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11 조회수635 추천수2 반대(0) 신고
2006년 6월 11일 삼위일체 대축일

 

"All power in heaven and on earth has been given to me.
Go, therefore, and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baptizing them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teaching them to observe all that I have commanded you.
And behold, I am with you always, until the end of the age."

(Mt 28,18~20)

 

 

 

제1독서 신명기 4,32-34.39-40

 

제2독서 로마서 8,14-17

 

복음 마태오 28,16-20

 

어제 11시 미사를 봉헌하는데 느낌이 조금 이상해요. 글쎄 평소와는 다르게 눈앞이 흐린 것이 사람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날이 흐려서 그런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이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저는 계속해서 ‘이상하다’는 생각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런데 미사를 마칠 때쯤에서야 평소와 다르게 사람들이 흐릿하게 보인 이유를 알 수 있었네요. 제가 안경을 잘못 쓴 것이었습니다. 즉, 지금 현재 쓰고 있는 안경이 아니라, 몇 년 전에 제가 썼던 안경이었던 것이지요. 아마 안경테의 모습이 똑같다 보니까 제가 착각을 했었던 것 같네요. 따라서 옛날의 안경을 썼으니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겠지요.

오랫동안 저와 함꼐 했던 안경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잘못 보고 이렇게 착각을 일으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내 자신은 이렇게 제대로 보지 못하고, 스스로 착각도 자주 하며, 이렇게 실수를 반복적으로 범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렇게 실수를 많이 하는 자기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도, 어쩌면 나보다도 실수를 적게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격한지 모릅니다. 더구나 자기보다 밑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더 엄격했었는지요?

그런데 엄격하게 대하는 모진 모습은 하느님께도 향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느님도 자기 밑으로 생각하는 것일까요? 하느님을 자기보다 밑의 사람을 대하듯이 판단하고 또한 단죄의 대상으로 삼을 때가 얼마나 많았나요? 그래서 하느님의 행동에 대해서 얼마나 못마땅해 합니까? 내 기도를 즉각적으로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나를 다른 사람보다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고 얼마나 많은 불평 속에서 살고 있나요?

이렇게 하느님에게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렇게 배은망덕한 우리들을 혼내실 만도 한데, 예상과는 달리 따뜻한 사랑으로 다가오십니다. 그 증거가 바로 오늘 축일을 맞이하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통해서 아주 잘 드러납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각기 다른 위격을 가지고 있지만 한 몸을 이룬다."라는 뜻이지요. 솔직히 이 말뜻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나이신 하느님인데, 또 세 분이 있다는 것. 그런데 그 세분이 또 한 분이라는 것. 정말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요.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이 안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삼위일체의 신비는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바로 사랑의 신비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그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 역시 하느님의 뜻을 따라 무상으로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베푸셨지요. 이제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인류 역사 안에 그 베푸심을 계속해 나가고 계십니다. 이처럼 우리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전해 주시기 위해 성격이 다른 세 위격이 하나가 되는 신비가 바로 삼위일체의 신비인 것입니다.

이 삼위일체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바로 우리들의 모습도 이를 닮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인간에 대한 사랑을 위해서 서로 다른 세 위격이 하나가 되었듯이, 우리들도 서로가 다르다고 서로를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면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그 순간 우리 역시 삼위일체의 세 위격과 하나를 이룰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랑의 실천 세 가지만 해 봅시다.


아름다운 동행('좋은글' 중에서)

해 질 녘 농부가 수확을 마치고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장면,바로 프랑스의 화가 밀레의 『만종』에 그려진 유명한 이미지이다.

밀레는 지금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화가였지만, 처음부터 그의 그림이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그의 그림을 눈여겨 봐왔던 것은 평론가들이 아니라 그의 한 친구였다

작품이 팔리지 않아 가난에 허덕이던 밀레에게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왔다.

“ 여보게, 드디어 자네의 그림을 사려는 사람이 나타났네.”밀레는 친구 친구의 말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밀레는 작품을 팔아본 적이 별로 없는 무명화가였기 때문이었다.

“ 여보게, 좋은 소식이 있네. 내가 화랑에 자네의 그림을 소개했더니 적극적으로 구입의사를 밝히더군,이것 봐, 나더러 그림을 골라달라고 선금을 맡기더라니까.”

친구는 이렇게 말하며 밀레에게 300프랑을 건네주었다. 입에 풀칠할길이 없어 막막하던 밀레에게 그 돈은 생명 줄이었다. 또 자신의 그림이 인정받고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리하여 밀레는 생활에 안정을 찾게 되었고, 보다 그림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후 밀레의 작품은 진짜로 화단의 호평을 받아 비싼 값에 팔리기 시작하였다. 경제적 여유를 찾게 된 밀레는 친구를 찾아갔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친구가 남의 부탁이라면서 사간 그 그림이 그의 거실 벽에 걸려있는 것이 아닌가? 밀레는 그제야 친구의 깊은 배려의 마음을 알고 그 고마움에 눈물을 글썽였다.


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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