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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의 수의(壽衣)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17 조회수769 추천수17 반대(0) 신고
 
복음: 요한 20,1-9

요한이 전해주는 빈무덤 사화.
마르꼬나 루가나 마태오처럼 천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빈 무덤이다.

무덤의 주인도 없고
천사도 없는 대신 
요한의 빈무덤엔 수의(壽衣)만 흩어져 있다.

몸을 감쌌던 아마포는 풀어져 있었고,
머리를 덮었던 수건은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굳이 수의의 상태를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는 것은.
그것으로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머리 수건을 잘 정돈해 개켜놓았다는 것으로...  
수의를 풀어주어야 했던 라자로의 소생 사건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주석가들은 말한다.

그것 뿐일까?
그렇다면 수의 전체가 곱게 개켜져 있더라면 더욱 좋았지 않았을까?

...................

흐트러져있으면서도, 개켜져있는 
예수님의 수의에서는 
동(動)적인 움직임과 정(靜)적인 고요가 함께 공존한다.

능동적인 의지와 수동적인 의탁.
정적인 기도와 동적인 활동이 늘 조화롭게 이루어졌던
그분의 일생을 대변해주는 수의 한벌!
 

그분의 수의는 또한 
그분의 부활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도 말하고 있다.

풀어헤쳐진 아마포는 그분의 부활이 수동적이었음을 알리고,
즉 누군가가 수의를 풀어드렸음을 뜻하고.
개켜놓은 수건은 그분의 부활이 능동적이었음을 알린다.
즉 그분 스스로 수건을 걷어 정돈하셨음을 뜻한다.

그렇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의 능동적인 의지에 의해 '다시 살아나신' 사건이며
동시에 아버지의 손에 '일으켜진' 사건이라는 뜻이다.
(요한의 빈 무덤 이야기에서는 
두 제자들의 동작까지도 이중적인 움직임이 공존한다.
즉 달려가고 멈추고 하며 서로 양보하고 협력하고 있다.)


자, 그렇다면 
한벌의 수의는 그것만을 말하고 있을까? 

풀어 흐트러진 옷자락은 
이제부터 그분의 제자들이 입어야 할 옷이고
정연하게 개켜진 머리 수건은 당신의 몫으로써 남겨두었다고 한다면,
수의는 바로 그분을 머리로 하고 
제자들을 몸으로 하는 교회를 상징한다고 한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세워진 교회.
그분이 머리 되시고 제자들이 지체가 되는 교회.
그분의 수의를 입고 죽음을 미리 앞당겨 죽는 교회.
그래서 그분에 의해 다시 일으켜지는 교회.

우리는 그분의 수의를 입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의미가 바로 그러하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언제 어디서나 전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이러한 전언들을 남겨진 수의에서 발견할 수 있다면 
빈 무덤은 정말 비어있었던 것이 아니다.

무덤은 그분의 부활 메시지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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