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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 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03 조회수806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6년 6월 3일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

 

 

            

                        

         "If I want him to remain alive until I return,

          what is that to you? You must follow me."

                                          (John 21,22)

                                             

 

제1독서 사도행전 28,16-20.30-31

복음 요한 21,20-25

 

드디어 자전거를 다시 타기 시작했습니다. 자전거 타고 넘어져서 양손 깁스를 한 뒤에 한 달 가까이 타지 못했었는데, 어제는 깁스도 풀고 또한 손목도 많이 부드러워져서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고 읍내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면서 왜 이렇게 겁이 나는지 모르겠더군요.

제가 사고 날 때처럼 좁은 농로 길도 아니고 그래서 빨리 달리는 차에 의해서 제 자전거가 휘청거릴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괜히 ‘또 넘어지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을 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전과 같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또한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이 무섭게까지 보이더군요.

이렇게 쓸데없이 걱정하는 이 소극적인 마음은 현재라는 시간을 충실하게 만들어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너무나 많은 시간을 불필요한 마음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신경 쓰지 않아야 할 곳에 온갖 신경을 씀으로 인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 지요? 이런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거북이 3마리가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에베레스트 산을 30년에 걸쳐서 오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김밥도 싸고 좋은 등산화도 신은 뒤, 산을 오르기 시작했지요. 드디어 30년 만에 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시장함이 몰려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들은 얼른 자신들이 가지고 온 김밥을 꺼내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글쎄 물을 안 가져 온 것입니다.

모두 다 내려가기에는 너무나 힘든 거리이지요. 또한 이 정상에서 김밥을 먹는 그 기쁨을 누리고도 싶었습니다. 이들은 가위 바위 보로 승부를 가렸습니다. 즉, 지는 사람이 밑으로 내려가서 물을 가져오기로 한 것이지요. 가위 바위 보에서 진 거북이가 말합니다.

“내가 다녀올 때까지 김밥 하나라도 먹으면 안돼!”

‘10년, 20년, 30년. 이제 다 내려갔겠지? 이제 30년만 더 기다리면 돼. 다시 10년, 20년…….’ 이제 60년이 되려면 하루 남았습니다. 하루만 지나면 밑에 내려갔던 거북이가 물을 가지고 나타나겠지 라는 생각에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배가 고픈거에요. 그래서 김밥 하나를 먹으려는 순간, 갑자기 밑에 내려갔던 거북이가 나타나서 말합니다.

“내가 이럴 줄 알고 안내려가고 망보고 있었지.”

우리들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요? 나 빼놓고 먹을까봐 60년이라는 시간을 망보고 있었던 어리석은 거북이처럼, 우리들도 남들이 나보다 더 잘될까봐 괜한 걱정 속에서 정작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쓸데없는 걱정으로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의 구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면 나와 상관이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상관없는 일에 관심을 두고 걱정함으로써 나를 더욱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는 나의 구원에 영향을 미치는 일, 즉 주님을 어떻게 더 잘 따를지에 온갖 관심을 기울이는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쓸데없는 남의 일에 관심을 두지 맙시다.



 
사랑은 깊은 우물을 닮아야 합니다(조창인, '사랑으로 나를 버리고' 중에서)


 

모름지기 사랑은 깊은 우물을 닮아야 합니다.
내안의 물을 퍼내고 또 퍼내어
그의 갈증을 씻어주는....

사랑은 '함께' 입니다.
그러나 그가 나와 '함께'하는것이 아니라
내가 그와 '함께'하는것입니다.
'함께'를 통해 '나'는 점차 소멸되고
드디어 '우리'가 탄생합니다.

사랑은 실천입니다.
그를 위해 몸을 움직이는 수고입니다.
나의 전생애를 한곳으로 모으는 노력입니다.
생명을 걸고 쫒아야할 헌신입니다.

사랑은 그를 향한 깊고도
먼 눈길을 지녀야 합니다.
보이는 것이 아닌,보이지 않는 것을
더 깊이 마음에 품어 두어야 합니다.

사랑은 이해하는것이 아닙니다.
이해하려 애쓰지 마십시오.
이해되지 않는 부분 때문에
속상해 하지도 마십시오.
사랑은 이해보다 훨씬 윗길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
내가 그의 쪽으로 걸어간다는 뜻입니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그가 내편으로 다가옴입니다.
사랑을 이룬다는 것은...
두 사람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다시 시작케 하는 힘입니다.
지쳐 주저앉은 나를 일으키는 동력입니다.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가능성입니다.

사랑은 그 사람을 등에 업고
먼길 가는 것
지치고 고단해도 내려놓지 않은 채
뚜벅 뚜벅
아득히 먼길 걷고 또 걷는 것.

어제에 대한 집착이 오늘의 사랑을 초라하게 만듭니다.
어제와 오늘의 비교가 사랑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어제는 오늘의 사랑을 이룩한 한 과정이었습니다.
오늘은 내일 더 사랑키 위한 또 다른 과정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내 자신을 태웁니다.
나를 태워 마침내 그를 따뜻하게 만듭니다.
그에게 온기가 되어주지 못한다면
나는 아직 사랑밖에서 서성이고 있는 셈입니다.


L'amour reve (사랑의 품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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