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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롭게 다가온 십자가의 길
작성자최숙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01 조회수628 추천수2 반대(0) 신고
 

하느님!

당신은 피조물인 인간이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시어, 우리를 자유의 길로 인도하시니 그 크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억압과 질곡에서의 해방을 부르짖는 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오늘, 당신께서 선물로 주신 자유가 더욱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또한 하느님 나라는 자유의 나라임을 알기에 우리 모두는 자유를 목말라 합니다. 굶주림과 공포로부터의 자유에서 양심,사상의 자유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우리를 자유에로 초대하고 있는 예수의 십자가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욕망에서 벗어날 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참된 자유를 깨닫고 자유로운 삶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증거 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시도록 기도드립니다.

제 1처:예수 사형선고 받으시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 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사람들은 찬양을 받으려 할때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들의 뜻을 따라 줄 때,자기들에게 즐거운 감정을 일으켜줄 때, 어떤 형태로든지 자기들을 만족시켜줄때, 찬양하거나 칭찬할 뿐입니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무고한 사람에게 가차없이 사형선고를 내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칭찬이나 비방, 찬양이나 사형선고에 자신을 맞추려 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장단에  춤추는 꼭두각시에 불과한 존재일 뿐입니다. 우리가 각자 자신의 주인이 될 때에, 비로소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주님!

사람들의 찬양을 받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로울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칭찬이나 비방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 주십시오.

어머니께-

제 2처:예수, 십자가 지시다.

십자가를 지느냐, 지지 않느냐의 선택은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지고 앞서 가시므로 우리 역시 십자가를 택한 것입니다.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로 선택한 십자가는  더 이상 구속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자유의 상징이어야 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올바로 사용하여 언제나 당신의 뜻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제 3 처: 예수, 첫 번째 넘어지시다.

자신을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은 자신 안에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의 무게가 우리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에 넘어지게 되고, 따라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자유롭기 원한다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재는 가치관 , 의지,욕망, 그리고 자신의 꿈까지도 다 버릴 것을 요구합니다. 즉 송두리째 자신을 부정하고 비워야 합니다. 자기 자신까지도 부정해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자유!그러므로 자유의 길은 길고 멀고도 험합니다.

 주님!

 당신의 은총이 아니면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혼자 힘만으로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릴 수 없사오니,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자유롭게 당신을 따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제4처:예수, 어머니와 만나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이 ‘날개를 꺾어 곁에 두려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피곤한 날개를 접고 잠깐 쉬었다가  다시 힘을 얻어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도록 놓아주는 만남이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를 향해 걷고 있는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만류하고 싶은 본능적인 모성애를 뛰어넘는 어머니 마리아의 굳센 의지와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처절한 고독과 고통의 길을 선택한 예수의 결단이 만나는 이 순간이 있었기에 예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고 세상을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내의 날개, 남편의 날개 자녀와 제자의 날개, 살랑하는 이의 날개를 꺾어버림으로써 영원히 날 수 없도록 만드는 일이 없게 하소서, 집착과 이기심을 버린 자유로운 만남 안에서만 참 사랑이  피어날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주소서.


제5처: 시몬이 예수를 도와 십자가를 지다.

 억지로 붙잡혀 십자가를 질 수 밖에 없는 시몬에게서 또 하나의 자신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고 싶지 않지만 억지로라도 해야 할 많은 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만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완전하고 절대적인 자유가 인간에게 부여되지 않았다는 것은 비극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축복일 수 도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싫어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자신이 하거나 해야 할 모든 일을 좋아하는 것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면 , 언제나 우리는 좋아하는 일만 하는 셈이니 그 얼마나 커다란 축복입니까?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 그는 하늘나라를 차지한 사람입니다.

 주님!

 꼭 해야 될 일이라면 억지로라도 하는 것이 참된 자유임을 알게 하시고, 해야 될 일, 맡은 일, 주어진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추함이며 무질서임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제6처:베로니까, 예수의 얼굴을 씻어드리다.

예수를 증오하고 비난하고 모욕하면서 광분하고 있는 군중을 두려움 없이 헤치고 들어가, 그 분의 얼굴을 닦아드리는 베로니카의 용기앞에서 모두 잠잠해진 거룩한 순간입니다. 누구도 감히 그녀를 저지하지 못했습니다.

 작은 여인이 가진 엄청난 용기와 자유로운 행위가 사람들을 압도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행할 바를 실행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를 지닌 베로니카에게 예수께서는 당신의 모습을 새겨 주십니다.

 주님!

 강력한 억압이나 탄압,심한 박해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자신을 바치는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십시오. 자기의 육신을 죽일 수 있어도 자기들의 양심과 자유는 결코 죽일수 없다는 신념을 가진 의로운 이들을 축복해주십시오.

제7처:예수 두 번째 넘어지시다.

