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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6) 가는 세월을 누가 막는다고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5-14 조회수626 추천수10 반대(0) 신고

 

지난 주에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요즘 공부하러 다니는 수필교실에서 점심 회식을 갔습니다.

스승의 날이 그 다음 주 월요일인데 그날은 수필 강의가 없는 날이어서 미리 땡겨서 선생님과 함께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함이었죠.

회식이래야 늘 오천원짜리 한식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앞서서 부지런히 먼저 가시고 있었습니다.

순간 아! 또 그분을 모시러 가는구나!

생각했더니 역시나 우리가 먼저 가서 앉아있는 식당으로 얼마 후에 그분을 모시고 오는 것이었죠.

 

그분은 전에도 여러번 우리와 함께 점심을 함께 하신 적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명문대학에서 평생을 교수로 계시던 문학박사이시지만 퇴임하신지 오래인 80대 중반을 넘으신듯한 연로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도 지금도 사무실을 가지고 집필도 하시고 강의도 가끔 나가시는 노익장을 자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부근에 그분의 사무실이 있었던 관계로 우리 선생님은 자주 그분을 식사할 때면 모시고 오던 터였습니다. 처음에 난 그분의 성함을 들었어도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 문간에도 가보지 못한 명문대에서 교수를 하셨고, 학문적으로만 연구하시는 학자이셨으므로  소설가나 시인처럼 대중에게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때문이죠.

 

그러나 내가 그분을 처음 뵌 날, 남편에게 이런 분 아냐고 했더니 대뜸 유명한 교수라고 하더군요. 예전에 연수받을 때, 그분의 강의를 여러번 들은 일이 있는데 명강의였다고 했습니다. 교육계에선  연수를 통해 널리 알려진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연로하시어 식사하실 때 손도 떨리는 걸 보았고, 허리가 많이 굽으시고 걸음거리도 너무 힘겨워 보였습니다.

 

식사를 하는데 바로 옆에 앉은 우리 선생님은 그분에게 자상하게  이것도 좀 잡숴보세요, 요것도 잡숴보세요, 맛있어요, 하면서 시중을 들어 주십니다. 생선가시를 발라서 하나하나 살코기만 접시 한켠에 놓아주시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 오더군요.

 

그렇게 지난 날에 명강의로 날리던 교수님이 이젠 나이 드시어 숟가락질도 젓가락질도 하기 힘들어 하시는 모습, 손이 떨려 생선가시를 발라내기 힘들어, 떼어 잡숫지 못하는 노인께 가시를 발라내어 드시기 좋게 놓아드리는 우리 선생님의 모습에서 마치 어린 자식에게 가시를 발라주던 엄마의 모습도 느껴지고 살가운 딸의 모습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늙는다는 것에 대해 느껴지는 연민 아픔같은 것도 함께 다가와서 참으로 복잡해지는 마음이었답니다.

 

제가

"선생님이 꼭 따님같아요."

라고 했더니

"나이로 따지면야 딸같지."

하십니다.

어느 젊은 수강생이 사온 꽃바구니를 선생님께 드렸더니 감사하다고 하면서

"이 꽃, 박사님 사무실에 갖다 놓으세요."

하시며 그분께 드리더이다. 

그리고 나서

"박사님, 다음주에 스승의 날이 있으니 좋은 말씀 해주세요."

라는 부탁도 하시더이다.

 

평생을 학생을 가르친 그분께선 비록 지금은 손떨림 증상 때문에 식사하기도 힘들어 보이고, 말씀하는데 숨도 차 하시지만 그 학자로서의 소양과 실력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선생은 절대로 학생 앞에서 잘난척 아는척 하지 말아야 해."

 

이 말씀이 첫마디였습니다.

 

"어떤 선생은 학생이 질문을 하면 막 화부터 내지. 얼굴이 새파랗게 되어 그것도 모르냐고 꾸짖는데 사실은 선생도 모르면서 말이야. 학생이 물으면 솔직하게 나 그거 모르는데 자네가 알아봐 가지고 오면 우리 같이 공부해보자 하면 될걸 가지고. 절대 선생은 교만해서는 안돼."

 

그때 우리 선생님이 

"저는요, 여기 우리 학생들이 저 무식하다고 아무것도 안 물어요. 아예 질문을 안 해요."

하고 말해서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죠.

 

누군가가

"그게 아니구요, 저희들이 아무 것도 몰라서 질문을 안해요. 질문도 뭘 알아야 하는 거래요."

해서 또 한번 웃었습니다.

 

노교수님께선 숨차 하시면서도 말씀을 계속하십니다.

"그게 바로  교학상장(敎學相張)이란 거야.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간에 발전한다는 거이지. 학생과 스승은 서로가 배우는거야. 강의를 하려면 선생은 그 준비를 하면서 사전도 찾아보고 이것저것 책도 보면서 공부를 하게 되는거지. 학생은 여러명이고 생각도 다 다르니까 질문도 다양하게 나오면서 또 선생은 거기에서도 배우는거지. 그래서 훌륭한 학생들과 함께 있으면 그 선생은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거야. 내가 강의 준비를 하면서 사전 찾고 어쩌고 하면 어느새 한 두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그동안은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으니 그 시간이 내겐 바로 참선의 시간도 되지. 학생을 가르치려면 그렇게 자신도 공부를 해야하고 학생을 통해 배우게 되니 그래서 선생은 절대 교만해선 안되는 게야."

 

우리 선생님께 그분은 교만하지 않는 선생이 되라는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말씀하실 때의 그분 눈빛은 초롱초롱하고, 해맑은  얼굴빛은 평생을 욕심없이 후학을 위해 살아오신 학자의 모습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그분을 부축하여 사무실에 모셔가는데,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겉모습을 뵈면 하릴없이 안쓰러운 노인으로 보이지만, 그분이 말씀하신 내용들은 참으로 귀한 말씀이라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삶의 지혜와 학문적 지식으로 가득차 있을 그분이, 그분을 모르는 사람이 볼 때엔 그저 자기 한 몸 주체하기 어려운 노인으로밖에는 보이지 않겠지요.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상에서 그분의 귀한 말씀을 들은 그날 저는 보이는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단정짓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다시 한번 했습니다.

 

이제 저도 나이를 먹고 보니  나이 먹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는 걸 느낍니다.

그래서 애정을 갖게 되고 그 입장에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남 나이 많은 것이 무슨 큰 약점이라도 되는듯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영원히 자신은 나이 안먹을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교만일 것입니다.

누구나 먹는 나이, 화살처럼 지나가는 시간을 누가 막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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