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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4월14일『야곱의 우물』- 주님의 무한한 사랑의 증거인 수난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14 조회수754 추천수10 반대(0) 신고
     
    주님 수난 성금요일-주님의 무한한 사랑의 증거인 수난  
    
    
    [요한 18,1-­19,42]
    
    
     (필자가 묵상한 구절을 중심으로 싣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이는 직접 본 사람이 증언 하는 것이므로 그의 증언은 참되다.
    그리고 그는 여러분이 믿도록 자기가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또 다른 성경 구절은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볼 것이다”하고 말한다. 그 뒤에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게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다인들이 두려워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빌라도가 허락하자 그가 가서 그분의 시신을 거두었다. 언젠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도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왔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다인들의 장례 관습에 따라 향료와 함께 아마포로 감쌌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에 정원이 있었는데, 그 정원에는 아직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새 무덤이 있었다.
    그날은 유다인들의 준비일이었고 또 무덤이 가까이 있었으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그곳에 모셨다.
    
    ※『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 문호영 신부(예수의 성모관상수도원) - 
    
    
    오늘은 파스카 성삼일의 둘째 날, 주님 수난 성금요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수난 예식을 통해 우리를 위해 고통받고 죽으시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바로 그 고통과 죽음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무한한 은총과 영원한 구원에 대해 감격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바라보면서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랑하실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인간이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체험한 사랑은 모두가 유한한 사랑인 데 비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은 무한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무한한 사랑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무한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시지만 인간에게는 그것이 낯설고 어설프고 의아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서툰 것입니다.
    또한 설령 그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보고 받아들이려 한다 해도 그동안 인간이 체험해 왔던 그 유한한 사랑의 잣대로 하느님의 사랑을 보고 받아 들이려 하기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드러나는 그 무한한 사랑! 우리가 이 주님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보고 깨치게 된다면 인간 삶에는 획기적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 참으로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고 바라보고 자꾸 기억하고 되새기는 것은 우리의 기억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주님의 그 십자가 죽음 속에 있는 주님의 무한한 사랑, 그 사랑의 힘을 보고 느끼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도 주님처럼 사랑의 제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주님의 죽음과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주님,당신의 그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의 은총, 그 힘이 저를 사로잡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드러나는 그 무한한 사랑! 
    
    우리가 이 주님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보고 깨치게 된다면 인간 삶에는 획기적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 참으로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어린 아이가 이 사랑을 깨우쳤다면 
    그의 전 생애를 그분께 드리게 되는 놀라운 사랑입니다...
    
    늦게 부름을 받아서 그 사랑을 깨우친 사람은... 왜 이렇게 늦게 깨달았는가 싶어서, 가슴을 치며 통회자복케 하는 사랑입니다.
    어려서 깨달은 아이는... 그가 세상의 많은 길을 돌고 돌아서라도... 그 사랑을 잊을 수 없어서 돌아오고야마는 사랑입지요...
    그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가난해도 가난한 것이 아님을 압니다...
    세상 어느 구석 한 켠에 있다해도... 그가 머무는 곳에서 온 우주를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의 고통은 더 이상 고통만이 아니라, 고통을 통하여 은총의 자리로 나아가게 되는 놀라운 사랑입니다.
    획기적인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것은 이제 이 세상을 훌쩍 건너 뛰어서 영원한 나라, 천상의 것에 귀를 기울이며 살게 되지요. 그리고 이렇게 삶을 고백하게 된답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멋지게 살며,
    
    길이 안 보여도 두려움 없이 걷고 있습니다.
    의지할 아무것도 없지만 확신을 지니고 하느님을 의지하면서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것이고 그분은 예비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세속적인 성공의 삶으로가 아니라 신앙적인 믿음의 삶으로 불리움받았습니다.
    
    - 마더 데레사 묵상집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중에서 -
    
    
    그는 지금 세상에 속해 있지만, 
    세상을 위해서 더 이상 살지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이런 믿음과 신앙으로 
    살아갈려고 그는, 혹 그녀는 몸부림을 치며 노력할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 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어떻게 이 사랑을 전해야 할른지요...
    깨달은 이 사랑을 어떻게 보여드려야 될른지요...
    어떻게 살아야 주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살 수 있을런지요...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만드는 이 놀라운 사랑에... 오늘도 야곱의 우물 생수 한 잔을 드시라고 내려놓습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사랑의 제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주님의 죽음과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주님, 당신의 그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의 은총, 그 힘이 
    저를 사로잡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묵상글의 한 줌을 붙잡아서 마음을 모아 성호를 긋습니다.
    야곱이 우물가에서 머물다 가는 벗님들의 고백도, 기도두
    같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도 은혜로운 성금요일 밤 되시기를 두 손을 모읍니다.
    
