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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공동체를 떠나고 싶을 때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11 조회수1,401 추천수24 반대(0) 신고
7월 12일 연중 제14주간 수요일-마태오 10장 1-7절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공동체를 떠나고 싶을 때>


형제들과 함께 하는 수도공동체 생활, 생각할수록 정말 묘한 생활입니다. 얼마 전,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생활에 양념을 조금 치기 위해 형제들과 가까운 공원으로 소풍을 갔었지요.


가는 곳 마다 다들 의아한 눈초리들이었습니다. 이 평일 대낮에 왠 건장한 젊은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닐까, 별로 재미있을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왠일로 얼굴들은 좋아주겠다는 표정일까? 왜 저리도 낄낄댈까, 하는 얼굴들이었습니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한울타리 안에서 동고동락한다는 것, 때로 하나의 도전이기도 합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 가만히 살펴보면 때로 성장의 장소이며, 은총의 장소, 형제적 친교가 이루어지는 사랑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때로 진한 상처를 주고받는 고통의 장소이며, 끔찍한 죽음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요즘에 와서야 이런 ‘기특한’ 생각이 조금 하고 있습니다.


나를 죽여야 형제가 살고, 공동체가 살고, 교회가 살고, 결국 예수님께서 사시는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반대로 나를 고집하고, 나를 내세우려하고, 나를 우선시할 때, 형제가 괴롭고, 공동체가 힘들어지고, 예수님께서 머무실 자리가 없어지는구나 하는 생각.


사실 이런 깨달음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던 시절, 형제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 생활, 너무나 힘겨웠습니다. 너무나 고달프고 팍팍한 나머지 이렇게까지 살아야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형제들을 한명 한 명 바라보면 저만 빼고 다 나쁜 ○이었습니다. 다들 왠지 이상해보였습니다. 역시 저만 빼고. 자신의 발밑을 바라보기보다는 늘 형제의 결점만 집중적으로 바라봤습니다. 주님의 자비와 은총, 도우심을 기대하기보다는 부족한 형제만 탓했습니다.


요즘에야 깨닫는 바이지만, 많은 겨우 저는 형제들안에 있는 제 자신의 모습을 견디기 힘들어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리도 혐오했던 형제들의 결함이 사실 제 결함이더군요.


오늘도 저는 부족한 형제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형제들의 부족함은 정말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크게 부족한 저를 바라봅니다. 부족함도 어느 정도라야 하는데, 너무도 부족하군요. 이런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다.


“하느님의 섭리, 하느님의 손길은 찬미 받으소서.

부족한 저를 사랑으로 채우시기 위해 형제를 불러주신 하느님, 영광 받으소서.

제발 좀 인간 되라고, 제발 좀 더 갈고 닦으라고, 당신 사랑의 도구로 형제를 보내주신 하느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선택하십니다. 뽑아놓고 보니 너무도 부족하고 부족했던 제자 공동체였습니다. 나약하고 결함 많은 제자들, 어쩌면 그렇게 우리와 똑같은 제자들의 면면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의도를 생각합니다.


역설적이게도 결핍이 많은 곳에, 병약한 사람이 많은 곳에, 죄인이 많이 모인 곳에 비례해서 하느님 자비가 풍성히 내립니다.


상처가 심한 곳에, 눈물이 많은 곳에, 고통의 강도가 큰 곳에, 십자가의 무게가 무거운 곳일수록 주님의 사랑은 흘러넘칩니다.


오늘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공동체, 부족한 인간들이 모인 곳이니만큼 부족한 것이 너무도 당연합니다. 때로 너무나 실망스러워서 떠나고도 싶습니다. 같은 배 타는 것을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습니다.


그런 순간 늘 기억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부족하기에 다가오십니다. 우리가 불완전하기에 그 결핍을 채우러 오십니다. 형제란 도구를 지니고 말입니다. 우리의 상처가 크기에, 죄인이기에, 그래서 안타깝기에 우리를 해방시켜주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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