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실이 중요하다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11 조회수815 추천수13 반대(0) 신고

4월 11일 (화)요일 (요한 13, 21-33, 36-38)

 

 "마음이 산란하시어.." (21절)

 

유다의 배반을 눈앞에 두신 예수님의 심정입니다. 그냥 지나치려해도 제 마음을 건드리는 단어였습니다. "주님, 제가 잘못할때마다 당신의 마음을 산란하게 해드렸군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27절)

 

 "제자들은 몰랐지만 예수님께서는 유다와 그리고 베드로가 어떻게 할지 알고 계셨던 것처럼 우리가 어떻게할지,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알고 계신다." 는 강론 말씀을 들으면서 제 마음은 회한으로 가득찼습니다. 미사에 메마른 마음으로 참례하고, 삶에서 당신의 뜻에 맞갖게 살아가지 못하는 것을 다 알고 계시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괴로워졌습니다.

 

미사후에 직원들과 함께 "말씀지기" 로 복음나누기를 하면서, 미사때 느꼈던 것을 더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말씀지기"에 있는 묵상입니다. "골고타에서 예수님의 옷을 가지고 제비를 뽑은 군인들은 십자가에 가까이 있었지만 구원으로부터는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를 돌려보낸 여관 주인은 아기 예수님과 가까이 있었지만 강생과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미사에서 제대 가까이 갈 수는 있으나 성찬과는 동 떨어져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예수님의 현존을 깊이 느끼지 못하며 미사를 드리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오래 전에 예수회 신부님으로부터 이냐시오 영신수련 지도를 받을 때입니다. 신부님께서 숲이 우거진 정원에서 예수님과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는 상황을 관상으로 기도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웬지 예수님과 저는 조금 떨어져 앉아 있었고 친밀감이 별로 들지 않고, 약간 서먹서먹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이 말씀을 들으신 신부님께서 그것은 예수님과의 거리감이라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앉아 있지 못하고 닭살이 돋는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에 비하면 지금은 예수님이 한결 친밀하게 느껴지고 예수님께 고개를 기대기도 하는 상상이 되기도 하지만, "나와 예수님의 거리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예수님의 마음에 드는 딸로서 생활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예수님께 다가가지 못하는 것과, 희생이 부족하고, 그리고, 제가 붙들고 있는 것이 아직도 너무 많다는 것이 성찰되었습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31절)

 

 "제가 행복하고 기쁘고 진정한 평화를 누리도록 당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 바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길이시라구요? 주님, 제가 무슨 말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며칠전에 저희 원에 개신교회의 한 장노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교회에서 유치원을 직영하게 되어 이런 저런 자문을 받고자 오신 것 같았습니다. 이 기회에 12년정도 그 교회와 연관되어 있는 미완으로 남아있던 문제를 말씀드렸습니다.

 

올해초까지 교회에서 직영하기 전에 교회 유치원을 운영하시던 원장님이 같은 지역내의 원장님들에게 12년전쯤에 몇몇이 투자하여 콘도를 사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교사들과 함께 연수도 가고 괜찮겠다 싶어서 공동으로 콘도를 구매하였습니다. 그 콘도는 그 교회내의 신도가 이민을 가면서 건축헌금으로 헌납하는 케이스였습니다.

 

원장님들과 함께 계약을 하면서 제가 만약에 콘도를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을 경우에는 교회가 책임을 지라는 단서를 달자고 하여 계약서상에 명기를 하였습니다.

 

그 후 콘도는 한 번도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부도가 나버렸습니다. 저희 원장님들 중에 제일 투자를 많이 한 분께 계약서를 가지고 있도록 하였는데 그 분이 그만 계약서를 잊어버렸습니다.

 

중간에서 그 콘도를 사도록 주선한 원장님은 그 교회에서 보관한 계약서라도 있을텐데, 목사님이 바뀌었다. 등등의 이유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계약서를 잊어 버렸지 않았느냐? 며 교회의 입장에 서시는 것 같았습니다. 본인도 일부 투자를 하였지만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를 보여 주지 않아서 속수무책으로 있었습니다.

 

투자하신 분들중에는 형편이 무척 어려워진 분들도 있었지만 누구하나 얼굴을 붉히면서까지 그 일을 해결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았습니다.

 

찾아오신 장노님께 이 말씀을 드렸더니 금시초문이라며 상황을 상세히 기록하시며, 제가 "아마 교회내에는 그 콘도를 헌납 받으신 기록이 있을 것이고, 계약서가 있지 않겠어요?" 라고 말씀 드리자, 그 콘도를 헌납한 기록은 있을 것이며, 계약서가 없어졌다 하더라도 사실이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 장노님께서는 사실을 파악해 보고 제게 연락을 주시겠다며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우선 억울한 일을 자연스레 전달할 기회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렸고, 그 교회내의 장노님이 하신 말씀, "사실이 중요하다." 는 말씀이야말로 바로 교회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게 되는 일이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닭이 울기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38절)

 

 "주님,제가 당신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세 번만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들내외와 함께 2년을 살다가 지금은 막내 딸의 형편 때문에 딸과 함께 살고 있지만,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다시 아들과 함께 살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며느리와 함께 산 2년 동안 며느리는 용케도 제 마음을 한 번도 상해준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해 주신 덕분인지, 3대째 개신교에서 신실한 믿음의 생활을 하는 가정에서 자란 며느리는 언제나 고마울 뿐입니다. 

 

이 며느리처럼 당신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제가 충실한 마음으로 당신께 다가가도록 은총을 주셔요. 당신을 향해 제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더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자신의 삶에서 십자가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회피하나, 나중에는 베드로 사도처럼 용기 있게 당신을 증언할 수 있고, 헌신적인 삶을 살 수 있나이까?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