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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녀의 친구라는 것이 행복했던 날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01 조회수810 추천수9 반대(0) 신고
 

                                           <옥천 성당 전경>

 

6월 1일 (목)요일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요한 17, 20-26)

 

 "저는 그들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23절)

 

그녀와의 첫 만남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친정 아버님께서 교직에 계셨던 관계로 옥천으로 전학을 가게 되어 이루어졌습니다. 그녀는 7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간 저보다는 몇 살 위여서 더 지혜롭고 의젓하여 언니 같았습니다.

 

어느 날 그녀를 따라 옥천성당엘 갔습니다. 지금과 같이 의자나 장궤틀이 없었고, 마루로 되어있는 성당이었습니다. 성당에 들어서자 어떤 압도적인 힘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성당안은 주일학교 아이들로 인해 다소 소란스러웠지만 저는 거룩한 기운과 경건한 분위기에 젖어 한동안 강당에 무릎을 꿇은채 꼼짝달싹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제의를 입으신 것도 신비롭기만 하였습니다.

 

옥천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여중에 진학을 하였다가, 다시 친정 아버님을 따라 청주로 전학을 하여, 비록 3년여 머물렀던 곳이지만  하느님의 섭리안에서 제 생애의 가장 중요한 싯점이 되었던 곳입니다.

 

60년대라서 저 혼자 성당을 다녔기 때문에 영세를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 혼자 성당을 들락날락 하다가 대학교 1학년때에서야 영세를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가정 형편이 많이 어려워져 괴로운 마음을 하느님께 의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저는 성인전에 몰입을 하며 공부보다도 신앙에 더 몰두를 하였습니다.

 

그녀와는 옥천을 떠나게 된 후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그러다 여의도에서 있었던 교구 설정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다시 그녀를 극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80만 인파중에서 그녀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연세드신 분이 화장실을 가시고 싶어 하시기에, 그분을 안내하며 모시고 다녀오는 길에 그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난 5월 20일 토요일에 친정 어머니의 상을 당한 그녀에게서, 옥천 성당 100주년 기념행사가 있는데 함께 다녀오지 않겠느냐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는 거절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잔뜩 목이 잠긴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가고 싶기에 다음날이 그녀의 친정 어머니의 삼우제인데, 가자고 할까? 그녀가 신앙을 갖게 된 옥천에, 그리고 친정 어머님에 대한 추억에 잠기고 싶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 것입니다. 친정 어머님은 시신기증을 하셨기 때문에 장지에 가는 번거로움은 없었나 봅니다.

 

거절을 할 수가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몇 년 전에 제게 많은 영향을 미치신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이셨던 선생님께 함께 인사를 드리러 가자는 저의 부탁을 그녀가 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옥천성당에 당도하여 간단한 성체조배를 마치고 성당내에 전시된 유서 깊은 100년의 역사의 흔적을 관람한 후, 성당을 둘러보다가 그녀와 저는 옥천 본당 출신이신 예수회 소속의 임신부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9년전에 서울에서 서품식에 갔다가 같은 옥천본당출신이신 임신부님의 프로필을 어렴픗이 기억하고 그날부터 신부님을 위한 기도를 거르지 않고 해왔다고 합니다.

 

그녀가 직접 뵙고 인사도 하지 않은 신부님을 위해 몇 년 동안 정성껏 기도해 드렸던 신부님과의 해후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섭리안에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저희가 떠난지 근 50년 가까이 되어 많이 변화된 모습들을 "옛날에는 저기가 회합실이었다..." 하시며 안내해 주셨습니다. 돌아가신 그녀의 어머니를 위해 기도해 주시겠다는 임신부님과의 소중한 만남을 뒤로 하고 저희는 돌아왔습니다.

 

그녀와 저는 정신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고속버스 티켓을 샀는데 잊어버렸습니다. 버스가 출발시간이 다 되어 다시 현금을 내려는데 거스름돈이 없어서 지폐를 교환하러 간 그녀가 생수를 사다가 그곳에 놓고 왔던 버스표를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 때 그녀가 저에게 들려준 말입니다. "주님, 티켓을 찾게 해 주십시오." 라고 속으로 기도를 하였는데...." 잠깐 동안의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똑 같은 상황에서 저는 주님께 기도할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그녀는 본당에서 할머님들 20여분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하여 성체앞에서 매일 같이 묵주기도를 하며, 할머님들의 점심준비도 혼자서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웃들의 딱한 사정을 지향하며 성모님께 전구한 기도들이 많은 체험을 하게 되자 처음에는 10여분 되시던 할머님들이 20여분으로 되었다고 합니다.

 

저도 저희집 아이들을 위한 기도를 부탁하였는데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녀는 저와 동행하면서도 그저 저를 섬기는 자세로 돌봐 주었습니다. 그녀는 우리들의 초등학교 때의 반장이 아니라 영원한 반장입니다. 

 

엊그제 저는 다음 달, 미국에 있는 딸을 도와주기 위해 비자를 챙기다보니 작년에 새로 여권을 만들고 나서 구여권은 필요가 없는 것인줄 알고 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랴 부랴 비자를 받기 위한 서류를 챙기다가 의료보험증을 어디에 두었는지 찾지 못해 이틀을 두고 찾다가 문득 친구가 기도하고 고속버스 티켓을 찾은 것이 생각나 저도 "주님, 찾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갑자기 지금 가지고 다니지 않는 가방들을  챙겨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난해에 가지고 다니던 여름가방을 들쳐보다가 버린줄 알았던 비자가 들어 있는 구여권을 찾았습니다.

 

사소한 일이지만 기도하고 바로 가방을 찾아 볼 생각을 떠올려 주신 분은 하느님이심에 틀림없습니다.

 

일상의 작은 일에서조차 주님께 의탁하고 기도하는 것을 보여준 그녀의 친구라는 것이 참 행복했던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준 근 50년 전의 그 날은 더할나위 할 수 없이 행복했던 날이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당신께서 저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찬미하고 감사드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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