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바람이 거세게 몰아쳐 춥습니다.

마음마저 냉한을 감당치 못해 움츠려 있습니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밝게 빛나는 저 불꽃 투성이의 거리를 내려다 보면서

나는,

용케도 버티고 서 있는 이 달동네의 어두움이 보기 싫어집니다.

주님,

호화로운 저 거리를 만취하여 걷고도 싶고

슬픈 몸부림을 하거나 흥청거리고 싶기도 합니다.

주님,

사제라는 이 삶의 진실성은..

나를 연소하여 그 재마저 소모되어야 충실히 드러난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이 사제에게 주신 가혹한 형벌 같으면서도

소중한 선물이기에

그래야만 된다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흔들리지 말자며 꼿꼿이 서 있지만..

가끔가다 가슴을 유난히도 세차게 때리고 가는.. 바람 때문에

지체가 흔들리고 마음도 이에 따르는 모양입니다.

땅 뺏기를 벗어나

하늘을 빼앗기 시작한 저 빌딩의 무리를 보면서

"이 산꼭대기까지는 오르지 못하니 아래를 보고 사는 재미를 누리자"

라고 했더니

"신부님, 자위는 그만 하시지요" 라고 하던 신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주님,

희생과 헌신의 세계에 나래를 폈던 꿈들이

절박한 현실에서는 늘 깨어지는 게 탈입니다.

꿈은 꿈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깨어야 하고..

그때는 미쳐버려야만 살 수가 있습니다.

미친 삶이 두렵다면

이 삶을 마무리 하는 순간까지 꿈만을 꾸었으면 합니다.

꿈을 꾸며 살다가 깨어서 죽고 싶습니다.

그런데 나의 꿈은.. 당신 영광 안에 잠겨서 사는 것입니다.

형형색색의 불빛을 보면서 저항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이곳은

삶에 대처하기 위한 잠에 빠졌습니다.

판자집 한 채에 서너 가구가 함께 살며

꿈마저 뒤헝클어져 풀리지 않습니다.

한숨 섞어 두런거리는 삶을 받았다면

안주할 한 줌의 땅을 놓고 살아갈 정열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 마저 식어져,

산다는 것이 마녕 언짢기만 합니다.

실은 주님,

오늘 꽁꽁 언 땅을 파고 가족이 없는 한 분을 묻고 돌아와서

제 심사가 뒤틀렸습니다.

그 호젓한 무덤은,

가난한 사람들끼리

비단 같은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갈 곳이 없었던 사람,

그에게는 고향이 없어

마음의 고향마저 매일 바뀌어 그리 방황을 했던 모양입니다.

다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춥다는 것과 배 고프다는 것이었습니다.

폐병으로 쓰러져 이리저리 채이던 그 분을

사랑의 선교회 수사들이 업어 모시었습니다.

나이는 44세.

그분은 죽기 위한 세례를 받았습니다.

곧 흙으로 돌아가야 겠기에 '아담' 이란 본명을 지었습니다.

꼭 아흐레 만에

그 분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았습니다.

주님,

그분은 말입니다.

마지막 호흡을 아껴가며 이 말을 남겼습니다. 

"수사님, 나는 이제 춥지도 배고프지도 않겠어요...."

그리고 이 세상에 섞여 싸우던 통곡도, 울부짖음도 없이..

한 많던 삶을 유유히 매듭지었습니다.

그 갸날픈 목숨은

우리들의 발버둥으로는 도저히 미칠 길 없는 당신 나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죽음을 지키던 사람들의 가슴엔

맹수의 포효 보다도 더 큰 울부짖음이 있었고,

그분을 묻기까지의 몸짓은 비통한 절규로 떨리고 있었습니다.

주님,

얼마나 더 기갈을 느껴야 합니까?

춥고 배고파 마음까지 어두어진 이곳을 산책하는 자신이 밉습니다.

그들의 애증과 애환을 어루만질수록

자꾸만 내 발이 헛딛는 느낌입니다.

당신이 허락하신 이 외길을

그래도 당신이 함께 걸어주시니,

어둡고 추운 곳에도 새벽과 봄은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

안으로부터 여물어 밖으로 익어지길 바랍니다...

꿈꾸며 살다가 깨어서 죽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