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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 나는 당신을 흠숭(欽崇)하나이다!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26 조회수545 추천수5 반대(0) 신고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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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부활,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


예수님, 나는 당신을 흠숭(欽崇)하나이다!


"나는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마테오 28,20)

진정으로 사랑하고 만유 위에 사랑하는 것은 흠숭의 시작이 된다. 
지고의 사랑과 흠숭은 별개의 것이지만, 두 가지가 함께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  그래서 흠숭하는 사랑이 되며 사랑하는 흠숭이 된다.
감실 안의 예수님께서는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들에 의해서만 흠숭되시며, 그분을 흠숭하는 이들에 의해서 깊이 사랑되신다.

사랑의 예술가들이었으며 전문가들이었던 성인들은 성체 성사에 계신 예수님을 충실하고도 열절히 흠숭하였다.  성체께 대한 흠숭이야말로 우리가 천국에서 그분께 영원히 드릴 흠숭과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항상 간주되어 왔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현실에 대한 직관(直觀)이 아직은 베일에 가려져 있으나, 신앙을 통하여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성체 성사의 흠숭에 대하여 성인들은 크나큰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흠숭은 자주 수시간씩 계속되었으며, 어떤 때에는 하루 종일,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루카 10,39) 그분과 사랑으로 일치되어 그분을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던 베타니아의 마리아처럼, 그들은 순결하고도 감미로운 흠숭의 사랑에 자기들의 마음을 쏟았다.

성 베드루 쥴리안 에이마르의 열정에 찬 절규를 들어보자.
"오 주님, 저로 하여금 당신 성체의 옥좌 밑에 놓을 발판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챨즈 드 푸꼬 수사가 감실 앞에서 쓴 글을 읽어보자.
"오 하느님 이 얼마나 엄청난 기쁨입니까!  열 다섯 시간 이상 다른 아무 것에 대해서도 신경쓰지 않고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며 당신께 '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얼마나 감미로운 기쁨입니까. . . !"

모든 성인들은 성체께 대한 흠숭으로 불타는 이들이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성 보나벤뚜라와 같은 위대한 교회 박사들로부터, 성 비오 5세와 성 비오 10세와 같은 교황들, 아르스의 거룩한 신부와 성 베드루 쥴리안 에이마르와 같은 신부들, 성녀 리타, 성 파스칼 바일론, 성녀 벨라데따 수비루, 성 제랄도, 성 도미니끄 사비오, 성녀 젬마 갈가니... 와 같은 겸허한 영혼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인들은 성체께 대한 열절한 흠숭가들이었다.  이 간택된 영혼들의 사랑은 진정했으며, 그들은 감실 안의 예수님 앞에서 보내는 밤과 낮의 시간들을 헤아리지 않았다.

성 프란치스꼬 아씨시는 제대 앞에서, 때로는 밤을 새우면서, 그 태도가 얼마나 신심깊고 겸손한지 그를 보는 이들이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40시간 신심의 걸인"이라고 불리웠던 성 분도 라브르는 성체가 엄숙하게 현시되어 있는 성당들 안에서 여러 날을 보내었다.  이 성인이 로마에서 40시간의 신심을 하고 있는 성당들을 찾아다니며 예수님 앞에서 늘 무릎을 꿇고 흠숭의 기도에 몰두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8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으며, 곤충들이 기어올라와 온 몸을 물어대어도 그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 번은 성 알로이시오 공사가의 사후에 그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는데, 어떤 자세로 그릴 것인가에 대하여 의논들을 하였다.  결국은 성인이 제대 앞에서 흠숭하고 있는 자세로 그리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성체께 대한 흠숭이 이 성인의 성성을 가장 뚜렷이 나타내는 특징이기 때문이었다.

예수 성심께 특별히 가까웠던 성녀 마르가리따 마리아 알라콕은 어느 성 목요일에 14시간 동안 쉬지 않고 엎드려 흠숭하였다. 성녀 프란체스 사비에르 카브리니는 예수 성심 축일에 12시간 동안 계속해서 성체께의 흠숭에 몰두했는데, 성녀가 어찌나 성체의 주님께 매혹되어 있었던지, 한 수녀가 성녀에게 제대 주위의 꽃들이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을 때, "저는 꽃들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저는 단 하나의 꽃, 예수님만을 보았읍니다,"라고 하였다.

