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두려움은 거짓이다 / 신원식 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5-27 조회수762 추천수5 반대(0) 신고

지난 5월 21일 가톨릭 출판사에서 있었던 가르멜 동정녀회(기도 공동체)주관의 관상피정 미사에서 해주신 신 원식 신부님의 강론 말씀입니다. 제가 메모를 한 것이기 때문에 놓친 부분도 있고 전달이 다소 미흡한 부분도 있습니다.

 

오늘 독서나 복음 말씀은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모든 사랑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오고, 우리가 사랑을 할때에 하느님을 알게 된다고 알려줍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아주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3장 이후부터는 예수님의 유언으로 그냥 부탁한다는 것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옵션이 아닙니다. 선택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입니다. 왜 사랑을 해야되나? 그것이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여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사랑을 하고 싶지만, 남편도 사랑하고 아내도 사랑하고 자식도 사랑하고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지만 생각과 같이 잘 되지 않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사랑하지 못하도록 하는가? 무엇이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가? 우리가 예수님 말씀대로 "사랑해야지" 하지만, 사랑하는데 대해서 실패하고 좌절하고 그로 인해 고통을 받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사랑하지 못하게 방해하는가?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중에 가장 자주 눈에 띄는 말씀은 무엇인가? "걱정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속해서 "두려워하지 마라." 라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신 말씀이지만, 자세히 읽어 보면 신구약을 통해 성모님께 성 요셉에게, 제자들에게도 "두려워하지 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저희를 떠나주십시오." 하자 "두려워 하지 마라." 고 하셨듯이 계속해서 "두려워 하지 마라." 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이 되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고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두려움이 우리를 지배할수록 우리의 삶은 고통스럽고 자유롭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없으면 행복하다." 라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하나? 기쁨이 충만해야하나? 내안에 기쁨이 충만하면 정상적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우리가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문제를 안고 살면서 이 문제가 없어지면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기쁨이 충만해야 한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고, 우리 삶의 본질적인 의미입니다.

 

모든 사람이 "사랑스럽다." 라고 하는 존재는 우리가 두렵지 않은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갓난아기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갓난아기를 보면 "사랑이 넘쳐난다." 는 것은 그 갓난아기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고 나를 해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아기도 조금만 크면 별로 사랑스럽지가 않습니다. 나를 애먹이고 그러기 때문에...

 

나이든 사람들이 젊었을 때, 가장 후회하는 것은 좀더 모험을 하지 못한 것이라고 90% 이상의 사람들이 답변했다고 합니다. 모험이라는 것이 두려움에 맞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려움을 피해 다닙니다.

 

사랑이란 모험입니다. 두려움에 맞서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에 맞서야 합니다. 사랑과 두려움, 어느쪽이 마음을 차지하느냐? 두려움이 밀려오면 짜증이 납니다.

 

제가 위 내시경을 찍을 때,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어떤 위로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누가 위로를 하면 "니까짓게 내 괴로움을 알아?" 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사랑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으면 어떤 두려움도 뚫고 들어오지 못합니다. 언젠가 강론에서 말했듯이, 한 자매님이 피정 끝나고 나올때의 기쁨과 평화와 사랑 때문에, 전철안에서 뺨을 맞았지만 어떤 수치심도 없고, 그냥 편안하고 기쁘고 사랑이 넘치는 마음에서 자기 자신에게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랑이 가득차 있으니까 두려움이 뚫고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두려움은 하느님이 아닌 것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의 계명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리 두려움을 알아야 합니다.

 

 "내 안에 사랑이 있지요?" 우리 마음 저 밑바닥에 사랑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당신 모상대로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태어나면서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도 있겠지만 여러가지 상처로 차곡차곡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두려움도 저 밑에 있어서 평소에는 잘 올라오지 않습니다. 그 두려움을 대면하고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립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감당하지 못하니까 조금씩 조금씩 올라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일로도 도망가고, 쾌락으로 도망가고, 자식에게 집착하는 것으로 도망가고, 성당에 가서 하루종일 일하는 것으로 도망가기도 합니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첫번째로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없는 것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애초부터 주어진 것을 끄집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두번째로 내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여러가지가 쌓여 있는 것입니다. 이 두려움을 보고, 바늘 구멍만큼이라도 뚫으면 차츰차츰 빛이 들어가고 자유로와집니다. 어렸을 때의 자기 삶을 깊이 성찰하고 자기 두려움을 보아야 합니다. 내 두려움을 아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자유로와질 수 있습니다. 

 

상실감에 대한 예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돈벌러 다니고 할머니가 애지중지 돌봐주셨는데, 초등학교 4학년때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버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또 잃어 버릴까봐 사랑을 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부부 싸움을 하고 어머니가 하룻밤을 자고 들어 오셨습니다. 그 아이는 하루동안 어머니에게서 버림받은 것입니다. 상처가 너무 크고 두려움이 너무 큰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만나면서 "내가 버림받을까봐" 끊임없이 돈을 모으는 것입니다. 돈이 백억이 되어도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끝도 없이 따라다닙니다. 본인은 그것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바보 같다." 라는 말로 인해 상처를 받아서 남들이 자기를 무시하거나 우습게 아는 기미가 보이면 너무너무 화가 납니다. 그 두려움 때문에 항상 관계가 어렵습니다.

 

내 삶을 깊이 들여다보면 기도안에서 내 상처가 무엇인지 떠오릅니다. 상처란 것은 고통스럽지만 상처와 고통은 별개입니다.

 

고통을 거부하면 할수록 두려움은 점점 더 커집니다.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여야겠다." 라고 하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그 고통도 내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고통은 받아들이고 두려움은 거부해야 합니다. 이 두려움이 밀려올 때, 단호하게 거부한다고 내 자신에게 선언해야 합니다. 두려움이 없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내가 두렵지만 이 두려움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해야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베푸시지만 두려움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끊임없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따르는데에 무작정 열심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뱀같이 슬기롭고 비들기 같이 겸손하라." 고 하십니다.

 

이 두 가지도 내 삶이 혼란스럽고 기쁨이 충만하지 않다면 무작정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나이 많으신 분들에게 필요합니다.

 

보통사람들에게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내 두려움을 직면해야 합니다. 내가 내 두려움을 모른다는 것은 내가 감당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상당히 친해져야 합니다.

 

이 두려움은 다 거짓입니다. 죽음마저도 두렵지 않게 됨을 성인들이 잘 보여 줍니다. 내 두려움을 직면하고 자유로와져야 합니다. 문제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평화로워지면 내 주변이 다 평화로워지는 것입니다.

 

내 주변이 시끄러우니까 도대체 사랑할 수 없다고 하지만, 많은 경우에 기도하면서 한 사람이 평화로워지면 주변이 다 평화로워지게 됩니다. "이 세상에 다 양탄자를 깔 수 없다면 내 발에 맞는 털신을 신어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내 자신을 깊이 들여다 보고 두려움과 직면할 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을 청합시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