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생명의 빵' - [유광수 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5-01 조회수651 추천수3 반대(0) 신고

<생명의 빵>(요한 6, 30-35)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빵"이란 말이 여러 번 나온다. 빵이란 무엇인가?
어떤 빵이든 빵은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빵은 상대방에게 먹혀지는 존재이지 자신이 먹는 존재는 아니다. 어떤 빵을 먹느냐에 따라서 먹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다르다. 독약이 든 빵을 먹는 사람은 그 빵을 먹고 죽을 것이고 영양가 있는 빵을 먹으면 그 사람에게 건강을 지켜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빵도 생명 자체를 주는 빵은 없다. 일반적으로 빵은 생명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양분을 제공해 주기는 할지라도 생명 자체를 주지는 못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 생명을 주는 유일한 빵이 있다. 에던 동산에 생명을 주는 나무가 있었듯이 이 세상에서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생명의 빵이 있다.

 

그 빵이 어떤 빵인가?
오늘 복음에서 "나는 생명의 빵이다."라고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이 곧 "생명의 빵"이다.
예수님이 생명의 빵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나는 00이다"라는 말은 하느님이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는 표현이라고 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라는 말은 바로 당신이 인간에게 어떤 존재이신지?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를 밝히시는 것이다.

 

 즉 당신의 존재는 인간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오신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모든 일들은 그리고 하신 모든 말씀들은 다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당신 자신을 내어 놓으신 빵이다.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먹으라고 내놓으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들이나 말씀들을 먹는 사람은 생명을 얻는 다. "사람이 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대로 말씀이 곧 양식이며 생명을 먹는 것이다.

 

인간이 하늘에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하느님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이고 인간이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이 먹을 수 있도록 말씀으로 또는 행동으로 당신 자신을 내어 놓으신 것이다. 즉 말씀으로 당신 자신을 쏟아 놓으신 것이다. 우리가 오늘 생명의 빵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말씀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받아 먹는 것이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대로 인간은 늘 배고프고 목마른 존재이다. 먹고 먹어도 배고프고 마시고 마셔도 목마른 것이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먹고 마시는 것을 빼놓으면 살 맛이 안 난다. 어찌보면 먹고 마시기 위해서 사는 것 같다. 그만큼 인간은 허기져 있고 목말라 있다.

 

 무엇에 대한 배고픔과 목마름인가? 말씀에 대한 배고픔과 목마름이다. 왜 그런가?

 

요한 복음 서론에서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 또한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 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1, 1-4)라고 말씀하신 대로 인간은 말씀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말씀은 마치 어머니의 품 속과 같고 태아가 잉태하여 자리 잡고 자랐던 자궁 속과도 갖다. 그래서 인간은 "어미 품에 안겨있는 어린이인 듯 내 영혼은 젖 떨어진 아기와 같나이다. 이스라엘아,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주님만 바라고 살아가라."(시편130 2-3)고 노래하였듯이 말씀에 깊이 잠길 때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행복한 자는 즉 어미 품에 안겨 있는 어린이처럼 "밤낮으로 주님의 법 묵상하도다."(시편 1,2)라고 말씀하신 대로 묵상하는 자다.


본능적으로 인간은 말씀에 대한 배고픔과 목마름이 있기 때문에 늘 말씀을 그리워하고 있다. 즉 인간의 배고픔과 목마름은 하느님에 대한 그리움이며 그것은 곧 말씀에 대한 목마름과 배고픔이다.


이에 대해 시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하느님 내 하느님, 당신을 애틋이 찾나이다. 내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 하나이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 이 몸은 당신이 그립나이다. 당신의 힘, 영광을 우러러 보옵고자, 이렇듯 성소에서 당신을 그리나이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당신의 생각, 밤샘을 할 때에도 당신의 생각 내 구원은 바로 당신이시니, 당신 날개 그늘 아래 나는 마냥 좋으니이다."(시편 107 2-3.7)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오며, 당신의 말씀을 기다리나이다.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내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나이다."(시편129,5-6)


"당신의 법이라면 말부터가 입에 달라, 꿀보다도 더하게 입맛이 도나이다. 당신의 정법에서 깨달움을 얻사오니, 그러기에 사악의 길이 다 미워지나이다."(시편118,103-104)

 

이 세상에 빵은 많이 있다. 그러나 모든 빵이 다 생명을 주는 빵은 아니다. 생명의 빵은 단 하나뿐이다. 그 생명의 빵은 예수님이시고 말씀이다. 이 생명의 빵을 알아보는 것이 곧 믿음이다. 그리고 그 빵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곧 믿음의 생활이다. 따라서 우리는 매일 이 빵을 먹어야 한다. 빵은 원래 먹여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즉 먹으라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 놓아도 먹지 않으면 피가 되고 살이 될 수 없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이 생명의 빵을 먹고 마신다는 것이다. 먹고 마신다는 것이 무엇인가? 매일 복음의 말씀을 음미하면서 그 뜻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즉 깨달움은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해준다. 깨달움은 우리에게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보게 해준다. 깨달움은 그 동안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모든 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준다. 깨달움은 우리의 어둠을 벗겨내고 빛을 보게 한다. 깨달움은 보지 못해서 절망 속에 살아가던 이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이런 깨달움이 곧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생명력을 갖게 한다. 그것이 곧 생명이다.

 

이런 깨달움을 얻으려면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 가야하고 믿어야 한다. "나에게 오는 사람, 나를 믿는 사람"이란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즉 매일 말씀을 먹기 위해 묵상하고 음미하며 깨달은 그 말씀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매일 이렇게 말씀을 먹고 마시는 사람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이는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요한 6,56-58)

 

또는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도록 얻게 하려고 왔다."(요한10,10)라는 말씀들을 이해할 것이다.  매일 말씀을 먹고 마시는 사람은 늘 충만함 속에 살아갈 것이다. 어디에 있든 늘 평화롭고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며 생활할 것이다.

 

행복한 사람이여  불신자들이 꾀하는 말을 그는 아니 따르고 죄인들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망나니들 모임에 자리하지 않나니 차라리 그의 낙은 야훼의 법에 있어 밤낮으로 주님의 법 묵상하도다.

 마치도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인 양 제 때에 열매 내고 잎이 아니 시들어 그 하는 일마다 잘되어 가도다.   

                                                            -유광수 신부-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