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열렬한 사랑" (이스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29 조회수593 추천수9 반대(0) 신고

2006.3.29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이사49,8-15 요한5,17-30

                                                         




"열렬한 사랑"



지나온 세월 40년이 400년을 살아 온 것 같다고 고백한
베스트셀러 작가인 공 지영자매는 자신의 사후, 누군가가 평전을 써준다면
다음과 같은 글을 머리에 올리고 싶다 합니다.

“나 열렬하게 사랑했고,
열렬하게 상처받았고,
열렬하게 좌절했고,
열렬하게 슬퍼했으나,
모든 것을 열렬한 삶으로 받아들였다.
하느님 이제 그만 쉴래요.”

그대로

묘비명으로 삼아도 손색이 없는, 참 뜨겁게 산 사랑스런 여인의 고백입니다.

인터뷰 말미 공 지영자매는 사랑하지 않는 순간 영혼은 죽는 것이라며,
그래서 자신은 나이 70이 넘어서도 연애를 할 것이고
그 때에도 자신의 속을 다 퍼주고 말겠다며 활짝 웃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이든 연인이든 늙어 죽을 때 까지
열렬히 연애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며 살아갈 때 비로소 살아있다 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생명은 함께 갑니다.
충만한 사랑 있어 충만한 생명입니다.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때입니다.
사랑과 더불어
나의 정체성 더욱 또렷해지면서 나로서 더욱 생생히 현존하게 됩니다.

하느님이든 사람이든 열렬한 사랑에 빠진 이들을 보십시오.
몸 전체에서 생기와 활기를 발산하면서,
얼굴과 음성에도 윤기가 흐르고 눈도 꿈꾸는 듯 영롱하게 빛나지 않습니까?

바로 복음의 예수님이 그러하셨고, 1독서의 이사야 예언자가 그러하셨습니다.
진정 살아있는 하느님의 사람들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살아있으나 실상 죽어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랑 빈약하여
실상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못하고 죽어 사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지요?

아무리 부귀영화 누렸어도 사랑에 실패했다면 그 인생 무조건 실패입니다.
얼마나 많이 살았느냐의 산 햇수의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열렬히 사랑하며 살았느냐의 삶의 질이 중요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사랑의 일치의 정도가 살아있음의 척도입니다.
다 똑같은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아버지와 사랑의 일치의 정도에 따라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겁니다.

예수님, 그대로 아버지와의 100% 사랑의 일치 속에 사신 분임은
다음 고백이 입증합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아버지와의 생생한 일치의 현존 안에 사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이사야 예언자 역시 똑같습니다.

다음의 이사야 예언자의 고백이
바로 그의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의 정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해도 나는 너를 잊을 수 없다.’

이사야 예언자처럼 열렬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이
영원한 생명이요 구원입니다.

이런 사랑 체험 있어야 우리 또한 열렬히 하느님을,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과연 나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몇 퍼센트 일치의 사랑을 살고 있는지요?

자비로우신 아버지께서는
이 복된 미사의 샘터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어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게 해주시고
열풍도 태양도 우리를 해치지 못하게 해 주십니다.

또 갖가지 두려움과 걱정, 불안에 갇힌 우리들을 ‘나와라’ 하시고,
어둠 속에 있는 우리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어라.’ 명하심으로,
당신과 100% 사랑의 일치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