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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복음묵상]첫째가는 계명에 관한 담화 /박상대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08 조회수654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6년 6월 8일 연중 제9주간 목요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코 12,29-31 )

 

  "The first is this: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is Lord alone!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with all your soul, with all your mind,
and with all your strength.
The second is this:
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과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일이 첫째와 둘째가는 계명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고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죽은 사람도 사랑 안에서 여전히 살아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영원하시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영원히 머물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십니다. 사랑이 전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 첫째가는 계명에 관한 담화 †

잘 알다시피 마르코복음 11장부터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활동기에 속한다. 갈릴래아 지방에서 공생활의 대부분(1-9장)을 보내신 예수께서는 그 마지막 시기에 베드로의 메시아고백을 받으셨고, 이어서 두 번씩이나 자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셨다. 그런 다음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길목에서 세 번째로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셨고(10장),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성전정화 사건(11,15-19)으로 예루살렘 활동기를 시작하셨다.

예루살렘 활동기는 사실상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위한 준비단계로서 외적인 업적보다는 적수(敵手)들과의 논쟁과 대담을 통한 자기계시적 가르침, 그리고 종말과 재난의 예언 등으로 일관된다. 논쟁과 대담은 주로 적수들의 질문과 예수의 답변으로 이루어지는데 예수의 권한논쟁, 납세에 관한 대담, 부활논쟁 등은 이미 치러졌고, 오늘 복음은 첫째가는 계명에 관한 대담을 들려준다.

어제 복음에서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부활에 관한 논쟁을 벌였고, 오늘 복음에서는 율법학자 한 사람이 와서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오늘은 율법학자에 대하여 잠시 살펴보자. 서기관 또는 랍비(스승)라고 불리던 율법학자들은 바빌론 유배(B.C 587년) 이전에는 예언자와 사제들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삼대 지도계급에 속했다. 그러나 유배 이후(B.C 538년)에 들어 사제들은 권위를 잃었고, 기원전 500년경에 활동하던 예언자 하깨와 즈가리야와 말라기를 끝으로 더 이상 예언자들도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메시아 사상이 강하게 싹트기 시작하면서, 백성들은 모든 희망을 토라(율법)에 두었다. 이 때부터 율법학자들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더욱이 희랍의 통치(B.C 333년)와 로마제국의 통치(B.C 63년)가 이어지면서 침략자들에 의해 짓밟힌 예루살렘 성전은 신앙의 구심점을 잃게 되고, 흩어진 유대인들이 디아스포라를 형성하여 그 안에 회당(Synagogue)을 세워 안식일 예배를 드림으로써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율법학자들의 활동이 크게 두드러지게 된다. 회당에서의 예배는 제사 없이 율법서와 예언서의 봉독과 해설이 큰 비중을 차지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율사들이 사제들보다 유리한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물론 신약시대에 들어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각종 제사는 거행되었다. 율법학자는 상속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년간의 정규적인 연구과정을 거친 사람이면 40세의 나이를 채운 자에 한하여 서품을 통하여 누구나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율법학자들 중에는 바리사이들, 사두가이들뿐 아니라 일반직업을 가진 평신도 출신도 있었고, 최고의회인 산헤드린에 속한 자도 있었다. 특히 바리사이파의 지도자는 모두가 율사들이었다. 율법학자들의 힘은 오직 율법에 대한 지식이었다. 백성들은 그들을 존경했고, 술 달린 긴 예복을 입고 다녔으며, 향연에서나 회당에서 항상 윗자리에 앉았다.

이러한 율법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248개 조항의 행령(行令)과 365개 조항의 금령(禁令)을 합한 613개 조항의 계명 가운데 첫째가는 계명에 대하여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가 예수와 사두가이파 사람들 사이의 토론을 듣고 있다가, 예수께서 호쾌한 답변을 주시는 것을 보고 예수께 이 질문을 하였다(28절)는 오늘 복음의 서두와 "그런 일이 있은 뒤에는 감히 예수께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다"(34절)는 말미는 순전히 마르코복음사가의 독자적인 편집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오늘도 예수님의 답변은 명쾌하다. 613개 조항을 축약하면 십계명이 될 것이고, 십계명을 축약하면 첫째가는 계명이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느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여라"(신명 6,4-5)는 계명이고, 둘째가는 계명이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레위 19,18)는 계명임을 이 율법학자가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이는 바로 예수께서 모든 율법서와 예언서의 골자로 선포하신 사랑의 이중계명인 것이다.(마태 22,34-40; 루가 10,25-28 참조)

오늘 복음의 핵심은 사랑의 이중계명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유일신 사상의 재확인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는 율법학자의 답변도 오늘 복음을 통하여 나타난 큰 성과이다. 그렇다. 야훼 하느님께서 반기시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사랑이며, 재물을 바치기 전에 하느님이 마음을 알고 먼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호세 6,6)

사랑의 이중계명을 다시 환원시키면 십계명이 되고, 십계명을 다시 환원시키면 수백 개의 계명이 될 수도 있다. 사랑은 말이나 지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의 어떠한 구체적인 행동도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의 이중계명의 핵심정신을 비켜갈 수는 없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사랑의 이중계명을 잘 알고 지키는 자에게 이미 하늘나라를 약속하셨다..........◆

-박상대 마르코 신부-

 

                                                                   
                                                        사랑을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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