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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세상이 살만하다면 / 조규만 주교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03 조회수590 추천수7 반대(0) 신고
 

4월 2일 주일 날 이웃에 있는 목5동 성당의 새벽미사에 가게 되어, 조규만 주교님의 강론을 들었습니다. 잘 받아 적지 못한 부분도 있어서 주교님께 누가 될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의 한복판에 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의 철저한 인간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 하는 것을 통해 끔찍한 하느님으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아브라함은 자기의 재산과 모든 것을 돌보아 주시는 하느님께 가장 소중한 것을 바쳐야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믿고 있는 야훼 하느님께 가장 소중한 것을 바쳐야 하겠는데, 자신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숙고를 하게 됩니다.


그 결과 외아들을 바치려고 결심합니다. 그는 자기를 보호해 주시는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러 모리야산을 사흘 길을 걸어서 갑니다. 하느님은 그런 갸륵한 아브라함의 마음으로 충분하였습니다. “야훼 이레”, 야훼 하느님께서 가장 소중한 자기 자식을 바치려는 아브라함에게 손수 양을 마련해 주십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은 만류하시면서 기꺼이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게 합니다. 거의 미쳤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친 하느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신이 자기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게 합니까?


그리스 신화에서 불이 이 지구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인간에게 불이 주어지자 인간은 만물의 영장인 신에게 대들게 됩니다. 그래서 제우스신은 독수리로 하여금 자신의 아들의 눈을 파먹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식을 바친 분은 더 대단하십니다.


사형 판결을 받은 인면수심의 아버지도 자식 앞에서 뉘우칩니다. 그런 자식을 바치는 일은 하느님에게도 대단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엄청난 일이었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작은 선물을 주면 우리는 고마워 할 줄 압니다. 요즈음의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을 고마워하기는커녕 덤비고 짜증을 내는 일이 흔합니다. 해외 연수, 고액과외 안 시켜준다고 불평을 합니다.


있는 사람이 더하다는 말도 있고, 물에서 건져 주었더니 보따리 내 놓으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히려 해준 것도 없는 자식에게서 효도를 받는다고 합니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랑 그 뒤에 숨어 있는 위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하느님의 사랑은 작습니다. 그 뒤에 숨어 있는 하느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신앙의 아버지라면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요한 사도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라고 선포합니다. 사랑은 어리석은 짓 미친 짓과 거의 같습니다. 눈물의 씨앗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사랑은 여전히 위대합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이 세상에 사랑이 없다고 가정하면 얼마나 재미없는 것이겠습니까? 우리의 인생자체가 재미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느님의 사랑은 희생적인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하나의 밀알이 떨어져 많은 씨앗을 내듯이 당신의 외아들의 죽음으로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다. 희생도 사랑의 한 가지 방법입니다. 러시아의 유명한 영화감독이 (차이코프스키인지 잘 듣지 못했음) 자신이 만든 영화의 주제는 “그래도 이 세상을 살만하다면 누군가가 그런 희생을 치렀기 때문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까지 하였습니다. 인류에게는 커다란 두 가지 기적이 있는데, 하나는 아무것도 없는 존재에서 곧 무에서 유로 창조된 것입니다. 내가 몇 십 년 전에는 없었는데 지금은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기적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우리가 시간을 넘어서 고차원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엄청난 파스카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잘 못 산 아버지의 삶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어머니의 못 다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소중한 만큼 멋있게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멋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방법은 여러 가지 입니다. 운동으로 노래로, 박 찬호 조수미만 멋진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멋진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일입니다.


남들이 무엇을 하면 나도 하는 삶을 살면, 그러면 남의 인생입니다. 누가 머리에 물들이면 나도 물들이고 하는 것은 내 인생이 아니라 남의 인생입니다. 내가 뜻이 있어서 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러나 흉내 내지 마십시오. 사냥감을 본 개는 끝까지 달린다고 합니다.


1911년에 스페인에서 태어난 건축학자이며 미술가인 한 수사(마리아....)가 있었습니다. 그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을 방문하고 수도자가 됩니다. 24세의 나이로 수도자로 입회하지만 수도회를 떠나는 일을 세 번 반복하게 됩니다. 그는 27세의 나이로 당뇨병으로 사망합니다.

 

그는 “세 번이나 나는 나의 가족을 포기 하였다. 이제는 모든 것을 버렸나? 그렇지 않다. 세 번만이 아니라 천 번이라도 떠날 것이다. 내일 다시 세속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하느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셨음을 느낀다.” 라고 하면서 오직 하느님 한 분만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특별히 마음속에 모든 것을 하느님을 위해서 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겠습니다. 기쁨, 눈물, 음식도 그분을 위해서 먹고 그분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려야겠습니다. 나는 그분이 원하시기 때문에 살고, 또 나는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 한 분만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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