 용서하지 못하는 취약성 때문에 우리는 거듭거듭 엄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 두 번의 용서조차도 하기 어려워 넘어져 있는 우리에게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예수의 말씀은 실현 불가능한 가르침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약자 앞에서 우월감을 가지고 베푸는 것, 상대방이 강자이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참아야 하는 것, 그것은 용서가 아닙니다. 또 흔히 생각하듯이 ‘잊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일을 쉽게 잊는다는 것은 기억력에 이상이 있다는 표시입니다. 용서란 조건없이 상대방을 포용하는 것입니다.  용서를 통해서 우리는 자유롭게 비상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주님!

 용서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오랏줄을 끊어버리는 행위라는 것과, 용서를 통해서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십시오.

제8처: 예수,예루살렘 여인들을 위로하시다.

 일그러진 처참한 모습의 예수가 당신의 고통과 억울함에 울고 있는 예루살렘 여인들을 오히려 위로하십니다.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전혀 무력한 상황에서 당하기만 하고 있는 입장인 예수입니까? 아니면 예수를 끌고 가는 군졸들과 그 뒤를 따르는 군중들입니까?

 하느님은 자유이십니다.우리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모상,그것이 곧 자유입니다.어떤 상황에서도 빼앗길 수 없는 자유, 어떤 처지에서도 내어 버릴 수 없는 자유, 우리 안에 이런 자유가 건재하고 있는 한 언제나 어디서나 의연하게 타인을 위로할 수 있으며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주님!

 어떠한 환난이나 역경이나 박해, 굶주림이나 헐벗음 앞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도록 우리를 당신과 하나 되게 하소서,


제9처: 예수, 세 번째 넘어지시다.

 강물의 자유, 그것은 강둑을 따라 흐르는 것입니다..기차의 자유,그것은 레일위를  달리는 것입니다. 예수의 자유, 그것은 하느님의 아들이면서도 세 번씩이나 넘어지는 고난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아버지의 영관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 그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 중에서도 예수께서 걸어가신 발자욱 하나 하나를 따라 자신의 발걸음을 옮겨 놓으면서 , 예수를 닮아가는것입니다.

 주님!

 감각이나 본능을 만족시키는 헛된 장애물에 걸려 넘어져서 참된 자유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조심스럽게 당신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제10처: 예수, 옷 벗기우시다.

옷을 벗었다는 것, 옷마져도 벗어버렸다는 것, 그것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의미입니다. 소유와 자유는 반비례의 관계에 있습니다.가진 것이 많을수록 자유는 줄어듭니다. 그러므로 포기는 자유롭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여건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어쩔 수없이 갖지 못한 것, 가질 기회가 없어서 못 가진 것은 포기가 아닙니다. 또 무엇인가를 계속 쌓아아올리는 삶 역시 포기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가장 적게 가진 사람이 가장 풍요로우며, 가진 것이 적을수록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곧 지혜입니다.

 주님,

 소유하지 않은 사람에게 자유를 허락하시는 당신의 섭리는 실로 오묘합니다.

자유냐? 소유냐?의 선택앞에서 방황랄 때 늘 자유를 택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십시오


제11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묵상합시다.

경멸을 받으신 예수님, 주님의 무한한 사랑을 의지하여 간절히 청하오니,내 마음을 주님 발에 못 박아 항상 그 곳에 머물며 주님을 사랑하고 ,다시는 주님을 떠나지 못하게 하여 주소서, 사랑이신 예수님,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오며, 내가 범한 죄를 깊이 뉘우치나이다. 이제부터 다시는 주님을 떠나지 못하게 하소서, 언제나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게서 원하시는 대로 행하게 하소서.


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묵상합시다.(무릎을꿇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나를 사랑하여 죽으신 십자가에 입 맞추나이다.나는 내가 지은 죄 때문에불쌍하게 죽어도 마당한 처지인데 주님은 당신의 죽음으로써 용서와 희망을 안겨 주셨나이다.. 주님쩨서 죽으신 공덕을 의지하여 간절히 청하오니, 나도 주님의 발을 껴안고 주님께 대한 불타는 사랑으로 죽을 은총을 주소서, 나의 영혼을 주님의 손에 맡기나이다. 사랑이신 예수님,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오며,내가 범한 죄를 깊이 뉘우치나이다. 이제부터 다시는 주님을 떠나지 못하게 하소서 언제나 주닙을 사랑하여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하게 하소서

제13처: 예수님 십자가에서 내려지심을 묵상합시다.

 오!슬픔의 성모여, 당신 성자께 보이신 그와 같은 사랑으로 당신 종 나를 받아 기도해 주소서, 구세주 예수님,무엇보다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고자 하나이다. 사랑이신 예수님,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오며 내가 범한 죄를 깊이 뉘우치나이다. 이제부터 다시는 주님으 떠나지 못하게 하소서.언제나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께서 원하시는대로 행하게 하소서.


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묻히신 예수님, 주님의 무덤을 막은 돌에 입 맞추나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흘 후에 부활하셨나이다. 주님께 간청하오니, 주님께서 부활하신공덕으로 마지막 날에 나도 영광스러이 부활하여 천국에서 언제나 주님과 일치하여 영원토록 주님을 찬미하고 사랑하게 하소서. 사랑이신 예수님,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오며,내가 범한 죄를 깊이 뉘우치나이다. 이제부터 다시는 주님을 떠나지 못하게 하소서. 언제나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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