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오늘복음묵상] 진정한 율법완성의 길 /박상대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14 조회수660 추천수2 반대(0) 신고

   2006년 6월 14일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나라에서
큰사람 대접을 받을 것 이다." (마태5,19)

 

 Whoever obeys and teaches these commandments
will be called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계명은 가장 작은 것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십니다. “이 계명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 불릴 것이다”

 

☆☆☆

 

 사람들은 크고 멋진 것만을 찾습니다. 그러다가 작은 일은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작은 일을 잘할 수 있어야 큰일도 잘할 수 있습니다. 공들여서 쌓은 크고 멋진 탑이 아주 작은 것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는 일을 우리는 자주 봅니다. 오늘날 세계를 놀라게 하는 생명 공학은 현미경의 도움 없이는 볼 수 없는 미세한 세포들을 다루는 일입니다. 우리가 소홀히 하기 쉬운 친절과 미소와 예의, 그리고 작은 계명들은 생명 공학에서 그 작은 세포를 다루는 일처럼 위대한 것입니다.

 

 

 

                                     † 진정한 율법완성의 길

율법은 무엇이며, 예언서는 무엇인가? 구약(舊約)의 백성들과 그들의 역사에 이 두 가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율법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계약이며, 예언서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이다. 예수께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율법과 예언서는 하느님 의지의 일관된 표현이며, 예수의 도래로 말미암은 신약(新約)의 시대에도 구약에서와 똑같은 효력을 지닐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율법과 예언서는 결코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다 이루어질 것임을 분명히 선포하시는 것이다. 율법과 예언서의 가장 작은 계명이라도 결코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질 수 있는 방법은 두 말할 필요 없이 그 계명이 사람에 의해 준수되어야 하고 나아가 사람들이 이를 준수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하나의 계명은 진정 성취된다.

마태오복음서에서 서술상 아직은 아니지만 예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보기에 분명히 유대교의 율법과 규정을 어기신다. 몇 번은 예수의 제자들이 어기기도 했지만 이 잘못 또한 당연히 스승인 예수께 돌아가는 법이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죽을 위험에 처하지 않은 병자들에게 치유의 은혜를 베푸시는 등 안식일에 금지된 노동을 자주 하셨고, 정결규정도 가볍게 여기셨다.(마태 12,1-8.10-14; 15,1-2) 또 중풍병자를 고쳐 주시면서 "네가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심으로써 하느님만이 가지시는 죄사함의 권한을 침해하셨다.(마태 9,2-6)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는 유대교의 율법체계를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으며, 천지가 사라져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고 하신 말씀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우선 예수의 율법과 율법학자들의 율법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율법학자들은 "모세오경"과 그 안에 세워진 "십계명"을 가장 중요한 율법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율법을 구체적으로 준수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구전(口傳) 율법"도 율법의 범주에 포함시켜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여겼다.

구전율법은 율법과 전통에 관한 율사들의 구전해설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런 해설을 집대성한 "탈무드"의 "미슈나"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미슈나 샤바트"(안식일법 규정)에는 39개의 안식일에 금지된 노동목록이 적혀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율사들은 365개의 금령(禁令)과 248개의 행령(行令) 등 613개의 구체적인 규정을 제시하였다. 이들 중 하나라도 어기면 곧 율법을 어긴 것이 된다. 이렇게 율법학자들은 십계명과 모세오경을 구체적으로 해설한 규정과 세칙의 준수를 율법의 완성으로 보았다.

반면에 예수께서 생각하시는 율법은 율사들의 생각과는 정반대이다. 율사들은 가장 중요한 십계명을 자기들 고유의 정신으로 해석하여 하향적(下向的)으로 세칙을 정하고, 이 세칙의 준수를 율법의 완성으로 보았다면, 예수께서는 구체적인 세칙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정신을 상향적(上向的)으로 조명하여 원초적인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율법의 완성으로 보신 것이다. 이렇게 율법에 대한 예수와 율사의 관점은 정반대로 향한다고 하겠다.

이로써 율법과 예언서에 대한 예수님의 입장은 확실하다. 그분은 율법 하나 하나와 그 일 점 일 획에 담겨있는 하느님의 정신과 그 참뜻을 밝혀 주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율법과 예언서의 말씀을 하나도 없애지 않고 완성하는 길이다. 율법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예수께서는 율법의 일 점이나 일 획에 집착하지 않고 이를 심화시키시고, 때로는 과감하게 이를 폐기시키기도 하실 것이다.

산상설교의 권두에서 참된 행복의 길을 가르치시고(5,3-12), 제자들더러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건실히 유지하고 밝히는 는 소금과 빛이 되라고 하신(5,13-16) 예수께서 오늘은 진정한 율법완성의 길을 보여 주셨다. 이제 이 방법으로 율법과 예언서에 대한 새로운 대명제를 도래한 하느님나라에 살게 될 시민이 가져야 할 자격으로 선포하실 것이다..........◆

-박상대 마르코 신부-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