성 프란시스 드 살레즈가 밀라노의 대성당을 방문한 후 누군가가 그에게 물었다. "주교님, 많은 대리석 조각물들을 보셨지요?  매우 훌륭하지 않았습니까?"  거룩한 주교께서 대답하였다. "무슨 말을 듣고 싶으신 겁니까?  저는 감실 안에 계신 예수님께 정신이 팔려서 그 모든 예술적인 미를 감상하지 못하였습니다."  유명한 성당들을 마치 박물관인 것처럼 생각없이 방문하는 우리들에게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정신의 집중

성체를 흠숭할 때 정신을 집중해야 함에 대한 좋은 예가 있다.
모데나 대학교의 교수였던 복자 콘타르도 페리니가 하루는 주님을 방문하기 위하여 성당에 들어갔다.  그리고 흠숭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의 두 눈이 감실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누가 와서 그의 망토를 벗겨갔는데도 이를 알지 못하였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뽀스텔은 성체 조배 때 어찌나 경건하고 정신이 집중되어 있었던지 벼락이 떨어져도 꼼짝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들 말하였다.
그런데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가 한 번은 성체 조배 중에 옆에 지나가는 사람을 무심코 쳐다보았다.  이 순간적인 분심에 대하여 성녀가 얼마나 가슴아프게 생각했던지 성녀는 오랫 동안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외치면서 울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성당 안에서의 우리의 태도에 대하여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 주님께서 엄숙하게 현시되어 있을 때에도 우리는 쉽사리 좌우로 돌아보며 아주 작은 것들에 의해서도 주의가 흐트러진다.  더 나쁜 것은 그렇게 하고도 슬프게 생각하거나 뉘우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 성인들은 얼마나 섬세한 사랑을 가졌던가!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는 이렇게 말했다. "성체 성사의 예수님 앞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본질을 대하고 있는 천국의 복된 이들처럼 해야 합니다."  성인들은 성당 안에서 바로 그렇게 했다.  아르스의 거룩한 신부는 성체 성사 안의 예수님을 어찌나 열절하고 집중하여 흠숭했던지 사람들은 그가 예수님을 두 눈으로 직접 뵙고 있다고 확신하였다.
사람들은 성 원선시오 드 폴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감실 안의 예수님을 보고 계십니다."
또 성체 흠숭의 출중한 사도였던 성 베드루 쥴리안 에이마르에 대해서도 같은 말들을 했다.  삐에트렐치나의 비오 신부는 성 에이마르 신부를 본받으려고 했다.  비오 신부는 40년 동안 성 에이마르 신부의 작은 상본을 그의 책상 위에 모셔놓고 있었다.


죽은 후에까지도

주님께서는 어떤 성인들에게 죽은 후에도 성체 성사를 흠숭하는 행위를 할 수 있게 해주셨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볼로냐의 성녀 카타리나가 임종한 후 며칠 동안 그의 몸이 제대 앞에 놓여져 있었다.  그런데 성녀의 시신이 일어나 흠숭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취하였다.  성 파스칼 바일론의 장례 미사 때 성체 거양 및 성혈 거양때 성체 성사께 대한 흠숭을 표시하기 위하여 그의 눈이 두 번 떠졌다.
복자 마테오 기르겐티의 장례 미사 때 그의 두 손이 성체 성사를 향하여 합장되었다.  라벨로에서는 복자 보나벤뚜라 데 포뗀자의 시신이 제대 옆을 지나갈 때 감실의 예수님을 향하여 경건하게 고개를 숙였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아가 8,6), 그리고 "이 빵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요한 6,59)라는 말씀들은 참으로 진실이다.  성체는 우리의 사랑이신 예수님이시다.  성체는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님이시다.
성체를 흠숭하는 것은 우리에게 생명력을 주며 우리가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님과 일치되도록 해주는 천상적인 사랑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기 위하여 항상 살아계신 분이시다" (히브리 7,25).

우리가 성체께 흠숭드릴 때에는 형제들의 구원을 위하여 성부께 간구하시는, 면병 형상 안의 예수님과 일치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 대한 가장 고귀한 애덕의 행위가 된다.  즉 그들이 천국을 얻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야먄 비로소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성체께 대한 흠숭으로 인하여 지옥을 면하고 구원되었는가를 보게 될 것이다.  파티마의 세 목동들에게 나타난 천사가 아이들에게 보속을 위한 아름다움 성체 기도를 직접 가르쳐주었다. 우리도 이 기도를 배우자.

