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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8) 말씀> 왜냐구요? 그것은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12 조회수792 추천수2 반대(0) 신고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분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10)

 

인간이 이룩한 기술적 진보에 비해 볼 때, 인간의 사고나 행동 방식은 예수님 시대 이후 크게 변한 것이 없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참 행복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명백히 드러나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진복(眞福)은 세상이 약하고 무르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표상합니다.

그렇다면, 가난하고 온순하며 박해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입니까?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진복팔단(眞福八端)은 두 가지의 함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는,

참 행복이 너무나 이상적으로 보여 많은 사람이 그것에 따라 살기로 시도해 보지도 않는다는 점이고,

 

둘째는,

만일 성공한다 쳐도 포기해야 할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순결을 선택한다면 사회에서 합법적 오락으로 통하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겠지요.

또 우리는 당연히 재산가나 정치인을 두고 영적으로 가난한 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중 많은 이가 기회만 주어진다면 겸손함과 소박함보다는 재물과 명성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 속의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분이 참 행복을 실천하신 완전한 본보기이자 동시에 이 세상을 걸어간 사람들 중 가장 강하고 가장 확고한 분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누구한테서도 조롱당하지 않았고 기백없이 움츠러드는 분은 더더욱 아니셨습니다.

그런 동시에 그분께서는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항상 안타깝게 생각하셨지요.

그분께서는 조용한 힘, 즉 온유함을 통해 손수 모범으로, 비유로, 당신을 받아들이는 모든 이들을 어루만지는 것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만일 예수님에 관하여 좀더 생각해 본다면, 혹은 자신을 주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분이 일하시는 것을 본 군중들 중 하나라고 가정해 본다면, 우리는 아마도 우리의 시각을 바꿀 것입니다.

어쩌면 자신이 세상의 것 하나 없이도 살 수 있으리라고 믿기 시작하겠지요.

참 행복의 삶이 상당한 힘과 결단성을 요구한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왜냐구요?

 

그리스도인의 삶은 변화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성인은 예수님을 부인했지만 참으로 위대한 사도 중 한 분이 되었습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완전무결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예수님께서 그를 용감하고 기쁨에 넘치는 복음 선포자로 바꾸셨습니다.

어쩌면 참 행복이 가진 진정한 '문제'는 우리가 하느님의 온유와 순결의 본보기들을 충분히 알아보지 못한 데 있을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저에게 참 행복 안에서 주님을 닮고자 하는 열망을 새로이 해 주십시오. 제가 지금 이대로의 제 모습 안에서 굳건해지고 주님께서 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나 안배해 주시리라는 것을 깨닫도록, 저에게 힘을 주십시오."

 

              < 말씀지기 2006/6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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