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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의 변증법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20 조회수653 추천수11 반대(0) 신고
 

독서: 1열왕 21,17-29 복음: 마태 5,43-48 선량한 나봇의 포도밭을 뺏고 그의 목숨까지 빼앗은 아합 왕과 이제벨은 분명 나봇의 일족에게는 철천지 원수임에 틀림없다. 정의의 하느님은 그런 불의한 이들을 그냥 두실 리가 없다. 과연 예언자 엘리야를 시켜 아합을 응징하겠다 선언하신다. 서릿발같이 지엄하신 주님의 말씀을 전해들은 아합은 옷을 찢고 단식을 하고, 풀이 죽어 지냈다.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에 대해 회개하고 있음이 눈앞에 드러났다. 사실 아합은 처음부터 나봇의 포도원을 뺏을 마음이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땅은, 각 지파에게 주신 하느님 약속의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왕이라 할지라도 왕의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는 것임을 아합도 잘 알고 있었다. 이방인 왕후, 이제벨은 그런 왕의 태도를 납득할 수 없었다. 왕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이 이방인의 왕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합은 이제벨의 ‘충동질’에 넘어가고 말았다. ‘자신을 팔면서까지’(독서에 두 번 등장하는 문구). .................... 아합은 엘리야의 선고를 듣자마자 자신을 되찾았다. 자신을 회복하고 마음을 고쳐먹은(회개한) 아합에게 더 이상 응징하고 나무랄 수 있는 여지는 없어져 버렸다. “너는 아합이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춘 것을 보았느냐? 그가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으니,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내가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 회개하는 한 인간 앞에서 하느님은 한없이 마음 약해지신다. .......... 사실 이런 성경의 대목을 읽다보면 하느님 자비하심에 감동하기 보다는 왠지 맥이 빠져버린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이 세상에서 온갖 불의를 저지르는 나쁜 놈들. 힘없는 사람들을 착취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이용하여 제 배만 채우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그런 놈들을 그렇게 쉽게 용서하고, 그렇게 맥빠지게 자비를 베풀어주셔도 되는가? 마치 이런 우리 불만(?)을 들으신 듯. 하느님은 슬며시 단서를 붙이신다. “그러나 그의 아들 대에 가서 그 집안에 재앙을 내리겠다." (아직도 맥이 풀리기는 마찬가지다) .................... 그러나 숨 한번 크게 쉬고 다시 생각해보면 이러한 하느님의 말씀은 원수같은 놈들을 직접 보복하지 말라고 하시는 듯하다. 그에 대한 심판은 시간의 주인이신 당신에게 맡기라고 하시는 말씀은 아닐까? ............. 아무튼, 복음에서는 또,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는 보편적인 명제(these)에 대해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는 반 명제(anti-these)를 내어놓으신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 다른 민족들이 모두 하고 있고, 또 할 수 있는 인간 심성의 보편적인 명제, 즉, 자신에게 잘 해 주는 사람들을(이웃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랑하고 원수같은 사람들은 미워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인간의 보편적 심성을 거슬러, 보다 큰 사랑을 펼치는 것이야말로 당신의 제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래야 하는 이유를 보다 종합적이고 궁극적인 명제로(syn-these) 제시하신다. 바로 하늘 아버지에게로 눈을 돌리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인간끼리의 허물과 시시비비를 따지기 보다는 서로의 공과와 이해득실을 계산하기 보다는 하늘 아버지에게로 시선을 돌리시는 예수님. 거기에서 우리의 갈등과 문제들은 접합점을 찾을 수 있다.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똑같이 햇빛과 비를 내려주시는 하느님을 닮는 것. 그것이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이루어야 할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이다. ................. 그렇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당신의 꿈을 들려주셨다. 우리가 하느님처럼 될 수 있다는 꿈이다.

아버지를 꼭 닮은, 아버지의 자녀들. 예수님은 바로 당신이 그러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고 계신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버지를 바라보며, 서로를 바라볼 때,

'너'와 '나'로 대립되고 모순되고 분열된 모습은 사라지고,

또 하나의 '나'로 이해되고

'우리' 모두로 종합되어

완전한 한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꿈은 과연 나에게서 이루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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