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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월 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기일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01 조회수555 추천수1 반대(0) 신고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과 거룩한 연옥 영혼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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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기일


1년 전 오늘, 2005년 4월 2일 교황청 창문 밖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신자들의 묵주기도 소리가 울렸습니다. 고통의 병고 속에서도 창문을 향하여 오른팔을 들어올리며 강복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그분의 입술은 ‘아멘’하고 움직였습니다.
“나를 따르라” 하신 예수님의 삶을 끝까지 따라 사셨던 교황님. 숨을 거두기 전 그분의 이 말씀을 우리는 영원히 기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27년 전인 1978년 10월 16일, 성 베드로 광장. 새 교황을 기다리는 10만여 명의 인파가 모여든 가운데 위쪽 중앙 창문이 열렸습니다. ‘추기경 카롤 보이티와’가 새 교황으로 호명되자 군중들은 새 교황이 너무나 뜻밖이었고 또 누구인지 잘 몰라서 의아해했습니다.
카롤 보이티와는 ‘요한 바오로 2세’라는 이름을 택하였는데, 이는 ‘미소의 교황’의 뒤를 잇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최초의 폴란드 추기경이요, 최초의 공산국가 태생이었습니다.
1522년 이래 최초의 비이탈리아인 교황이요, 1856년 이래 가장 젊은(59세) 교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안 될 것도 없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유다인이었으니 말입니다.

카롤 요제프 보이티와 사제가 되기까지

카롤 요제프 보이티와(Karol Jozef Wojtyla).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본명입니다. 카롤은 1920년 5월 18일, 폴란드 남부 바도비체의 작은 마을에서 폴란드 민족이 목말라 하는 염원을 풀어헤치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태어났습니다. 카롤이 태어나던 그 날은 바로 신생 독립국이자 카롤의 조국인 폴란드가 소비에트 연방을 무찌른 날이었습니다.

폴란드의 수도였던 크라쿠프에서 남서쪽으로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카롤의 고향 바도비체는 작은 종이 공장과 철사 공장, 그리고 가톨릭교회에서 세운 성체용 빵 공장을 제외하고 산업시설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곳에서 카롤은 직업 군인인 아버지와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 슬하의 늦둥이 막내아들로 태어나, 가난하지만 단란한 가톨릭 가정에서 맑게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에게 시련이 닥쳤습니다. 1929년 그의 나이 아홉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그로부터 4년 뒤 의학을 공부하던 열네 살 터울의 형이 어머니의 뒤를 따랐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 아버지는 기도 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카롤이 목이 말라 가끔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나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기도하시는구나.’ 어린 카롤은 아버지의 기도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주방으로 가서 물을 마셨습니다. 아버지는 카롤에게 사제가 되라고 이야기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카롤에게는 아버지가 보여 준 행동 모두가 일종의 신학 교육이었습니다.

대학 진학과 동시에 카롤과 그의아버지는 문학과 연극의 도시 크라쿠프로 이사를 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카롤은 혼자 떠나려 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네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나도 간다. 이 넓은 세상에 너와 나 단둘인데 함께 가야지….”
1941년 2월 18일 스물한 살이었던 카롤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쳤습니다. 지금껏 생의 동반자이자 마음의 안식처였던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버지의 시신 옆에서 무려 열두 시간 동안 기도하면서 카롤은 자신에게 맡겨진 의무를 정직하게 수행하라던 아버지의 가르침을 되새겼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과 학대받는 유대인들의 삶을 지켜보며 자신에게 주어진 성직자의 소명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문학과 연극을 향한 꿈을 포기하고 사제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평화의 순례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된 카롤, 요한 바오로 2세는 ‘바티칸 성역’에 안주하기를 거부하고, 역사상 가장 많은 해외순방을 한 교황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 사막이나 정글의 오지,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터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망설이지 않고 찾아 나서며 화해와 평화의 물결을 일렁이게 했습니다. 그분은 인간 세상의 거리와 광장으로 나아갔고 지칠 줄 모르는 순례자였습니다.

