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 [유광수 신부님 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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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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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6-05-03 | 조회수638 | 추천수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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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요한 6, 44-51) * * * * * * *
영성생활은 이러한 진리를 깨닫고 나의 모든 삶을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대로 따라 가도록 노력하는 생활이다. 즉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며 하느님은 나의 머리카락까지 모든 것을 낱낱이 섭리하시는 분이시며 보살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이끌어 주시는 대로 따라가는 생활이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로마 8,14)라고 말했던 것이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 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요한 10, 14-15. 27-28)
그래서 예수님은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이들!"(마태 5, 6)이라고 하셨다. 나에게는 아버지께 가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는가? 아버지께 가야 한다는 주리고 목마름이 있는가?
우리가 아버지의 말씀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주림과 목마름이 없기 때문이다. 배고프지 않은 사람에게 음식이 반갑지 않고 목마름이 없는 사람에게 물의 필요성을 못 느끼듯이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름이 없는 사람이라면 아버지의 말씀을 들어도 그 고마움을 느낄 수 없으리라.
맛을 못느끼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맛들여라. 아버지의 말씀은 진 꿀보다 더 달도다." 라는 그 말을 이해하겠는가? 아버지의 말씀을 배우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아버지께 나아갈 수 없다. 배우지 않는데 어떻게 알고 아버지께 나아가겠는가? 배움이 없이는 절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고 영성 생활을 발전시킬 수 없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은 아버지께 나아가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이다.
성서를 공부한 학자들라고 해서 또 신학자들이라고 해서 다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학문적으로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전혀 영적이지 못하다. 배움은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켜 주는 배움이어야 한다.
어떤 배움이든 우리를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는 대로 잘 따라 가게 하는 믿음을 갖게 해주는 배움이어야 한다. 우리가 이것 저것 많은 것을 배운다고 하지만 과연 그런 것들이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켜주는 것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오히려 우리의 믿음을 저해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피상적인 자세는 아니다. 수동적이지만 적극적인 수동자세이어야 한다. 좋은 자세가 마리아의 자세이다.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의 말씀을 듣고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자세는 수동적인 자세이다.
그러나 수동적이지만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지도록 마리아는 혼신의 삶을 살으셨다. 한번도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않으셨고 아무리 고통스러운 순간이라도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지라도 말씀 하신 대로 이루워 지도록 그 말씀에 충실하셨다. 이것이 영성생활을 하는 수동적인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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