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오늘복음묵상]점층적 가중처벌/박상대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15 조회수776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6년 6월 15일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하며

자기 형제를 가리켜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은

중앙 법정에 넘겨질 것이다 (마태오 5,22)

 

whoever is angry with his brother
will be liable to judgment,
and whoever says to his brother,
‘Raqa,' will be answerable to the Sanhedrin,
and whoever says, ‘You fool,' will be liable to fiery Gehenna.

 

 


 

 

 예수님께서는 모세 때 받은 십계명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키도록 가르치십니다. 살인은 물론 형제를 ‘바보’나 ‘멍청이’라고 부르는 일도 금하십니다

 

☆☆☆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지향한다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다섯 번째 계명은 형제애까지 넓혀져야 한다고 이르십니다. 형제들이 모두 바보나 멍청이로 보이는 사람에게는 그의 주변이 지옥이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형제가 아니라 바보나 멍청이만 있기 때문입니다. 마더 데레사에게는 결코 귀찮고 지저분한 행려병자가 없었습니다. 그분에게는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 함께 있는 형제와 자매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지옥에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천국에 살고 있습니까?

 

 

† "화->바보->미친놈" : 점층적 가중처벌

사방이 어둑해지자 어느 랍비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높은 담을 애써 넘어 들어온 도둑은 랍비의 정원에서 몰래 감자를 캐내어 포대에 담기 시작하였다. 얼마 후 감자를 가득 채운 포대를 매고 가려는데 글쎄 너무 많은 감자를 담았던지라 무거워 쩔쩔매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 광경을 창가에서 지켜보고 있던 랍비, 급히 방을 나가 도둑이 자루를 매고 집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기척을 듣고 달려온 집사가 이 장면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며 주인의 행동을 나무랐다.

랍비는 집사에게 "그가 도둑이라 하여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도와야 하는 의무를 면제받지는 못한다" 하고 말하였다. 누가 보아도 어리석긴 하지만 과연 랍비의 의로움은 칭찬 받을만하다.

예수께서도 "잘 들어라. 너희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20절)는 말씀으로 오늘 복음을 시작하신다. 이 시작은 단순한 가르침의 시작이 아니다. 예수께서 드디어 구약의 중심율법에 참된 정의의 칼을 대기 시작하신 것이다.(마태 10,34 참조) 이 정의의 칼은 율법의 일점 일획에 담겨있는 하느님의 정신과 그 참뜻을 도려내어 밝혀줄 것이다.

산상설교를 통하여 예수께서는 당신의 육화(肉化)로 말미암아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도래(到來)했음을 선포하시고, 하느님 나라에 요구되고 통용될 새로운 헌법(憲法)을 선포하신다. 모세의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의 헌법이라면(출애 19-24장), 예수님의 산상설교는 새로운 하느님 나라와 그 나라 안에서 살게 될 백성을 위한 헌법이다.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산상설교의 주된 내용은 두 가지로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그 나라가 요구하는 율법의 참된 정신을 선포하는 것이다.

전자(前者)의 내용으로는 진복선언(5,3-12)과 주님의 기도(6,9-13)를 손꼽을 수 있겠고, 후자(後者)의 내용은 산상설교의 그 나머지 부분에 속한다. 새로운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기에 하느님께서 성자를 통하여 이루어 주셨다. 그러나 그 나라 안에서 살게 될 백성의 자격은 백성 스스로가 취득해야 한다.

여기서 자격(資格)이란 상태(狀態)적 위치나 지위가 아니라 상황(狀況)적 행위를 말한다. 그 자격은 "선택받음"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얻는 것이다. 그것도 구약의 율법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삶으로써 얻게 되는 것이다.(20절)

마태복음사가는 예수께서 제시하시는 "더 옳게" 사는 방법을 우선 6개의 대당명제(5,21-48)를 통하여 조직적으로 설명한다. 대당명제는 구약의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새로운 해석으로 피력된다. 예수님의 새로운 해석은 율법주의적 사고방식을 깨뜨리고 율법의 참된 정신을 밝히는 것이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비록 율법주의적 사고방식에 빠져 율법의 참된 정신을 곡해하긴 했지만 세부적인 규정에 이르는 모든 계명을 지키려고 애를 썼다는 점은 인정되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하느님나라에 들기는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다. 그들보다 "더 옳게" 사는 것이 요구되고, "더 옳게" 산다는 것이 율법의 세부규정을 더 잘 지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이는 곧 법의 형식논리를 넘어 법의 정신을 추구하는 것이다.

6개의 대당명제는 ① 살인하지 말라 - 성내지도 말라(21-26절), ② 간음하지 말라 - 음란한 생각조차 품지 말라(27-30절), ③ 이혼장을 써 주어라 - 아내를 소박(疏薄)하지 말라(31-32절), ④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 - 아예 맹세를 하지 말라(33-37절), 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 앙갚음(보복)을 하지 말라(38-42절), ⑥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 - 원수까지도 사랑하라(43-48절)는 것이다.

구약의 율법은 살인을 금하고 있다. 살인자는 재판에 회부된다.(출애 20,13; 신명 5,17) 그러나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형제에게 "성"(화)만 내어도 그를 재판에 부치신다. 뿐만 아니라 "바보"라는 욕하는 자는 중앙법정에, 나아가 "미친놈"이라고 욕하는 자에게 "지옥불"을 선고하신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살인과 성냄이 같은 처벌인 재판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며, 살인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살인을 초래할 수 있는 행위들에 점층적으로 더 무거운 처벌이 선고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예수님의 의도는 분명해진다. 예수께서는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십계명의 제5계명을 심화하여 함께 살아가는 어떠한 형제나 자매에게도 화를 내거나 분노하지 말 것을 가르치고 계신다. 이 가르침을 따라 산다는 것은 한 마디로 어렵다. 마태오는 자기 공동체에 분노와 욕설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하느님 앞에 나아가기 전에 즉각적인 화해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화를 내다보면 쉽게 욕설이 튀어나오는 법이다. 욕설을 뱉는 자도 그렇겠지만 듣는 자의 기분은 더 나쁘다. 점잖은 욕설이나 기분 좋은 욕설은 없다. 화는 욕설을, 욕설은 주먹을, 주먹은 상처를 불러오고 급기야는 남의 생명을 상하게 한다. 살다보면 화낼 일도 많다. 그러나 화를 내면 거의 본능적으로 욕설이 튀어나오는 것이 문제다. 화가 치밀어 오르면, 화를 내기보다 침을 한번 삼켜보자...........◆

-박상대 마르코 신부-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