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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통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 (25)/어떻게 고통을 받아들일 것인가?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01 조회수734 추천수7 반대(0) 신고

고통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 (25)

 

이제 2부로 넘어갑니다. 제 강의는 항상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가 들어가는데요. 이제 2부가 "어떻게 고통을 해결할 것인가?" 입니다. "어떻게 고통을 해결할 것인가?" 고통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강의는 끝났습니다.

 

슬프게도 고통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은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 의 문제이지 해결하느냐? 해결하지 마느냐? 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언급한대로 고통은 인간 실존이고 인간 실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통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것이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입니다. 그래서 2부의 강의는 "어떻게 고통을 받아들일 것인가?" 이것이 제 강의입니다. 

 

부처님께서 한번은 길을 가시는데 외아들을 잃은 과부가 슬피 눈물을 흘리고 절망의 마음으로 부처님께 와서 제발 당신의 아들을 살려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랬을 때 부처님께서 "그래, 그래, 내가 너의 아들을 살려주마 살려주마, 하지만 네가 한가지 해야될 일이 있다. 해바라기 씨앗을 하나 가져와 다오. 단 한번도 죽음이 없는 집에서 해바라기 씨앗을 가져와 다오.

 

아들을 살리겠다는그 열망속에서 죽음의 집이 없는 곳이 없는 것을 그분은 헤아리지 않고, 하루 종일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지요. 그러다가 저녁나절 모든 집이 죽음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부처님께 돌아와서 머리를 깍고 부처님의 제자가 됩니다.

 

이게 불교가 전해주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이시라면 똑같은 경우에 다르겠지요. 나인의 과부가 눈물 흘릴 때, 다시 살려주십니다. 그 외아들은 또 다시 그 과부보다 먼저 죽었을지 우리는 모릅니다. 언젠가는 또 죽는데도 우리의 눈물을 보고 못견디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아무튼 고통앞에서 부처님과 예수님의 해결방법은 좀 달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분이 다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고통은 삶의 실존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받아들일 때, 그 고통 한복판에서 쉬게 된다는 것이지요. 마치 그 외아들을 잃은 과부가 저녁나절에 평화를 되찾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던 것처럼...

 

그래서 첫 번째로 고통을 가슴에 품고 감내하면서 살자는 얘기를 합니다.

 

 

                           <송봉모 신부님의 영성강좌 테잎>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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