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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찬미의 사람들 ----- 2006.7.16 연중 제15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16 조회수569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6.7.16 연중 제15주일                                              

아모7,12-15 에페1,3-14 마르6,7-13

                                                          

 

 

 

 

찬미의 사람들

 

하느님의 백성들은 우선적으로 ‘찬미의 사람들’입니다.
하느님 찬미의 기쁨으로, 맛으로 사는 여기 수도자들입니다.


사실 진정한 기쁨은 하느님 찬미에서 옵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모습도

하느님 찬미하는 모습일 겁니다.


주일 아침마다 형제들과 함께 바치는 찬미 노래가

늘 심신을 새롭게 충전시키는 새로운 감동입니다.


“비와 이슬아, 주님을 찬미하라. 모든 바람아 주님을 찬미하라.
  빛과 어두움아 주님을 찬미하라, 번개와 구름아 주님을 찬미하라.
  하늘의 새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짐승과 가축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사람의 아들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이스라엘아 주님을 찬미하라.
  당신의 이름만이 홀로 높으시도다. 하늘 땅 아득 높이 찬란하신 그 영광!”


하느님 찬미에서 제외되는 피조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 피조물 모두가 함께

하느님 찬미하면서 성화되어 창조 본연의 아름다움을 되찾게 됩니다.


“내 슬픔이여, 주님을 찬미하라.
  내 아픔이여, 주님을 찬미하라.
  내 고통이여, 주님을 찬미하라.”


심지어 우리의 이런 부정적 어둔 측면들 모두를 하느님 찬미에 초대할 때,

슬픔은 기쁨으로, 아픔은 치유로, 고통은 즐거움으로 변모됩니다.

애당초 개인 신앙은 없습니다.
교회 공동체에 뿌리내린 개개인의 신앙인겁니다.


우리가 읽는 성경은 개인 수양 서적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책입니다.
시편 역시 이스라엘 백성에 이어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공동기도서였습니다.


하여 교회 공동체에 속하지 않고는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기는 힘듭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도

우선적으로 열두 제자를 모아 공동체를 형성하지 않습니까?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보내셨다고 복음은 기술하지만,

분명히 파견에 앞서 제자 교육이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에 훈련병 시절 거치지 않고

직접 전투 현장에 투입하는 군대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 예수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유대인들의 기도 전통에 따라 매일 공동 찬미기도를 바쳤을 것입니다.


하느님 중심으로 일치시키는데

하느님 찬미기도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진정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실 때

저절로 따르는 순종이요 무소유의 삶입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고 제자들이 그러했습니다.
하느님의 영에 충만한 ‘찬미의 사람’ 예수님,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제자들에게 주시며 둘씩 짝지어 파견하십니다.


하느님으로 무장하여 파견하는 제자들입니다.
공동으로 바치는 찬미기도, 하느님으로 무장하는 기도시간입니다.


하느님으로 무장했는데 무슨 소유물이 필요하겠습니까?
주님은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하셨다.”하십니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명령 같습니다.
온전히 무소유, 무집착의 정신으로,

‘하느님의 바람’처럼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래야 하느님의 능력이 발휘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며,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를 고쳐주었다 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회개에 이은 구마 이적과 치유 이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돌아오는 게 회개요,

하느님께 돌아올 때 자연스레 마귀는 쫓겨나고 병은 치유됩니다.

 

하느님을 멀리 떠나 살기에

그리도 삶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우며, 심신의 병들도 많은 겁니다.

 

끊임없는 회개를 통해 하느님 찬미의 삶이 자리 잡게 될 때,

비로소 무소유의 정신으로 아주 단순 소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소유의 종이 아닌,

소유의 주인 되어 사는 자유인의 삶,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가능합니다.

 

끊임없이 바치는 하느님 찬미기도가,

이 거룩한 미사가 하느님 중심의 삶을 강화해 줍니다.


오늘 2독서 에페소서의 내용도

그리스도 안에서 들어난 하느님의 위업에 대한 찬양이 아닙니까?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축복하셨으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고,

하느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으며,

죄를 용서하시고 속량하셨고,

신비를 계시하셨으며,

성령의 날인을 받아 희망의 사람들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미사를 통해 체험하는 축복들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미사경문 중

감사기도 3양식의 마지막 기도문이 생각납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에 온갖 좋은 것을 다 주시나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온갖 좋은 것을 다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최고의 찬미 감사기도가 미사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모두 ‘찬미의 사람들’입니다.
각자 제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 찬미의 삶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라고 우리를 불러주신 주님이십니다.


끊임없는 하느님 찬미가 우리의 성소를 굳건히 하고,

우리를 긍정적이자 낙관적이 되게 합니다.

우리의 운명을 바꾸고,

또 용감히 운명을 사랑하고 받아들일 힘을 줍니다.


1독서의 아모스 예언자,

주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해 주님께 충성하지 않습니까?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 무화과나무를 가꾸는 보잘 것 없는 농부 아모스였지만,

눈 밝으신,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느님은

‘찬미의 사람’ 아모스를 놓질 리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아모스의 투박한 고백이,

주어진 운명을,

하느님의 뜻을 기꺼이 받아드리는 아모스의 모습이 참 매력적입니다.


불평불만하기로 하면 끝이 없고 삶에 하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만이

우리의 삶을 긍정적 낙관적으로 변모시켜 주며

이 어두운 시대에 희망의 지평을 열어줍니다.


이 거룩한 미사 은총이

우리를 ‘찬미의 사람들’로 만들어주고,

주님은 다시 우리를 ‘찬미의 사람들’로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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