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일어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 2006.7.2 연중 제13주일(교황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02 조회수584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말씀)

 

 

 

 

 

2006.7.2 연중 제13주일(교황주일)
                                                      

지혜1,13-15;2,23-24 2코린8,7.9.13-15 마르5,21-43

                                           

 

 

 

 “일어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금강산(金剛山)도 식후경(食後景)’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실 배고프면 아무리 좋은 말도 들리지 않고

모든 것이 먹는 것으로만 보입니다.


오래 전부터 여기 수도원을 다녀보신 분들,

확연히 달라진 환경에 마음 편안해 지는 곳이 있을 것입니다.


‘화장실’입니다.
어디가든 화장실이 깨끗하고 넓고 편안해야 마음도 안정이 됩니다.


요즘 살아보니 새삼 깨닫는 것이 몸에 관한 진리입니다.
‘사람은 몸이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는 생각도 듭니다.


주거 환경을 봐도 아주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게,

개인 방, 주방과 식당, 화장실과 샤워 실 그리고 세탁실입니다.

 

잠자리가 편해야 하고, 먹기 편해야 하고, 대소변 보기 편해야 하고,

몸 닦고 빨래하기 편해야 합니다.

이게 불편하면 짜증부터 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럼 성당은 무엇입니까?


영혼이 스트레스를 푸는 ‘하느님의 노래방’이요,

영혼을 씻는 ‘하느님의 샤워 실’이요,

영혼이 말씀을 먹는 ‘하느님의 식당’입니다.


반드시 육신과 함께,

또는 육신보다 한 걸음 앞서 가는 영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진리를 전제하고 몸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위의 몸과 관련된 구체적 현실들,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몸서리치는 가난을 겪어보지 않고

감히 ‘가난을 불편’정도로 폄하하거나,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라는

주님의 귀한 말씀을, 생각 없이 들먹여서도 안 됩니다.


몸의 구체적 현실 앞에서는 마냥 겸손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대부분의 고통들 몸에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몸 건강의 세요소로 쾌식, 쾌변, 쾌면을 꼽기도 합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야 건강하다는 것이지요.


불교도 어김없이 구체적 현실의 몸의 진리에서 시작합니다.
소위 사성제(四聖蹄)라는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진리입니다.


생노병사(生老病死)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고해(苦海) 속의 인간들이요,

여기 집착에서 기인하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집착을 끊어버려 해탈의 구원,

즉 도에 이르고자 치열히 수행하는 불승(佛僧)들입니다.

바로, 이 고(苦)의 바다, 고해 세상에 우리 주님 오셨습니다.
고해(苦海) 세상을

초록 생명 가득한 축제(祝祭) 세상으로 바꾸고자 오셨습니다.


이런 주님 계시기에 살맛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 본래의 모습을 찾아주시고자 주님 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이 존재하라고 창조하셨으니

세상의 피조물이 다 이롭고, 그 안에는 파멸의 독이 없습니다.

 

저승의 지배도 지상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느님 축복의 선물이요 기쁨임을 깨닫습니다.


정녕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이게 하느님 창조하신 세상과 우리의 본연의 모습입니다.
이런 세상을 다시 복원하시고자

고해 세상에 오신 우리 구세주 예수님 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우리 모두는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었습니다.

 

이 생명의 잔치 미사를 통해서도 은혜롭게 체험하는 진리입니다.
얼마나 전일적(全一的), 긍정적(肯定的) 신뢰의 창조 영성인지요?
무지와 무식으로 인해 구원을 쟁취라도 할 수 있는 양,

몸을 닦달해가며 고행 수덕 생활에

얼마나 아까운 시간과 정력을 낭비했는지요?

영성적일수록 현실적입니다.
하느님을 만난 모든 진정한 영성가들의 공통적 특징입니다.
결코 몸의 현실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하늘과 땅을 동시에 남김없이 살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활동을 통해서도 여실이 드러나는 진리입니다.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야이로라는 회당장의 간청에 주님은 즉시 현장에 출두하여,

그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한 말씀으로 살려내십니다.


“탈리타 쿰!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얼마나 통쾌한 장면입니까?
죽음의 어둠으로부터 생명의 빛에로의 탈출입니다.


열두 해 동안 하혈하는 여인의 망가진 몸과 마음을,

그 안에 진주처럼 빛나는 믿음을 보신 예수님은

역시 한 말씀으로 병으로부터 해방을 선언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 져라.”


구체적 현실인 몸의 병을 치유해 주시므로

새 삶을 선물로 주시는 참 좋으신 주님이십니다.


이런 주님계시기에 살만한 세상입니다.
자비로우시고 전능하신 하느님만이 우리의 희망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아침기도 때의 감동이 새롭습니다.
우렁찬 하느님 찬미 아침기도 노래로

밤의 어둠을 날려버리고 하루를 여는 수도자들입니다.


“세 소년이 불가마 속에서 입을 모아 하느님을 우러르며,

‘주는 찬미 받으소서.’ 하고 부르짖었도다. 알렐루야.”


오늘 아침 기도 때 두 번째 후렴이었고,

이어 장엄하게 펼쳐진 다니엘의 찬가였습니다.


불가마 속에서 바친 세 청년의 하느님 찬미가였습니다.
이런 찬미가 고해 세상을 축제 세상으로 만듭니다.


수도자는 물론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

 ‘하느님 찬미의 사람들’입니다.


어찌 보면 끊임없이 치열한 영적 전투가 펼쳐지는

불가마 속 같은 세상이 아닙니까?


그 뜨거운 화덕 속에서도 우렁차게 하느님 찬미했던 세 청년들,

몸과 마음 하나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우리 역시 불가마 속 같은 연옥 세상에서

하느님 찬미할 때 몸과 마음 하나도 다치지 않습니다.


이 끊임없이 바치는 하느님 찬미 기도가 영혼의 최고 보약입니다.
좋든 안 좋든 환경에 개의치 않고

한결같이 바치는 하느님 찬미 기도가 우리의 운명을 바꿉니다.

 

사막을 낙원으로 바꾸고,

절망을 희망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어둠을 빛으로 바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좋은 세상을 살게 합니다.
우리가 바치는 최고의 찬미 감사기도가,

하느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 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미사입니다.

 

우리의 영혼과 육신의 병을 말끔히 치유해주신 성체성사의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구원을 선언하십니다.

 


“일어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