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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복음묵상] 2006년 6월 23일 예수성심 대축일 / 정상천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23 조회수872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6년 6월 23일 예수성심 대축일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요한 19,34)

 


One soldier thrust his lance into his side,
and immediately blood and water flowed out.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옆구리를 군사 하나가 창으로 찌르자 그곳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옵니다

 

☆☆☆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최근 첫 회칙으로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를 반포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한마디로 ‘사랑’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사랑만큼 큰 사랑이 없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온전히 내주시려고 성체성사를 세우셨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우리는 제대로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늘 자식을 염려하며 기도를 드리는 부모님의 사랑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 사랑을 헤아려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호세아의 전언에서 하느님의 애절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에프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내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저버리겠느냐?”

 

 

오늘 우리는 엄청나게 중요한 대축일을 기념합니다. 예수성심대축일이자 동시에 사제 성화의 날입니다. 모든 축일들이 고유의 축일로 기념하게 되는 데에는 역사와 유래가 있게 마련인데, 예수 성심대축일은 1856년에 교회의 전례력에 도입되기 시작하였고, 1969년 이래로 오늘날 기념하고 있고 축일로 정착하게 됩니다. 아울러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1995년부터 사제 성화의 날로 제정하였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예수성심대축일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강조하고 속죄의 사상이 강하게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보속의 정신이 아니라 성부께서 인류에게 보여 주신 놀라운 사랑에 대한 감사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성심대축일은 주님의 의지,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주님 마음의 계획, 주님 사랑의 불을 간청하는 의미가 부각되었습니다. 즉 예수가 당신의 전 인격의 표현이며 동시에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최고의 사랑의 표현인 우리 인간들을 위한 마음을 갖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오늘 들은 복음을 통해서 철저한 인간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은 ‘군사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고,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고 복음은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 성심을 묵상하면 무엇이 연상이 되십니까?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 예수님의 십자가 상에서 보여주신 철저한 사랑 등이 우선 떠올려집니다. 이것을 다시 말해본다면, 인간을 위해 보여주시는 최고의 모습, 최고의 사랑, 더 이상 어떤 방법으로 그분의 사랑을 증거해 보이는 방법이 없을 정도의 사랑 최절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십니까?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분이십니다. 하느님으로서 자신의 창조물인 인간이 비록 죄가 많으면서도 극진히 사랑하시는 그런 모습을 십자가상의 방법을 통해서 보여주시고, 이제 더 이상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그런 분이십니다.


  짤막한 예화 하나를 소개한다면, 어떤 아버지께서 아들과 함께 목욕탕 가는 것을 즐거워하셨고, 매주 한 번씩은 꼭 아들과 함께 목욕탕에 가야지만 해야 할 일을 한 것처럼 느꼈습니다. 아들이 어렸을 때는 아버지를 잘 따르고 해서 곧잘 목욕탕에 갔었지만, 아들은 성인이 되어가면서 점점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 섭섭했지만 그것을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의 의사를 존중해줘야겠고 강제로 목욕탕에 가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답답한 아버지의 마음을 아들은 이해하기가 만무합니다.


  이처럼 아버지는 자신의 사랑을 모두 다 쏟아 자녀에게 주고 싶지만 그 방법과 한계가 아들이 성장할수록 점점 더 많아진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이것이 인생이 흘러가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은 2000년이 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있는 시간동안이지만 하느님께서는 엄청난 세월을 답답해하고 계심을 느끼게 해주는  예화입니다.


  우리는 이 축일을 지내면서 사람이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해 먼저 기도하고 계셨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의 바탕은 바로 그분께서 우선 나를 위해 일하고 기도하고 계셨고, 앞으로도 먼저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실 것임이 그 기도의 바탕이어야 합니다.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에서 나온 것처럼 그분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먼저 알고 계시니, 긴말을 되풀이하기보다는 그분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 더할 수 없이 중요한 사실로 다가옵니다.

-정상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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