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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0) 성인 되었다가 언성 높였다가 / 박상대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02 조회수560 추천수2 반대(0) 신고

                              < 미국 LA 백삼위 한인성당 박상대 주임신부님의 글>

 

1988년 부산교구에서는 8명의 새 신부들이 탄생했다.

성씨도 제각기 달랐던 우리는 '88 올림픽 공식 사제'로 통했고, 서품년도가 '쌍팔년도' 라 '팔자가 사나워서' 그런지 지난 18년 동안 우리들 사제생활은 참으로 다양했다.

최신부는 지금까지 꾸준히 본당사목을, 조신부는 오랫동안 빈민사목을 하고 있지만, 황신부는 서품된 다음 해로 프랑스의 카르멜회로 이적하였고, 나머지 5명도 역마살이 끼어 그런지 외국생활을 4~5년씩 했다.

 

우리는 당시 30 일간의 서품피정을 부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원에서 했다.

'이냐시오 피정' 이라고 이름 붙여진 처음 2주간 동안 철저한 대침묵 속에서 미사와 성무일도를 시작으로 성경을 묵상하고 묵상 내용을 노트에 적고, 지도신부님과 대화하고 기도하는 꽉 짜여진 일과였다.

신학교에 입학한 후 늘 해오던 피정이지만, 솔직히 말해 참으로 힘든 나날이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면서 우리 모두는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신약성경의 히브리 서간을 통독하고 묵상하면서였다.

'대사제 그리스도의 서간' 이라 불리는 히브리 서간은 신학교 시절 10번 이상 읽었던, 모든 사제들의 교과서와도 같은 것이다.

 

'과연 어떤 사제로 평생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물음은 우리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3주가 지나면서 처음에는 침통했던 우리들의 얼굴이 빛을 내기 시작했던 걸 생각하면 제각기 대단한 각오를 했던 것 같다.

모두가 이미 반은 성인들 같았다.

아침식사 후에는 모두들 황령산 중턱에 올라 간단한 체조를 하고 묵상을 했는데, 어떤 때는 그냥 거기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마치 산속에 초막을 지어 살았으면 하는 듯이........

 

그러나 피정 4주째 접어들면서 대침묵도 풀리고, 당장 눈앞에 놓인 사제서품식에 대한 준비 때문에 자주 모임을 가졌다. 모임에서는 늘 그렇듯이 의견이 다르고, 거기에 토론이 따르다 보면 각자의 고집과 주장으로 언성이 높아지는 법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성인처럼 보였던 우리가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래서 사제들에게는 대침묵의 피정이 필요한 모양이다.

 

사제생활은

'산을 오르는 일' 과

'산을 내려오는 일' 의 연속이다.

산에만 있을 수도 없고 산 아래에만 있을 수도 없는

사제로서 산에 오르는 일은

예수님 앞에서 '제자'로서의 다짐과 각오를 새롭게 하는 것이며,

산을 내려오는 일은

예수님과 함께 '사도'로서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산에 오르셔서 자신의 전혀 다른 신적 영광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산에 함께 오른 세 명의 제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거룩하게 변한 예수님의 얼굴과 옷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7) 는 하느님의 말씀을 자신의 귀로 들음으로써, 예수에게 감추어진 신적 품위를 얼마동안 향유할 수 있었다.

 

그 영광스런 체험이 새로운 다짐과 각오로 그들에게 참다운 '제자'가 되도록 하고 '사도'로서 예수를 추종하며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는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했을 것이다.

  <출처: 가톨릭 다이제스트 3월호. 사순 제2주일에 즈음하여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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