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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0) 거미줄 사랑은 이제 그만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15 조회수802 추천수5 반대(0) 신고

 

우리 아이는 지금 일본을 여행 중입니다.

지난 번에 16일동안 유럽 9개국을 다녀오더니 나흘 후에 다시 남해안을 돌고 왔지요.

전주 목포 보성 해남으로,  보길도를 들어갔다 다시 영광으로 다녀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흘 후에 다시 일본을 갔는데, 다음 주엔 미국에 가서 한달간 여행하고 온다는군요.

 

이제 우리 아이는 내 통제권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사고날까봐 학교에서 가는 수학여행도 보내지 않았는데, 아이도 귀찮은지 엄마 말을 잘 따라 주었는데, 이젠 엄마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저 하고 싶은대로 합니다.

대학에 입학하던 해인지 다음해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때도 동급생끼리 몇이서 방학때 보길도를 간다 하더라구요. 그 얼마 전에 위도로 가는 페리호가 침몰하여 수백명의 인명사고가 있었던 관계로 못가게 했지요. 그 경비를 줄테니 대신 옷도 사고 맛있는 것도 사먹으라고 살살 꼬셨더니 그때만해도 애숭이라 그랬던지 엄마말대로 따라 주었는데 십년만에 그예 보길도를 혼자 간 겁니다.

 

나는 배 타는 것도 비행기 타는 것도 무서워합니다.

일어나지도 않은 사고를 두려워해서입니다.

거기엔 늘 내 목숨이 내 한 목숨이 아니고 난 자식들이 성장할 때까지 보살펴야 한다는 의무감같은 것이 절박하게 엮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자식을 끔찍히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식은 그렇지가 않은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자기가 잘못되면 엄마가 받아야할 심적 고통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

 

6년전에 우리 아이가 어려운 상황에서 수술을 받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회복실에서 나오기까지 거의 세 시간동안 그때 나는 하느님께 성모님께 필사적으로 매달려 기도하면서도, 만일 자식이 잘못되면 난 어떻게 하나?에 대해서 계속 머리를 굴리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난 그 슬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아니 두려워 견딜 수 없었다고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당시 의사가 수술 후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후유증과 불상사에 대해서 하도 엄포를 놓았던지라 더 그렇게 방정맞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술시간이 예정시간보다 너무 오래 걸리는 것도 불안감을 증폭시켰습니다.

그래서 만약 잘못되는  경우에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 슬픔과 절망에서 도망쳐버리는 것, 딱 이 세상을 버리는 방법에 대해 계속 생각했던 것이지요.

 

6년 동안 냉담하고 있던 그때에 난 그렇게 필사적인 기도를 하면서 주님께 성모님께 약속했던 대로 그 후에 바로 냉담 풀고  성당에 다시 다니기 시작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자식에게 가졌던 감정은  사랑이라는 거 의심치 않습니다. 다만 집착이 더 강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같으면 아이가 저렇게 싸다니는 거 극구 말렸을터인데 이젠 말리지를 못합니다.

머리가 커서 말린다고 들을 상황도 아니긴 하지만....

어쨋건 집을 떠나 돌아다니겠다는 소리를 들으면 겨우 한다는 소리가 "조심해야지" 하는 말뿐입니다.

 

다음 주에는 일주일은 패키지로, 나머지 3주일은 자유여행으로 미국에 간다고 합니다. 의대 동기생이 그곳에 유학 가 있는데, 방학이라서 그 친구 사촌도 함께 셋이서 여행을 한다고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란 겨우 "미국은 총기 사용한다는데" 하는 걱정스런 한마디뿐이었죠.

전같으면 펄펄 뛰며 말렸겠지만 이젠 포기하고 나니 기도나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전에 내가 자식에게 가졌던 사랑이란 것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냉정하게 분석해 보았더니  사랑보다는 집착이 더 컸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자식 사랑하는 건 부모로서 당연한 것이겠죠.

그러나 지나칠 정도로 병적인 사랑엔 분명 집착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속엔  자기애(自己 愛)도 섞여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식이 잘못되면 자신이 받아야 할 정신적 고통, 절망, 슬픔에 대해서 두렵고 감내할 수 없다는 또다른 절망감 때문에 더 그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죠.

그러니 결국 인간은 자기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사랑은 얼마나 크고 희생적인 것인지 알 것 같기도 한데.....

 

자식이 미국에 가면 재미있게 놀다 오라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무사귀환을 빌 겁니다.

전에 비해 이렇게 내가 자식에게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건 집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는 증거일 수도 있고, 이미 머리가 굵어버린 자식이 엄마의 통제권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될 수도 있겠지요.

지금까지 내가 자식에게 쏟아부었던 사랑은 어쩌면 거미줄같은 사랑은 아니었을까!

거미가 자신이 뽑아낸 거미줄에  걸려든 곤충은 물론 거미 자신도  자기 줄에 스스로 갇혀있듯이 집착이란 거미줄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이젠 나도 자유롭고 싶습니다.

내 자식이 늘 엄마한테서 자유로웠던 것처럼, 나도 자식에게서 자유롭고 싶습니다.

누구에게 끊임없이 집착한다는 건 그만큼 정력이 요구됩니다.

이젠 나도 늙었나 봅니다.

집착이란 정말 피곤한 일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일도 수월한 일은 아닙니다.

이렇게 한사람 사랑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우리 주님은 참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시려니 얼마나 힘드실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도 이 정도나마 자식에게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건 바로 신앙의 힘이었다는  걸 느끼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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