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그 여름 바닷가 강론 . . . . . . [정채봉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31 조회수801 추천수10 반대(0) 신고

 

 

 

 

그해 여름 휴가를

우리집은 서해안에 있는 섬, 안면도로 갔다.

우리가 다니는 성당의 여름 수련회에 묻어서 떠난 길이었다.

 

사실 여름이 오면, 7월의 무턱부터서

유일하게 기다려지는 게 있다면 이 휴가일 것이다.

 

개미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에서 단 며칠이라도 놓여나

산과 바다 속에 몸을 담가 볼 기쁨은 생각만 해도...

손톱, 발톱에까지 푸른 물이 오르는 듯한 느낌이지 않은가.

 

그러나 막상 떠나 보면 사서 고생한다는 말만 실감하고 돌아오는

휴가(休暇) 아닌 노가(勞暇).

 

이 노가를 그야말로 놀자의 유흥으로 삼는 사람들로 하여

어린 아이들한테 어른들이 안 보여야 할 추태를 보였을때 오는 당혹감,

이런 곤혹을 피해 보고자 해서 성당의 수련회에 끼어 간 것이다.

 

우리 가족의 그해 휴가 해프닝은 해수욕장에서 일어났다.

온 가족이 함께 하기로는 첫 해수욕인지라 집사람도 좋아하고

아이들도 신나 했다.

 

신부님께서 그렇게 한꺼번에 알몸을 오래 노출시키면

화상을 입는다고 주의를 주었지만

우리는 화장품 회사에서 선전한 오일만 믿었다.

 

강한 태양열로부터 피부를 보호해 준다는 그것을

쓱쓱 문질러 바르고는 마냥 파도 속으로 달려 들어갔고,

마냥 햇볕과 모래에 버물려서 놀았다.

 

등이 따끔거리기 시작한 것은 저녁 무렵부터였다.

하늘의 노을은 졌으나..

우리 식구 등마다의 노을은 꺼질 줄을 몰랐다.

 

잠자리에 누웠으나 등이 따끔거려서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어른들의 고통이 이러하니 아이들은 일러서 무엇하랴!

 

이렇게 신음의 밤이 가고 날이 밝자

세수대야를 나무토막으로 울리는 소리가 땡땡 났다.

미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기지개를 켜며 텐트를 나서다 천막 한쪽에서 제의를 입고 계시던

신부님과 눈이 마주쳤다.

신부님이 '혼났지요?' 하는 뜻의 미소를 띄웠다.

나는 그저 뒷 머리나 만질 수밖에.

 

간이 제대 앞으로 나오신 신부님이 조용히 말했다.

"꽃도 좀 있으면 좋잖아요."

수녀님이 부근에 무더기로 피어 있는 달맞이꽃을 꺾어와서

사이다 병에 꽂아 제대위에 올렸다.

 

우리들은 이슬이 깨기 시작하는 풀밭에 서서 입당 성가를 불렀다.

 

"주 하느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

 

신부님은 뜻밖에도 바닷가에 왔으니

바닷가의 강론을 듣는 게 좋겠다며 침묵하고 앉았다.

 

......,

......,

 

 

파도 소리가 쏴아 ~ ~ ~ ~  쏴아 ~ ~ ~ ~  들려왔다.

물새 소리가 꾸륵꾸륵 들려왔다.

 

근처 솔가지를 흔들며 바람이 지나간다.

먼데......

수평선에 배 한 척이 아득히 떠나가고 있었다.

 

나는 한 소녀가 모래 능선을 기어오르며

피어난 연분홍 메꽃에게 살짝 윙크하는 것을 보았다.

 

지금도 잠이 오지 않는 여름 한밤중에는

 

그날

그 어떤 웅변보다도 거룩한 침묵 속의 바닷가 강론이 떠오르곤 한다.

 

 

 

 

 

정채봉님의 '그대 뒷모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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