이 되는 자세이다.

 

 잉태하여 하나의 생명을 낳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힘든 일이며 가장 위대한 일이다. 가장 위대한 일인만큼 거기에 따른 희생도 그만큼 크다.

그리하여 성 바오로는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가 형성될 때까지 나는 또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겠습니다."(갈라4,19)라고 말했다.

 

 그렇다. 내가 그리스도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하고 또 다른 이들에게 예수를 전해주는 일은 또 다른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만이 가능한 일이다. 이 일은 나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은총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며 내가 은총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은총을 내려 주시지만 누구나 다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 은총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한 사람만 받을 것이고 은총을 받아들인만큼 충만해질 것이다. 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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