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님, 참으로 용하십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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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6-06-29 | 조회수829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
예수님, 참으로 용하십니다! 자주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무슨 외로움 같은 것이 불쑥 찾아들 때가 있다. 대개 축일이나 어떤 행사가 지난 뒤에 집에서 혼자 놀러 지내는 날은 손에 안 잡힐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착잡하다 못해서 스트레스가 곱으로 쌓이게 된다. 지난달 언젠가도 그랬다. 비가 와서 등산은 처음부터 글렀고, 극장엘 가자니 볼 만한 것이 없었으며, 낮잠을 자자니 그건 또 비참한 생각이 들어 강당에서 피아노나 배우자고 체르니 7번을 펴놓고 두들겨 봤지만 신명이 나질 않았다. 그것 참 묘한 일이었다. 일이 많을 때는 바빠서 힘들다고 엄살 꽤나 떨었는데 막상 일을 끝내고 빈 시간을 갖고 보니 어떻게 주체할 줄을 몰라서 일 분, 일 초가 길고 지루하며 고달프기만 했다. 정말 심심했다. 올 전화가 없으니 갈 전화도 없었다. 맘에 딱 잡히거나 사무치는 사람도 없었다. 기분전환 겸 주방엘 가서 냉장고를 뒤졌지만 신통한 것이 없었고 오이 반 토막을 깨물다가 문득 수녀님들 생각이 났다. 맞다! 그래서 한 분에게 편지를 썼다. 내용이 거룩하진 못했으나 보고 싶다는 말들을 골라 논스톱으로 내리 두 장을 써서 막상 봉헤서 부치려니까 웬지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아 박박 찢어 버렸다. 일진이 참 더러왔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점심때. 새벽부터 생안달을 하며 머리를 쓰고 몸부림을 친 것이 말짱 헛일이요 도로아미타불이었다. 이젠 세상만사가 다 귀찮았다. 그리고 남은 것은 악 밖에 없었다. 어떤 놈이고 걸리면 한 방 날리고 싶었는데 문득 예수님 생각이 났다. 하필 거기서 예수님이 나오다니! 기도도 아침에 다 바쳐서 바칠 것도 없는데 내 성질 뻔히 아시면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신 것이었다. 징하다. 징혀!(‘지겹다’는 전라도 사투리) 할 수 없이 성당에 끌려가 그 양반과 눈싸움을 하니 웬지 마음이 평화로웠다. “예수님, 어떻게 그 감실에 혼자 진득하니 계신지, 참으로 용하십니다!” -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중에서 / 강길웅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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