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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좋은 땅'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27 조회수616 추천수4 반대(0) 신고

<좋은 땅>(마태 13,18-23)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 들어라.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씨가 길에 뿌려진 이가 바로 그러하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우리 나라에 많은 크리스챤들이 있는데 왜 사회는 점 점 더 악해지고 있을까? 카톨릭 신자들만도 2백만명이 넘고, 개신교 신자까지 합하면 아마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의 수효는 우리 나라의 3분의 1은 될 것이다. 그렇게 많은 종교인들이 있는데 우리 사회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영성적으로 나아진 것이 없고 오히려 더 부정과 부패, 살인과 폭력, 음란과 사치, 물질적인 탐욕과 이기주의 등이 그 도를 더해 가고 있다.

 

오히려 옛날의 따뜻한 마음과 친절 그리고 양심적인 생활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있고 삭막함과 서로간의 불신, 이혼과 마약 등이 우리 사회를 물들여가고 있다. 왜 그럴까? 그토록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주일이면 미사 참례하고, 예배를 보고, 아침 저녁 기도를 하고, 봉사를 하고, 성직자, 목사, 수도자들이 그렇게도 많은데 왜 우리 사회는 복음적이지가 못할까?


내 개인적인 영성생활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할 때가 있다.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고 또 활동도 많이 했는데 왜 나의 영적인 수준은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할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발전한 것이 없고 오히려 내가 처음 영세를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을 때보다도 더 믿음이 약해졌고 기쁨도 없다. 왜 그럴까? 왜 나에게는 신앙생활을 하는 기쁨이 없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도 없을까?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보고서도 같은 생각을 할 수가 있다.

 

 왜 저 사람은 그렇게 열심히 기도생활을 했는데도 조금도 변하지 않을까?

왜 저 사람은 매일 똑같을까? 아침저녁 기도를 하고 매일 미사 참례를 하고 레지오 활동도 하고, 봉사하러도 많이 다니는데 왜 저 사람은 그렇게 차갑게 사람을 대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도 더 물질에 대한 욕심이 많고, 자기 것만 알고 나누지를 못할까? 저 사람은 성당에서 반장 구역장, 레지오 단장이다, 회장이다 모든 감투는 다 가지고 있으면서 왜 그렇게 인색하게 사는가? 사랑이 없을까?  아무튼 우리는 이런 저런 질문을 많이 하게 되고 의문을 갖을 때가 있다.

 

오늘 복음은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는데 어떤 것은 길에, 어떤 것은 돌밭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고, 어떤 씨는 좋은 땅에 뿌려졌다. 그런데 길, 돌밭,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였고 좋은 땅에 뿌려진 씨만 열매를 맺었다.  왜 그럴까? 열매를 맺지 못하는 씨와 열매를 맺는 씨의 차이는 무엇일까?

 

씨는 같은 씨이다. 즉 길, 돌밭,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나,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다 같은 씨이다? 그러니까 열매를 맺고 못 맺고 하는 것은 씨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씨가 떨어진 장소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아무리 좋은 씨이라도 즉 열매를 낼 수 있는 씨이라도 그 씨가 뿌려진 장소가 길, 돌밭, 가시덤불 속이라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좋은 땅에 떨어진 씨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 그 씨란 무엇인가? 그 씨는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이요 길, 돌밭, 가시덤불 속, 좋은 땅이라고 표현된 장소는 바로 우리 마음 즉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듣는 이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으면서도 영적으로 성숙되지 못하고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가 길,돌밭, 가시덤불 속과 같은 자세로 들었기 때문이고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었던 사람은 좋은 땅처럼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듣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오랜 신앙생활을 했다고 하더라도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 자세가 길, 돌밭, 가시덤불 속과 같을 때에는 영적으로 성숙할 수 없다. 영적으로 성숙시켜 주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나 지성, 활동이나 시간이 아니라 우리 안에 뿌려진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우리가 오랜 동안 신앙생활을 했어도 하늘 나라에 고나한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뿌리가 없으면,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버리면 결코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오직 좋은 땅 즉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읽고 묵상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이 바로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며 지름길이다. 우리의 영적 성숙은 결코 활동에, 아니면 막연한 신심에. 미사 참례나 겨우 왔다 갔다는 하는 신앙생활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도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이다. 깨달아야 하늘 나라에 대해 눈이 뜨인다. 깨달아야 하늘 나라의 소리가 들린다. 깨달아야 죽었던 내 영혼이 다시 부활한다. 깨달아야 병들었던 내 영혼이 치유 된다. 깨달음이 있어야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된다. 깨달아야 영적인 감각이 다시 살아나고 깨어난다. 깨달음이 있어야 우리가 매일 지고 가야할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갈 수 있고 웃으면서 봉사할 수 있다.

 

깨달아야 이 세상의 것에 얽메이지 않고 어떤 사건이나 문제 앞에서 초조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초연할 수 있다. 깨달음이 있어야 신앙생활의 기쁨이 있고 가슴 벅찬 충만함이 밖으로 베어 나온다. 깨달음이 있어야  옳고 그름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고 올바르게 도와 줄 수 있다.

 

깨달음이 있어야 입에서 하느님의 소리가 나오고 하느님의 글이 나오고 하느님의 말이 나온다. 깨달음이 있어야 무디어진 나의 마음이 깨어지고 새 살이 돋아난다. 깨달음이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고 그래야 사람들은 내 안에 맺은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다. 깨달음이 없는데 어떻게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을 전할 수 있으며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우리의 가장 취약점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듣기는 듣지만 깨달음이 없이 듣는다는 것이다. 듣기는 듣지만 그 말씀을 깨달아야 한다는 의식 없이 듣는다. 아니 깨달으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봉사한다고 나서고, 기도한다고 앉아있고, 바쁘다고 여기 저기 다닌다.

 

내가 시골에서 형제들과 함께 지내고 있을 때 한 형제가 아침 식사 때에 와서 "신부님, 밭이 없어졌어요."라고 말하였다. "무슨 밭이 없어져?"라고 물으니까 "봄에 우리가 심어놓은 고구마 밭이 없어졌어요."라는 것이다. "그럼 그 밭이 어디갔느냐?" 라고 물으니 "우리가 심어놓은 고구마는 하나도 자라지 않고 풀만 무성하게 자랐어요."하는 것이다.  고구마를 심어 놓고 공부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한번도 돌아보지도 않았으니 고구마 싹이 나오기도 전에 풀이 자라서 고구마 밭을 덮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밭이 없어질 수 밖에 없었다.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의 씨가 지금 내 안에서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유광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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