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지금은 다 그립기만 합니다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10 조회수578 추천수5 반대(0) 신고

6월 10일 연중 제9주간 (토)요일 (마르 12, 38-44)

 

 "장터에서 인사 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38-39)

 

다른 이들에게 존중받고 싶어 하는 것도 자기애에서 비롯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본성이지만 이 욕구 또한 하느님께 봉헌해야 할 본성입니다. 은연중에 자기를 드러내는 것을 사람들은 용케도 알아차리며 내심 반기지 않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전학을 가서 일제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마음씨도 예뻤던,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던 집의 딸이었던 한 친구가 은근히 저를 견제하여 제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당시 선생님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단연 히로인이었습니다.

 

우리들에겐 그림의 떡이었던 세계명작 등의 그림책도 빌려주는 마음씨 고운 그 친구가 이중적으로 저를 대한 이유를 지금은 인간의 약함으로 이해하지만, 당시에 저는 표현도 하지 못하고 끙끙대며 속으로 혼자 고통스러워하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학교에서의 풍경은 같은가 봅니다. 저와 함께 봉사를 하던 한 자매가 아픈 사연을 털어 놓았습니다. 아들이 엄마와 함께 외국에 가서 공부를 하다 초등학교 때에 우리나라 학교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시험을 잘 보았다고 옷을 덮어 씌우고 때렸다는 것입니다.

 

저희 때에는 보이지 않게 은근한 압력을 넣었는데, 지금은 살벌하게 폭력으로 견제하는 면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대학원 때에도 비슷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같은 학교의 학부 출신이었던 한 자매가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위인 제가 장학금을 받게 되자, 곱지 않은 시선과 뉘앙스로 저를 대해, 마음 고생을 한적이 있습니다.

 

그 자매가 자존심이 무척 상했던 모양입니다. 더우기 저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하였고, 그 자매는 전업주부로 저보다는 비교적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처지였습니다. 

 

아무튼 자신이 생각하기에 한참 부족해 보이는 제게 뒤졌다는 것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그 후 그 자매는 같은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존심이 상한 것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꾼 측면도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40절)

 

겉보기에, 그리고 지금은 잘 나가는 것 같지만, 하느님은 공의로우시고 정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결과는 드러나게 됩니다. 비록 사후에라도.

 

초등학교 때 잘 나가던 그 친구, 50년대에 아버지가 경시대회에 먼곳 까지 따라 오셔서 우리들 모두에게 맛있는 중국 음식도 사주시고 소풍때에도 따라 오셔서 반 친구들 모두에게 캬라멜을 사 주시어 우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딱 무엇이라고 알지도 못하고 표현하지도 못했지만, 내심 상처도 받은 것 같습니다. 그 친구가 상대적인 우위에 있었다면, 저희들 대부분은 그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에 대한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재력도 있으시고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표현하시던 아버지를 두었던 그 공주 같은 친구는, 좋은 남편 만나 서울의 좋은 지역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남편의 사업이 여의치 않게 되었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습니다. 오르막 길이 있으면 내리막 길이 있듯이, 우리들의 삶에서 서로 반대의 입장이 되어 보며 많은 것을 때닫게 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당신께로 모아들이고 불러 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 친구의 이후의 소식은 모르지만, 위기를 잘 극복하였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인지 초등학교 때의 그 친구도, 대학원 때의 그 자매도 다 그립기만 합니다. 제게도 그보다 더 약한 면들이 많기 때문에 인간의 약함으로 이해하게 되고, 그리고 우리 안에는 빛과 어둠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44절)

 

하느님께 바치는 정성을, 물질적인 것 외에도, 이를테면 나의 온 마음을 드리는가? 여러 잡다한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아주 작은 일부만 드리는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면, 아무래도 저는 아직 후자입니다.

 

주님, 그래도 오늘 저는 기쁩니다. 저는 비록 제 마음의 작은 부분을 드렸지만, 당신께서는 온종일 저와 함께 하시며 때때로 제가 이웃을 사랑하도록 저를 통해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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