    
    
    
    소스입니다.*^^*
    
    <ul><img src="http://www.mariasarang.net/files/pictures/t.JPG">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3pt"> 
    <b>주님 수난 성금요일-주님의 무한한 사랑의 증거인 수난</b>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3pt">
    <b>[요한 18,1-­19,42]</b>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필자가 묵상한 구절을 중심으로 싣습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br>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br>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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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이는 직접 본 사람이 증언
    하는 것이므로 그의 증언은 참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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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는 여러분이 믿도록 자기가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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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성경 구절은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볼 
    것이다”하고 말한다. 그 뒤에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게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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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다인들이 두려워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빌라도가 허락하자 그가 가서 그분의 시신을 거두었다. 
    언젠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도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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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다인들의 장례 관습에 따라 
    향료와 함께 아마포로 감쌌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에 정원이 있었는데, 그 정원에는 아직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새 무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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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은 유다인들의 준비일이었고 또 무덤이 가까이 있었으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그곳에 모셨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b>
    ※『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 문호영 신부(예수의 성모관상수도원) - </b>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오늘은 파스카 성삼일의 둘째 날, 주님 수난 성금요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수난 예식을 통해 우리를 위해 고통받고 죽으시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바로 그 고통과 죽음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무한한 은총과 영원한 구원에 대해 감격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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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바라보면서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랑하실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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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의 사랑을 인간이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체험한 사랑은 모두가 유한한 사랑인
    데 비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은 무한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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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이 세상에서 무한한 사랑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무한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시지만 인간에게는 그것이 낯설고 어설프고 
    의아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서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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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설령 그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보고 받아들이려 한다 해도 그동안 
    인간이 체험해 왔던 그 유한한 사랑의 잣대로 하느님의 사랑을 보고 받아
    들이려 하기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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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드러나는 그 무한한 사랑! 우리가 이 주님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보고 깨치게 된다면 인간 삶에는 획기적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 참으로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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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고 바라보고 자꾸 기억하고 되새기는 것은 
    우리의 기억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주님의 그 십자가 
    죽음 속에 있는 주님의 무한한 사랑, 그 사랑의 힘을 보고 느끼기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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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마침내 우리도 주님처럼 사랑의 제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주님의 죽음과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주님,당신의 그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의 은총, 그 힘이 저를 사로잡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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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드러나는 그 무한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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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이 주님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보고 깨치게 된다면 
    인간 삶에는 획기적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 참으로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네. 그렇습니다...
    어린 아이가 이 사랑을 깨우쳤다면 
    그의 전 생애를 그분께 드리게 되는 놀라운 사랑입니다...
    <br>
    늦게 부름을 받아서 그 사랑을 깨우친 사람은...
    왜 이렇게 늦게 깨달았는가 싶어서, 가슴을 치며 
    통회자복케 하는 사랑입니다.
    <br>
    어려서 깨달은 아이는...
    그가 세상의 많은 길을 돌고 돌아서라도...
    그 사랑을 잊을 수 없어서 돌아오고야마는 사랑입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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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가난해도 가난한 것이 아님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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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어느 구석 한 켠에 있다해도...
    그가 머무는 곳에서 온 우주를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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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의 고통은
    더 이상 고통만이 아니라, 고통을 통하여 
    은총의 자리로 나아가게 되는 놀라운 사랑입니다.
    <br>
    획기적인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것은 이제 이 세상을 훌쩍 건너 뛰어서
    영원한 나라, 천상의 것에 귀를 기울이며 살게 되지요.
    그리고 이렇게 삶을 고백하게 된답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멋지게 살며,
    <br>
    길이 안 보여도
    두려움 없이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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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지할 아무것도 없지만
    확신을 지니고 하느님을 의지하면서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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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그분의 것이고
    그분은 예비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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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세속적인 성공의 삶으로가 아니라
    신앙적인 믿음의 삶으로 불리움받았습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9pt">
    - 마더 데레사 묵상집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중에서 -</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그는 지금 세상에 속해 있지만, 
    세상을 위해서 더 이상 살지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이런 믿음과 신앙으로 
    살아갈려고 그는, 혹 그녀는 몸부림을 치며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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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br>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 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어떻게 이 사랑을 전해야 할른지요...
    깨달은 이 사랑을 어떻게 보여드려야 될른지요...
    어떻게 살아야 주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살 수 있을런지요...
    <br>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만드는 이 놀라운 사랑에...
    오늘도 야곱의 우물 생수 한 잔을 드시라고 내려놓습니다.
    <pre><FONT color=purple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우리도 주님처럼 사랑의 제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주님의 죽음과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주님, 당신의 그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의 은총, 그 힘이 
    저를 사로잡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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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글의 한 줌을 붙잡아서 마음을 모아 성호를 긋습니다.
    야곱이 우물가에서 머물다 가는 벗님들의 고백도, 기도두
    같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br>
    오늘도 은혜로운 성금요일 밤 되시기를 
    두 손을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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