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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13 조회수961 추천수5 반대(0) 신고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내게는 아주 막역한 친구가 있었다. 초등학교도 함께 다녔고 그리고 중학교, 사범학교를 거쳐 섬마을 선생으로 발령받을 때도 함께 갔었다. 사람들이 우릴 보고 “똥창이 잘 맞는다‘고들 했었다.


   둘이는 아주 친했으나 성격과 인생관은 서로 달랐다. 그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으며 신이니 어쩌니 하는 것은 다 쓰잘데없는 나부랭이들이라고 비꼬곤 했었다. 그에겐 그저 사는 것이 중요했으며 인생을 즐기는 방법도 욕망을 채우는 식으로 자주 판단하곤 했었다. 그래도 나는 그가 좋았으며 둘이서 퍼마신 술만 해도 드럼통으로 셀 정도였다.


   한번은 사범학교 때 함께 시골에 놀러간 일이 있었는데, 그때 산을 넘다가 굴 속에서 사는 어떤 영감님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가 문둥이였는지 아니면 보통 거렁뱅이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상한 감명을 받은 나는, 나도 언젠가는 그처럼 살고 싶다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게 되었다. 그러자 듣다 못한 그 친구는 “그 낭만에 초쳐먹는 소릴랑은 하덜 말거라!” 하면서 한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기이한 인생관을 가졌던 것처럼 보인다. 잘먹고 잘사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후미진 곳에서 외롭게 사는 삶을 이상하게 동경했으며 실제로 섬마을 선생이다, 광부생활이다, 수도원이다 하면서 인생을 돌고 또 돌곤 했었다.


   사랑하는 친구가 세상을 떠난 지는 벌서 10년이 넘는다. 그는 나보다 주임교사도 먼저 되었고 교감을 바라보는 문턱에서 갑자기 어이없게도 세상을 하직한 것이었다. 아내도 예뻤고 학교에서 인정도 받았으며 선생의 그 봉급으로서도 제법 살 만한 터전을 잡아 놓은 그였는데 어느 해 여름 바다낚시가 그를 순식간에 삼켜 버린 것이다. 나는 그때 신학생이었기에 늦게야 소식을 들었고, 지금도 ‘안면도’ 어딘가에 묻혀 있을 그 친구의 묘를 죄송스럽게도 여전히 모른다.


   산다는 게 무엇인지, 그 ‘낭만에 초쳐먹는 생각’이 요즘 들어 자주 떠오르곤 한다. 내가 처음 신부 되었을 때는 본당신부 꼭 6년만 하고 수도원에 다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리고 1년, 2년, 3년까지는 세었는데 어느새 그 숫자를 잊어버리고 6년이 넘어 올해가 벌서 10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그리고 나이도 이제 오십 줄에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영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작년 언젠가 모 수도원을 찾아갔을때에, 주교님의 허락만 계시면 기꺼이 받아 주겠다는 대답을 얻고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꿈을 생생하게 다시 실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지금도 나를 흥분시키곤 한다. 그러나 그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를 어떻게 대주교님께 말씀드리느냐 하는 대목에서는 앞이 콱 막혀 버리고 만다.


   “그 혀 꼬부라진 소리 작작 하거라!”

   죽은 그 친구가 내게 자주 퍼붓던 말이다. 손가락 하나를 흔들면서 ‘보이냐?“ 라고 빈정대던 모습도 떠오른다.


  “예수님, 저 술 안 마셨습니다, 정말 술 취한 말이 아닙니다!”



           -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중에서 / 강길웅 요한 신부(소록도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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