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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행가 체질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14 조회수839 추천수7 반대(0) 신고
 

                       유행가 체질

 

     


   언젠가 등산을 다녀 오면서 택시를 탓는데 차 안의 카세트에서는 패티김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이 놀랍게도 내 혼을 빼가면서 반겨 주는 것이었다. 사실 난 그노래를 잘 모른다. 그런데도 가슴을 흥건하게 적시면서 사람을 녹아나게 만드는 그 멜로디는 실로 유혹이었으며 또한 은총이었다. “그대 곁에 잠들고 싶어라”라는 가사가 오래오래 머리에 남았다.

 

   난 참으로 이상한 체질을 가지고 있다. 피정이나 고백성사 때는 그렇게 눈물을 짜고 싶어도 도무지 꼭지가 막혀서 기우제를 지낼 판인데 어쩌다 스쳐서 듣게 되는 유행가의 한마디에는 금새 물꼬가 터져서 냇물을 이루니, 내가 생각해도 이건 신부도 뭣도 아니요 마치 철없는 십대의 유행가 체질처럼 도무지 남사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한 10년 가까이 되었을 게다.

   그때 본당 신부 초년병으로 뭔 일을 의욕적으로 하다가 신자들과의 사이에서 브레이크가 걸린 사건이 있었다. 조금만 서로 협조하면 될 것을 모두가 외면하고 뒷짐만 지고 있기에 ‘나도 모르겠다’ 싶어 일을 뒤엎어 버리고 나니 마음이 온통 쓰레기요, 지옥 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내 성격에서 온 잘못이었다.

 

   화가 날 땐 카세트 녹음기를 화장실로 끌고 가서는 빨래를 세차게 하는 것이 내 버릇이다. 녹음기를 크게 틀어 놓은 채 빨래를 주무르고 두들기다 보면 속히 후련하게 되며 행굴 때의 그 개운함과 시원함의 맛은 그 일을 안 해본 자는 모른다. 그때 얼핏 들은 노래의 가사에 “그 나머지도  나의 것은 아니죠” 하는 말마디가 있었는데 바로 그 대목에서 나는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도대체 제목도 모르는 유행가가 사정없이 내 신앙과 성소를 후려 치는데 내 생애에 그처럼 피정을 촉촉하게 해본 일은 없었다. 울고 또 울었으며 그 눈물로써 은혜를 풍성하게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목은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 였으며 거기에서 말하는 ‘그대’란 물론 나로서는 ‘주님’을 말하는 것이었다.

 

   성가란 무엇인가?

   나는 주로 ‘그대’니 ‘사랑’이니 하는 단어가 들어가는 대중가요를 좋아 한다. 예를 들면 ‘그대는 나의 인생’이 있고 ‘사랑이여’나 ‘사랑의 미로’가 있으며 ‘친구여’도 있고 ‘J에게’와 ‘열애’도 굉장히 좋아한다. 노래도 역시 듣기 나름인데 어떤 노래고 주님을 그 안에 모시고 보면 그분과 연관되지 않는 것이 없으며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하나의 기도요 찬송이 되는 것이다.

 

   지난 사순절의 어느 날, ‘십자가의 길’ 기도 때에 분심이 많이 들기에 “그건 너‘라는 노래의 뒷마디를 반복해서 불렀더니 그렇게 은혜로울 수가 없었다. ”너 때문이야“하는 말은 모두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예수님, ‘별 놈 다 봤다’ 하지 마십쇼!”  


 

-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중에서/ 강길웅 요한 신부(소록도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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