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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복음묵상]행위는 본성을 따른다/박상대 마르코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13 조회수1,296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6년 6월 13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오 5,16)

 

 Your light must shine before others,
that they may see your good deeds
and glorify your heavenly Father.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당부하십니다

 

☆☆☆

 

 어릴 적 도깨비방망이는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을 모두 가져다주는 요술 방망이였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런 방망이를 갖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사렙타 고을의 과부에게 도깨비방망이가 보여 줄 수 있는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삶이 하느님께서 사렙타의 과부에게 베풀어 주신 엘리야의 기적과 다름없지 않습니까? 이날까지 우리는 어떻게 먹고살아 왔을까요? 농사를 지어 본 적도 없는데 먹을 것이 지금까지 주어졌습니다. 옷 공장에서 일해 본 적도 없는 데 벌거벗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또 어떤 도깨비방망이가 필요할까요? 또 어떤 엘리야의 기적이 필요할까요?

 

 

                                          † 행위는 본성을 따른다 †

예수님의 산상설교(5-7장)가 이어진다. 산상설교의 주된 가르침의 내용은 두 가지로써,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율법의 참된 정신에 관한 것이다. 산상설교는 예수님의 강생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도래했음을 선포하고, 하느님 나라에 필요한 새로운 헌법(憲法)을 선포한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율법(구약)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하였던 것처럼(출애 19-24장) 예수께서도 산 위에서 하느님의 새로운 나라를 선포하시고 율법의 참된 정신을 제고하심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헌법(신약)으로 삼으려 하신다. 산(山)은 하느님 현존의 표현이며, 산 위에서 내려지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자기계시(自己啓示)적 가르침이다.

산상설교의 첫 계단으로 진복(眞福)이 선언되었다.(5,1-12) 오늘은 소금과 빛에 대한 가르침이 내려진다. 소금과 빛의 본질과 역할에 대하여 달리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세상을 위한 제자들의 본질(本質)과 사명(使命)을 소금과 빛의 상징으로 조명하고자 하신다.

소금은 본성상 음식의 맛을 돋구고 부패를 막으며, 빛은 어둠을 밝히고 사물을 식별하게 해준다. 제자들의 사명이 이와 같은 것이어야 한다는 셈이다. 결국 소금은 제자들의 내적(內的) 자질(資質)을, 빛은 제자들의 외적(外的) 활동을 의미한다. 내적 자질과 외적 활동은 사실상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고대 철학자들은 거의 모두가 "행위(行爲)는 본성(本性)을 따른다."(agere sequitur esse!)라는 명제에 의견을 같이 했다. 뿐만 아니라 중세기의 독일철학자들도 하나같이 "가지지 않은 것을 줄 수는 없다."(Was man nicht hat, das kann man nicht geben!)는 생각에 일치하였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겉으로 행하는 어떤 행위든 그것은 내면(內面)의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며, 사람은 자기가 스스로 가지지 않은 것을 남에게 줄 수는 없다는 말이다. 여기서 후자(後者)를 굳이 유물론적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결국 사람은 본성에 따라 행동할 것이고, 무엇이든 스스로 가진 것을 남에게 줄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참된 "제자 됨"의 내적 본질은 하느님 나라를 위한 외적 활동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며, 제자들이 본성에 따라 수행하는 외적 활동의 결과는 자신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하느님의 선(善)하심을 세상에 드러내어 세상이 하느님을 찬양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제자 됨의 본성이다.

오늘 복음을 잘 살펴보면, 예수께서는 소금과 빛의 긍정적 역할보다 부정적 역할을 더 강조하신다. 소금과 빛의 부정적 역할이란 곧 역할 상실을 말하는 것이다. 즉,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등불을 됫박으로 덮어두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금과 빛의 의미와 역할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으로부터 제자들의 본질과 사명이 역으로 강조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는 분명 제자들과 교회에 대한 경고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많다. 그 많은 것들 중에 성서는 "사람이 사는 데 제일 필요한 것은 물과 불과 쇠와 소금이며, 밀가루와 우유와 꿀, 그리고 포도즙과 기름과 의복이다"(집회 39,26)고 말한다.

예수께서 이 중에서 유독 소금을 택하여 제자들의 본질에 비유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또한 제자도 교회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교회가 세상을 위하여 꿀이나 기름, 또는 설탕이나 버터가 되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교회가 세상을 위한 맛과 부패방지의 상징인 소금이, 그리고 밝음을 주는 빛이 되어 살아주길 원하시는 것이다. 교회가 설탕이나 버터가 된다면 세상의 존경과 사랑을 자기가 받을 것이나, 소금과 빛이 된다면 세상의 찬양과 감사는 하느님께서 받을 것이다..........◆

-박상대 마르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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