오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 성부, 성자, 성령이여, 당신을 깊이 흠숭하나이다.  그리고 당신께 이 세상의 모든 감실들 안에 계시는, 모욕당하시고, 독성당하시고, 무시당하시는, 가장 고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 영혼과 신성을 바쳐드리나이다.  그리고 예수 성심과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의 무한한 공로를 통하여 불쌍한 죄인들의 회개를 간구하나이다.

성체께 대한 흠숭은 사랑의 극치이며 영혼들을 구하기 위한 사도직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효과를 지닌 신심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마리아의 위대한 사도였던 성 막시밀리언 마리아 콜베 신부는 그의 수도원들을 건설할 때 수사들의 숙소를 짓기 전에 성당을 먼저 지었다. 그리하여 항구적인 성체 현시와 흠숭을 즉시 시작하였다.
한 번은 폴랜드에 있는 그의 "티없으신 이의 도시"를 찾아온 방문객을 안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성체 조배 성당"에 들어갔다.  신부는 손님에게 성체 성사를 가리키면서 "우리의 모든 삶이 여기에 의존되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더 좋은 몫

가르가노의 오상 받은 수사, 삐에트렐치나의 비오 신부는 사방에서 몰려오는 신자들에게 오랜 시간 동안 고해를 준 후에 남은 시간은 밤이든 낮이든 거의 전부 감실 앞에서 성모님과 함께 수백 단의 묵주를 드리며 성체를 흠숭하는 데에 보냈다.
한 번은 만프레도니아의 주교였던 체사라노 몬씨뇰이 비오 신부의 수도원에 와서 8일 간의 피정을 하였다.  매일 밤 주교는 다른 시간에 일어나서 성당으로 갔는데, 그 때마다 비오 신부가 성체 조배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가르가노의 이 위대한 사도는 전 세계에 걸쳐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동시에 한 곳 이상의 곳에 있을 때도 있었다.  그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 있었으며 그의 손에는 늘 묵주가 쥐어져 있었다.  그는 영적 제자들에게 자주 이렇게 말하였다.  "나를 찾으려면 감실 가까이 와서 보라."

우리 시대의 또 한 분의 위대한 사도인 제임스 알베리오네 신부는 그의 출판물을 통한 사도직 전체를 성체께 대한 흠숭의 토대 위에 세웠다. 그리하여 그의 회에 속한 이들에게는 밤낮 돌아가며 엄숙하게 현시된 우리 주님을 흠숭하는 성소(聖召)가 주어졌다.

성체께 대한 흠숭은 참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더 좋은 몫"(루카 10,42)이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선택했던 "단 한 가지 필요한 것"(루까 10:42), 즉 겸손하고 사랑에 찬 흠숭을 간과하고 "많은 일로 걱정하며 부산을 떠는"(루카 10:41) 마르따를 책하셨다.

그러면 성체를 흠숭함에 있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사랑와 열심은 어떤 것일까?  예수님께 의해서 "모든 것이 존속(存續)"(콜로새 1,17)되고있다면, 그분께 가서 그분과 함께 있고 그분과 일치하는 것은 우리와 온 우주를 지탱하고 계시는 그분을 발견하고 얻고 소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만이 모든 것이시다.  다른 모든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라고 리지외의 성녀 테레사는 말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신 분을 얻기 위하여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을 버리며,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을 추구하기보다 모든 것인 분을 위하여 우리 자신과 우리가 가진 전부를 써버리는 것이 우리에게 참다운 부유를 주며 가장 높은 지혜를 주는 것이 아닐까?
바로 이것이 성 베드루 쥴리언 에이마르가 강조했던 점이다.
"지극히 거룩한 성체 성사 앞에서 흠숭하며 보낸 한 시간이 많은 성당들을 참배하며 많은 성인들의 무덤을 찾아 공경하는 것보다 더 많은 유익을 가져댜 줄 것이다."
이것이 또한 삐에트렐치나의 비오 신부가 생각했던 바이다.
"천년 동안 인간적인 영광을 누리는 것은 성체 성사의 예수님과 감미롭게 대화하며 보낸 한 시간보다 가치없는 것이다."

성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감실을 항상 호위하며 주님께 흠숭드리는 천사들을 부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성체 성사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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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더욱 커지셔야하고 나는 작아져야 합니다. (요한 3,30)
예수님, 저는 예수님께 의탁합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가!
모든 성인들과 천사들의 기도와 선행도 한 대의 미사와 비교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저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 저희의 전부가 되소서.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시면, 질그릇같은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
http://예수.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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