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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지막 분부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5-27 조회수635 추천수10 반대(0) 신고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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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지금은 돌아가신 어느 신부님의 내일(주님승천대축일)의 강론 글을 옮겨 온 것입니다.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나지만 그것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신부님께서는 천국에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예수 승천 대축일 강론 : 마지막 분부 (마르코 16,15-20)


이 세상은 완전 무결한 선인들만이 사는 곳이 아니라, 크고 작은 여러 가지 결점과 많은 결함을 지닌 나약한 인간들이 한데 모여 사는 곳입니다. 우리 이웃이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우리는 어떻게 처신하고 있는지요?
우리는 피해당한 만큼이나 또는 그 이상으로 앙갚음하려 들고 상대방의 잘못을 주위에 퍼뜨려 사회에서 매장시켜 간접으로 살인하려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형제 여러분,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는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살피십시오"(갈라디아 6,1).
또 오늘 복음은 형제를 바로잡아 주는 일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순서를 지키라고 합니다. 형제가 큰 잘못, 예를 들면 교회의 가르침을 크게 욕되게 하는 잘못이나(I코린토 5,11), 남들을 분열시키고 남을 죄짓게 하는 잘못(로마서 16,17) 등을 저질렀을 때 우선 서슴지 말고 타일러 주어야 합니다(레위기 19,17). 조용히 단 둘이서만 대화를 통해 진실을 가리어 형제를 반성시키게 하라고 하십니다.
"단 둘이 만나서 그의 잘못을 타일러 주시오"(18,15). 그래도 듣지 않으면 둘이나 세 사람의 증언을 통해 형제가 사실의 옳고 그름을 알아차리도록 증언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형제의 잘못을 따지고 고발하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세 사람의 증언으로 사실이 입증될 수 있도록 하십시오"(18,16).
둘셋의 증언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 교회의 마지막 결정과 판단에 따르게 하라고 하십니다.
"교회에 알리시오"(18,17). 그래도 듣지 않으면 그와의 관계를 끊고(디도서 3,11) 교회로부터 단절시켜 제거하라고 하십니다(I코린토 5,2).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기시오"(18,19).

따라서 오늘 복음은 형제의 큰 잘못을 과장, 확대하여 주위에 나팔 불지 말아야 하며 어떤 모양으로든지 앙갚음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형제가 큰 벌로 다스려지기를 바라지 말고 오직 회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형제가 비록 끝까지 회심을 거부함으로써, 결국 교회와의 인연이 끊겨 교회로부터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하게 되는 벌(파문)을 받았을지라도 이는 형제를 영원히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회심을 촉구하여 형제를 구원시키자는 데 그 본뜻이 있습니다(I코린토 5,6).

결론적으로, 형제가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우리도 모두 같은 죄인이라는 생각과 또 그 형제의 잘못은 그 형제 하나만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잘 보살피지 못한 잘못이기도 하다는 생각으로 그 형제의 잘못을 같이 걱정해 주고 같이 죄갚음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갈라디아 9,2). 그리하여 잘못을 저지르고 우리 모임(교회)에서 떨어져 갈라서려는 형제를 붙들어 주고 죽어 가는 형제를 살려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잃은 뻔했던 형제 하나를 얻어야 합니다(18,15).
"당신 형제가 잘못을 저지르거든 꾸짖고, 뉘우치거든 용서해 주시오"(로마서 17,3).

( 김용배 안드레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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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위의 김용배 신부님을 기억하며 어느 평신도 간부가 올린 글입니다.


어느 사제의 텅 빈 주머니


해마다 12월이 되면 가난하게 살며 자선의 삶으로 한 생애를 마감한 사제 한 분이 떠오른다. 김용배 안드레아 사제! 정말 뵙고 싶고 부르고 싶은 존경하는 사제이다.
그분이 선종한 지 13년이 지났건만 그분의 삶이 주마등같이 눈에 더욱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비단 나만의 추모의 마음이 아니리라 생각한다. 그분을 따랐던 신자들은 그때에도 성인사제라 불렀고 지금도 묘소에는 시들지 않는 꽃바구니가 놓여있다.

나는 그분을 레지오 세나뚜스 지도신부로 모시면서 곁에서 도와드렸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그분의 가난함과 자선의 삶을 알게 되었다. 또 주간 선교지 「빛가정」을 10여 년 간 발간하여 선교활동을 하실 때 도와드리면서 선교사명을 터득하였다.

그분의 주머니는 늘 텅 비어있었다. 주머니에 돈이 한푼도 없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았다. 외출 때 동행하면 그분은 유난히 주위를 살핀다. 불우한 형제나 걸인들을 찾는 것이다.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을 보면 재빠르게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얼마가 되든지 손에 잡히는 그대로 자선을 한다. 차비도 남기지 않고 탈탈 털어서 그냥 주는 것이다.

웃음을 머금고 “힘내세요, 형제!” 위로하면서 사랑이 넘치게 손을 잡거나 등을 쳐준다. 간혹 약간 두툼한 뭉칫돈도 머뭇거리지 않고 기쁜 표정으로 선뜻 건네준다. 나는 어떤 때는 걱정도 했다.
‘어딘가 소중하게 쓰려고 했을 텐데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 그러신 건 아닌가?’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분의 옷차림은 사시장철 간소하다. 검소한 생활을 하며 모두에게 나누어주는 사제에게 양복과 속옷을 선물하는 신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늘 한두 가지만의 옷차림이다. 무엇이 생기면 그 뒷날 바로 불우 형제에게 선물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몹시 추운 날에 드렸던 조끼를 입으시라고 했더니 추위를 잘 견디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사실은 그 조끼는 이미 어떤 가난한 형제가 입고 추위를 녹이고 있었다.

서울 시내 큰 성당에서 사목하시던 동창사제의 은경축에 다녀오신 적이 있었다. 그 본당 신자들이 동창사제들에게 금반지를 선물하더라고 해서 좀 보여달라고 했더니 빙긋이 웃으셨다. 그때는 이미 하향길에 어떤 불우 형제에게 선물한 뒤였다.

구례성당에서 사목하실 때는 정말 실천하기 어려운 사랑을 나누었다. 매주 광주에 오실 때마다 환자 한 사람과 동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난한 농촌 병자들을 파악하여 교우 병원에서 무료치료를 받도록 도와준 것이다.

인명은 재천이라 했던가? 나약하고 가난한 이를 위해 더 사셔야 할 그 사제는 병마에 쓰러지셨다. 수많은 시민들과 교우들의 애도 속에 길다란 장례행렬이 도심을 지날 때 영정을 바라보며, 왜 저런 분이 빨리 가셨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하던 그날이 잊혀지지 않는다.

사제의 방에는 몇 권의 서적만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쓸 만한 가전제품 하나 없었다. 오직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증거하고 실천한 김 안드레아 사제의 삶을 본 교우들은 그분을 따랐고 지금도 기도하고 있다.

간혹 묘지에 갈 때마다 참배객들의 발자국이 보인다. 자주 온다는 김 마리아 할머니는 인자하신 사제가 보고 싶다면서 묵주기도를 계속하였다.
숨을 몰아쉬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성모 마리아를 부르며 떠난 김 안드레아 사제의 영혼을 위해 이 밤을 새워 기도드리고 싶다.

( 어느 레지오 마리애 세나뚜스 단장이며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전문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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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형제 자매님은 죄인들의 회개와 고통받는 사람들과 사제와 수도자를 위해 미사와 기도때 기억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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