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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도 따뜻한 방에서 한번 자보고 싶다."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16 조회수729 추천수9 반대(0) 신고
                          

  

              "나도 따뜻한 방에서 한번 자보고 싶다."


    "신부님! 사제관에 가서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그래요. 갑시다. 아니 사무실에서 얘기하는 것이 좋겠네요."


 가끔 긴요한 얘기로 나를 찾아와 조용히 면담하기를 원하는 분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손님을 모시고 사제관 앞까지 갔다가 들어가지 않고 되돌아 사무실에서 얘기를 나눈다. 궁색한 내 생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다.


 내 사제관은 컨테이너 박스다. 만 3년째 생활하고 있다. 4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지만, 책상도 침대도 들여놓아 불편함이 없다.


 올 여름 전까지만 해도 누구나 서슴없이 사제관에 들어와 정담을 나누고 쉬고 가기도 했다. 하지만 장마 때부터 신자들 출입을 잠시 통제하고 있다. 비가 오면 빗물이 여기저기서 새기 때문에 낭패를 본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컨테이너가 3년이 된데다 공사 현장 상황마다 이쪽저쪽으로 옮기다 보니 컨테이너에 틈새가 생긴 모양이다.


 며칠 전 태풍 '송다'가 많은 비를 몰고 왔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깜짝 놀랐다. 내가 덮었던 이불하며 개어놓은 겨울 이불, 그리고 일부 책까지도 비에 젖어 있는 것이 아닌가. 바닥에 흥건히 고인 빗물을 신문지와 마른 걸레로 닦아내고, 선풍기로 건조를 시켰는데도 충분하지 않았다.


 사제관 수해 복구(?) 작업이 막 마무리될 때 새로 부임한 공소 선교사가 찾아왔다. 반가워 얼른 사제관으로 모시고 와 차를 마시며 성당과 공소 현황에 대해 30여분 동안 얘기를 나눴다. 얘기를 끝내고 일어서는데 우리 둘 다 장판에 배어있던 빗물에 바지 엉덩이 부분이 젖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아니! 선교사님, 볼일이 급하셨으면 말씀을 하시지 바지에다 이렇게 실례를 하시면 어떻게 해요?"하고 농담을 했더니 "신부님도 마찬가지 입니다"라고 해 한참을 웃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한 신자가 두꺼운 스티로폼을 가져와 바닥에 깔아 주었다. 빗물이 스며들지 않고 너무 좋았다. 이 스티로폼으로 컨테이너 사제관은 다시 부족함이 없는 공간으로 변했다.


 가난은 궁색한 것이 아니다. 물질적 여유보다 마음의 여유가 더 많으면 어디서든 만족하고 행복을 느낀다.


 오늘 저녁 그렇게 더웠던 여름도 지나고 쌀쌀한 바람이 내 피부에 다가온다. 스티로폼 위에 이불을 깔면서 문득 자그마한 소원을 빌어본다.


 "나도 따뜻한 방에서 한번 자보고 싶다."


 그러나 이 소원이 집도 없는 주님 앞에서는, 그리고 더 가난한 이들 앞에서는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 정경수 신부(광주대교구 별교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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