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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고 따랐다.'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26 조회수553 추천수5 반대(0) 신고

<믿고 따랐다.>(요한4,43-54)
  
 "예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 * * * * * *

 

 우리의 믿음을 보면 두 부류의 믿음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예수님이 "너희는 표징과 이적(기적과 신기한 일)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대로 어떤 기적이나 신기한 일을 보고 믿는 믿음이고 다른 믿음은 "가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간 왕실 관리처럼 말씀을 믿는 믿음이다. 과연 나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어쩌면 기적이나 신기한 일을 보고 믿는 것이 훨씬 쉬운 믿음인지 모른다. 누구나 어떤 이상한 현상이나 기적을 보면 쉽게 믿을 수 있겠지만 죽어 가는 아이를 살려 달라고 청했는데 그 아이에게 어떤 특별한 일도 하지 않고 다만 "가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라고 하신 말을 믿고 돌아가는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기적이나 신기한 일을 보고 믿는 믿음은 오래 가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일회성일 수가 있다. 그런 기적이 계속해서 일어나지 않으면 믿음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믿음이다.

 

 그리고 그런 믿음은 깊이가 없다. 왜냐하면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고 믿는 것이니까 눈에 보는 것 그 이상으로는 넘어가지 못한다. 내적인 생활이 아니라 외적으로 드러나는 생활을 할 것이다. 그리고 항상 외적으로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나기만을 기대할 것이다. 전적으로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에 따라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믿음이다. 깊이가 없고 확신이 없다. 어떤 기적이나 신기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곧 흔들릴 수 있는 믿음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적을 보고 믿는 믿음이 아니라 말씀을 믿고 생활하는 믿음이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이 왕실 고관처럼 말씀만을 듣고 믿을 수 있는 믿음이 될 수 있을까?

 우선 왕실 고관처럼 예수님이 대한 전적인 신뢰심이 있어야 한다. 왕실 고관이 죽어 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안 해 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용하다는 의사를 다 불렀을 것이고 좋다는 약은 다 구해서 먹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점점 더 악화되어 가고 이대로 그냥 놔두면 죽어갈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왕실관리의 입장은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다. 예수님을 단지 구경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의 자세나 지나가다가 우연히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나 또는 예수님이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자세이다. 한 마디로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아쉬움이 없는 사람들이다.

 

 아니 굳이 예수님께 어떤 도움을 청해야할 긴급한 상황에 있거나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요, 구원의 말씀이기  때문에 반드시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왕실 관리는 입장이 다르다. 그는 누구보다도 다급한 상황에 있고 어떻게 보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할 만큼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 가는 자기 아들을 죽일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 있었던 차에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다는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의 귀에 "예수"라는 분의 이름은 얼마나 반가운 이름이었겠는가? 어쩌면 마지막 희망을 걸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분은 반드시 죽어 가는 자기 아들을 살려주실 수 있는 분이실 지도 모른다는 실날 같은 희망과 기대를 가졌을 런 지도 모른다. 아무튼 왕실 관리의 귀에 "예수님이 오셨다."라는 말은 복음이었다. 즉 기쁜 소식이었다. 그가 예수님께 달려간 것은 어떤 기적이나 신기한 일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께 왔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께 온 것과 왕실관리가 예수님께 오게 된 동기가 처음부터 달랐다.

 

 즉 다른 사람들은 어떤 기적이나 신기한 일을 보았기 때문에 또는 그런 것을 보려고 왔다면 왕실관리는 "예수님이 오셨다."라는 말을 듣고 죽어 가는 자기 아들을 고쳐달라는 간곡한 청을 예수님께 말씀드리려고 왔다. 그렇다. 예수님의 말씀은 아무나 듣고 믿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 대한 신뢰심과 말씀에 대한 목마름과 배고픔이 있는 사람만이 말씀을 듣고 먹으려고 노력한다. 과연 나에게 말씀에 대한 굶주림과 목마름이 있는가?


 "하느님 내 하느님, 당신을 애틋이 찾나이다. 내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 하나이다. 물기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 이 몸은 당신이 그립나이다."(시편6,22-3)

"주여, 내 영혼이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고 싶어서 밤새도록 떠 있나이다."라는 시편작가들처럼 말씀에 목마름이 없는 사람들은 말씀을 믿기가 어렵다.


 왕실 관리가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게 된 커다란 은혜를 받게 된 과정을 보면 점차적으로 이루워지고 있었던 과정이 있었다.


 첫째,는 죽어 가는 아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살려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 즉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마음의 상태였기 때문에 그의 귀는 항상 누군가를 찾기 위해 눈은 떠 있었고 그의 귀는 열려 있었다.


 둘째, 그는 예수님이 갈릴래아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가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만일 그가 예수님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그런 은혜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셋째, 그의 믿음은 어떤 기적을 통해서 믿게 된 믿음이 아니라 그가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할 때 그 말씀대로 이루워진다는 것을 체험하게 한 믿음이었다. 결국 이런 것을 체험한 왕실 관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어떤 믿음이었겠는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그대로 이루워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가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집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이루워졌음을 경험한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왕실관리의 믿음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이루신다는 것을 체험한 믿음이요, 말씀으로 양육되는 믿음이다.  우리의 믿음은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실천하는 믿음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추상적이고 막연한 믿음이 될 수 있다. 


 넷째, 어떤 기적이나 신기한 일을 먼저 보고 믿는 믿음이 아니라 먼저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고 그대로 실천할 때 말씀대로 이루시는 기적을 보는 것이 순서이다. 즉 어떤 표징이나 기적을 보고 믿는 믿음이 아니라 먼저 말씀을 듣고 믿고 그대로 실천할 때 그 말씀대로 이루워지는 기적을 보는 믿음이어야 한다.


 왕실 관리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된 믿음이란 예수님은 먼저 기적을 이루시고 믿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말씀을 하시고 그  말씀대로 이루신다는 것을 경험한 믿음이다.

 

 우리의 믿음도 항상 말씀이 바탕이 되고 그 말씀대로 실천할 때 예수님은 말씀대로 이루신다는 것을 믿고 경험하는 믿음이어야 한다. 이런 믿음이라면 항상 먼저 말씀을 읽고 듣고 실천하는 믿음이 될 것이며 그럴 때 "당신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 나의 길을 비추는 빛이오이다."라는 고백을 할 것이다. 

                              

                                 -유광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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