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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떤 은혜 /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12 조회수1,189 추천수15 반대(0) 신고

                   

 
 

 

                              어떤 은혜



   하느님께선 내가 사제 되기 이전에 벌써 여러 가지 은혜를 주셨는데 그 중의 하나가 가난이었으며 또한 심한 중환자가 있어서 그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 그런지 지금도 아픈 사람과 없는 사람을 보면 예사로 보여지지 않는다. 실로 큰 은총이다.


   부제 때의 일이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나환자 정착 마을에서 환우들과 함께 열흘 동안 지낸 적이 았었는데, 마음에 조금도 거부감이 없었으며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지내는 것이 굉장히 기쁘고 즐겁기만 했었다. 오히려 나도 나병에 걸렸으면 하는 작은 소망까지 있었으니 실로 큰 은혜요 축복이었다.


   사제서품을 받고 처음 부임한 본당에는 다행히 나환자 정착 마을의 공소가 있어서 얼마나 반갑고 기뻤는지 모른다. 100세대가 좀 넘는 곳으로 천주교 신자들만의 단일 마을로서는 상당히 큰 공소였다.


   그때는 공소가 두 군데뿐이었지만, 나환자 공소를 자꾸 방문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특히 거기 아이들은 모두가 예쁘고 귀여웠으며 환우들의 삶도 대단히 순수하고 진실했었다. 그런데 내가 관심을 갖고 자주 방문하게 되자 엉뚱한 문제가 불쑥 터지게 되었다.


   그것은, 나환자들인 그들의 처지로서는 본당 신부를 접대하는 문제가 아주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즉 신부가 올 때마다 식사 준비를 하는데 그때마다 택시 불러 읍내에 나가 장을 봐와야 하며 또한 건강한 사람에게 일당을 주어 음식장만을 해야 되니 없는 살림에 돈도 돈이지만 환자들 입장에선 아주 복잡하고 고달팠던 것이었다.


   처음엔 그 이유를 몰랐었다. 그저 자주 찾아주고 방문하여 미사를 집전해 주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결국은 그것이 아니었고 회장으로부터 좀 불편하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해도 단단하 큰 오해였다.


   나는  즉각 공소 사목회에서의 음식 접대를 중지시키고 매 주일 한 가정씩 돌아가며 식사를 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러니 사람을 더 이상 돈 주고 살 필요도 없었으며 본인들이 직접 음식을 장만하되 반찬은 김치와 콩나물과 국으로 하고 꼭 함께 겸상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그리고 4년 반 동안에 그 100세대를 세 번 이상 돌았다.


   말이 김치고 콩나물이었지 실제로 각 가정에서 준비한 음식은 아주 성찬이었으며 마을은 그때마다 잔칫날이었다. “신부님을 모시고 세상에 이렇게 좋은 날이 없었다.”며 진정으로 기뻐하며 고마워 했었다. 그리고 나는 늘 잔치 속에서 살았는데 그러다 보니 신앙에 불이 댕겨져서 공소가 크게 성장하게 되었으며 마을과 사람 사는 분위기도 크게 바뀌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

   첫해 성탄 면접시에는 처음으로 ‘교무금’이란 것을 책정하게 되었는데 그 가난한 공소에서 1년 예산이 천만 원으로 오르게 되어 본당보다 오히려 많고 커졌으며 그 중에 5백만 원을 본당에 봉헌하여 가난한 시골 본당에 숨통을 트게 해준 일이 있었다.


   실로 기적이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벌떡 일어서더니 불과 1년만에 두 분의 수녀님을 마을에 모시게 되었고, 끝내는 은퇴 신부님을 모셔다가 상주하게 해드렸다.

   그들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강 신부님은 물질적으로 아무런 도움도 안 주고 오히려 우리의 것을 많이 가져 가셨지만, 돈보다도 물질보다도 훨씬 더 많고 큰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나는 지금도 진정한 도움이란 물질의 도움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다 크고 소중한 것은 진정으로 참된 이웃이 되어 주는 것이며 그들을 존경하는 것이다.


   물론 배고픈 사람에겐 당장 밥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무작정 밥만 준다고 도와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독재자도 할 수 있고 강도도 할 수 있으며 무당 할머니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참된 도움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거기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일어서도록 협력을 하는 것이다.


    과부 설움은 과부가 알듯이 없는 설움은 없어 본 사람만이 알고 아픈 심정은 아파 본 사람만이 아는 것이다. 그분이 하느님이시다!


         -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중에서 / 강길웅 요한 신부(소록도본당 주임)

 

 

     
                             The Four Seasons Op.4-8 'Winter' 2Mvt.-Antonio Vival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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