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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약속의 땅이 야속한 땅 / 약속의 땅 (전원 신부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26 조회수680 추천수13 반대(0) 신고

  얼마전에 저는 어느 여행사 순례단의 초대로 8박9일의 짧은 성지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우리 일행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의 탈출기를 흉내라도 내는 듯 이집트에서 출발하여 시나이 광야를 거쳐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순례를 하였습니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로 향하는 여정 동안 버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나무 한 그루도 제대로 보기 어려운 메마른 사막이었습니다. 이집트 국경을 넘어그 옛날 약속의 땅이라던 이스라엘에 들어섰지만 그곳 역시 이집트와 별로 다를 바 없는 메마른 사막 기후와 희뿌연 석회석 돌건물의 도시들이 목마른 사람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스개 이야기지만, 모세가 이집트에서 필사의 탈출을 하여 자기 민족을 이끌고40년간 광야를 헤매다가 약속의 당을 눈앞에 두고 느보산 꼭대기에서 죽은 것은, 하느님이 주시겠다던 가나안 땅을 보고 "아니, 저런 땅을 얻으려고이 고생을 했단 말인가!" 하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록 이스라엘 땅이 모세 시대에 그 지역에서는 다른 곳보다 좀 비옥한 땅이었다 하더라도, 좋은 자연환경을 안고 사는 저희 눈에는 분명 하느님이 주신 그 땅은 '약속의 땅' 이 아니라 '야속한 땅' 이었습니다.

 

  바라보기만 하여도 목이 마름 불모의 땅, 지금도 인종적, 종교적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나라, 온갖 종파의 건물들이 어지럽게 늘어져서 저마다 각양각색의 예배소리를 뿜어내고 있는 혼란스럽기만 한 도시 예루살렘 - 하느님은 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곳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신명 27. 3)이라고 했는지요?

 

  순례 마지막 일정에 해방자 모세가 잠들어 있다는 느보산에 올라 모세처럼 그 약속의 땅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습니다. 저는 우리 일행이 순례를 했던, 아스라이 보이는 이스라엘 땅을 다시 바라보면서 순례지의 풍경들 하나하나가 마치 우리들 내면의 자화상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저마다 가슴 속에 자신들의 광야를 품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두은 과거의 죄나 상처가 광야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약함과 무능력이 자신의 광야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때론 자신들의 광야에서 미아가 되어 헤메기도 하고, 때론 그곳에서 불안과 고독 속에 몸부림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것은 마치 광야 한가운데 세워져 온갖 갈등과 분열에 휩싸여 있는 예루살렘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우리도 이런 내면의 광야를 하느님이 주신 약속의 땅으로 선물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광야에는 늘 목마름과 갈망이 있기에, 그리고 그 안에서 갈등과 분열이 끊임없이 솟아오르기에, 하느님은 오히려 우리 안의 이 약하고 험한 자리를 당신의 땅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들 광야 한가운데 자리 잡은 이 약속의 땅으로 찾아오셔서 이곳을 놀라운 주님 섭리와 은총의 장소로 바꾸어 놓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의 광야에 오실 주님을 깊이 만나는 날, 삶의 목마름도 끝이 날 것 같습니다. 아니,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이 품고 사는 광야가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와 보살핌의 장소임을 깨닫는 날, 우리들의 자화상 이스라엘 땅에도, 나아가 지구촌 곳곳에도 평화가 깃들지 않을까요?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 다녀온 먼 순례의 길, 그 길은 결국 한 뼘 내 마음속에 있는 약속의 땅을 찾아 헤맨 순례 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글은 말씀지기 1월호, 편집자 레터에 실려 있는 전원 신부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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