“성직자의 진정한 의무는 사람들과 함께 삶을 나누는 데 있습니다. 그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들 달려가야 하며 그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26년 동안 102회의 해외순방을 통해 131개국, 600여 도시를 방문했습니다. 인간을 만나기 위한 자신의 여행을 ‘순례’라고 부르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인류가 직면한 현실과 직접 맞닥뜨리고 부딪치면서 그들을 알고 사랑하고 존중하기를 원했습니다.

“나의 모든 여행은 하느님의 백성들이 살고 있는 성지로의 순례입니다. 전 인류의 사랑과 평화, 우애를 위한 순례인 것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인간의 자유와 생명을 수호하고 기본권을 보장하는 문제였습니다. 폴란드인으로 살아오면서 나치주의와 공산주의를 경험했던 교황은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자유를 빼앗긴 상황이 어떤 것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첫 번째 회칙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존엄성을 깨닫게 되었다”고 천명하였습니다. 교황의 관심은 종교적 차원에만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세상을 향해 열려 있음을 당당히 선언했습니다.

또한 젊은 시절 채석장 인부로 일했던 경험이 있었던 교황은 누구보다도 노동자들의 삶을 깊이 이해하고 각별한 애정을 쏟았습니다. 교황으로 선출되고 나서 3개월 후인 1979년 1월, 멕시코를 첫 해외순방지로 선택해 직접 노동자들과 만나 “이제부터 저는 침묵을 강요당해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던 여러분의 ‘목소리’가 되기를 희망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출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 생명의 신성한 가치를 강조하면서 전쟁, 폭력, 사회적 불의, 무기 매매, 환경오염, 자연파괴 등을 인간 생명에 반대되는 것으로 규정하였습니다.
또한 낙태와 안락사를 ‘약자에 대한 강자의 박해’에 비유했습니다. 그리고 1999년 12월에 발표한 교서를 통해 전 세계에서 사형제도 자체를 없애자고 간곡히 호소하기도 하였습니다.

한반도 땅에도 입을 맞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화해와 통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과 1989년 두 차례 한국을 찾았습니다. 교황의 도착에 맞추어 전국의 성당과 교회에서는 교황이 한국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종이 일제히 울렸습니다. 은백색의 교황 수단을 입은 요한 바오로 2세가 부드럽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환영 인파를 향해 두 손을 들어 따뜻한 인사를 보낸 교황은, 비행기에서 내려서자마자 무릎을 꿇고 엎드려 한반도 땅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당시 교황을 가까이에서 영접했던 한 사제에 따르면 교황은 입을 맞추면서 “순교자의 땅, 순교자의 땅”이라고 되뇌었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삶은 온갖 사건들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일련의 장대한 여행을 통하여 그는 세계 각지의 그리스도인들과 선의의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의 말씀을 전하였고, 성 베드로 광장에서는 예기치 못한 총격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그의 조국 폴란드에서 시작된 세계 공산주의의 몰락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는 공산주의 이후 자신이 각별히 애정을 쏟았던 ‘동구권 나라들’에서 민족적 이기주의가 다시 피어오르는 것을 근심스럽게 지켜보았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닌 영원한 생명으로의 출발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의 무덤가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003년 11월 위령의 날을 맞아 여러 차례 숨을 고르는 가운데서도 또렷한 목소리로 하신 강론 말씀입니다.

세파에 시달려 굽은 자기 몸을 이끌고 세상을 순례하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모든 이들에게 두 개의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그리스도를 향하여 문을 활짝 엽시다!”

“인간을 구원합시다!”

우리의 마음 안에 꺼지지 않을 촛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여,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아멘.

(심흥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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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더욱 커지셔야하고 나는 작아져야 합니다. (요한 3,30)
예수님, 저는 예수님께 의탁합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가!
모든 성인들과 천사들의 기도와 선행도 한 대의 미사와 비교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저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 저희의 전부가 되소서.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시면, 질그릇같은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
http://예수.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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