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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람에 산다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03 조회수700 추천수7 반대(0) 신고

  

 

 

                         보람에 산다



   “보람 없는 인생은 기름 없는 램프와 같다”는 말이 있다. 이는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보람’이 얼마나 중대한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가 한 일이나 한 행동에 보람을 느낄 때, 삶에 큰 활력이 생길 뿐만 아니라, 기쁨과 행복은 물론 가끔은 생(生)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되기 도 한다.


   아브라함 링컨은 “나는‘지금 자연스럽게 죽어간다면 얼마나 즐거울까?’라는 생각까지도 하지만, 이렇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떤 삶의 보람이 느껴질 때까지 살아있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삶의 보람을 맛보지 못한다면, 죽은 목숨보다 못한 삶을 산다는 말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게 되는 순간은 ‘내가 할 수 없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갖은 노력 끝에 해냈을 때’라고 한다. 노력 없는 보람은 있을 수 없다. 보람이란 시련과 고통을 겪으면서 끝내 땀흘려 일구어 냈을 때 얻어지는 하나의 크나큰 대가이며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이기 때문 이다.


   나도 사제 초년생 때 정말 보람을 느낀 일이 있다. 겨우 보좌신부 생활 2개월 한 햇병아리 신부로서, 주임으로 임명을 받은 진도본당의 한 공소에서의 일이다.


   어느 날 읍내 본당에서 육로로 약 25㎞ 정도를 간 후, 뱃길로 약 40㎞를 더 가야 하는 거차도라는 작은 섬에 사는 한 신자가 사람을 보내어 병자성사를 청해왔다. 성사를 청한 이는 암으로 투병 중인 베드로라는 60대 중반의 교우였다. 그는 열심하고 모범적인 신자였지만 외딴 섬에 사는지라 오랫동안 성사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이튿날 새벽같이 서둘러 거차도로 향하는 배를 탔다. 조그만 배는 40여 명의 승객을 태우자 목적지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그런데 이날따라 날씨는 잔뜩 찌푸려 점점 어두워지더니 마침내 바람이 불면서 하늘에는 먹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이내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세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바다는 물안개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배는 점점 세게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잔뜩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 뱃멀미 때문에 혼이 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김대건 신부님이 작은 배로 황해를 건너던 일을 상상하면서 뱃멀미를 참아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차라리 배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고통은 점점 심해졌다. 바다 위에서의 3시간의 고통은 참으로 그때까지 당한 모든 고통을 한꺼번에 당하는 것보다 더 큰 것 같았다.


   겨우겨우 장시간의 악전고투 끝에 간신히 섬에 도착했다. 파김치가 된 나는 하늘이 노랗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몇 안되는 신자였지만, 나를 부축하며 반갑게 맞아주는 기쁨에 새로운 힘을 얻었다. 그리고 처음 만난 베드로 형제의 믿음은 나에게 더욱 감동적이어서,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을 안겨 주었다.


   그는 내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신부님, 죄송하고 고생스럽지만 꼭 마지막 병자성사만큼은 받아야 하겠기에 이렇게 멀리까지 오시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지금 그저 오늘날까지 저에게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그 크신 사랑에 감사 드릴 뿐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이렇게 말을 이었다. “이제 하느님께서 저를 오라고 부르시니 기쁜 마음으로 순명 하겠습니다. 영혼의 준비 없이 10년이고 20년이고 더 살면 무엇하겠습니까? 신부님을 뵈오니 제 마음이 이렇게 편하고 기쁠 수가 없습니다.”


  그는 겸손하고 경건한 태도로 고해성사를 보았다. 그가 성체를 받아 모실 때의 모습은 마치 천사와 같았다. 그의 신앙생활의 모범은 신자가 아닌 주위 사람들에게도 큰 감화를 준 듯하다. 주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면서, 밥을 굶으면 굶었지 기도는 절대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외딴 섬에 사제 방문도 자주 없고 성사도 제대로 보지 못했을 텐데, 저런 신심을 가진 분이 살고 계시다니 참으로 하느님의 신비는 놀라울 뿐

었다. 나는 뿌듯함과 보람 때문인지 멀미의 고통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는 성체를 영하고는 잠시 기쁨에 잠겨있는 듯하더니,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면서 깡마른 손으로 다시 내 손을 꼭 쥐는 것이었다.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숨을 크게 내쉬더니 편안한 자세로 마치 잠들 듯이 숨을 거두었다.


   신자든 아니든 섬에 사는 사람 대부분이 미사에 참석하였다. ‘선교에 있어서 착한 표양과 좋은 모범은 위대한 기적보다 더 큰 영향을 준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그는 나의 사목생활에 있어도 모범과 표양이 얼마나 중대한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생각해보아도, 뱃멀미 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정말 얼마나 보람되고 마음 뿌듯하였는지 모른다. 그때 사제로서 막 출발한 나에게는 더욱 감동적이었고 큰 교훈을 주는 일이었다. 사제의 길이 비록 고독하고 힘든 십자가의 길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뿌듯함과 보람 때문에 헤쳐나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근대 세균학을 개척한 프랑스의 위대한 과학자 파스퇴르는 소년시절부터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은 ‘보람된 일을 하는 것’이라고 늘 생각했다. 그는 꾸준한 연구와 부단한 노력 끝에 성공한 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보람된 일은 그것 자체가 기쁨이다. 나는 나의 노력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어떤 의미를 지니리라는 희망을 품을 때, 비로소 인생의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쁨과 보람은 내가 받을 만해서도 아니요 당연히 받을 자격이 있어서 주어지는 것 또한 아니리라. 다만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거저 주어지는 은총의 선물일 것이다.


   따라서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보람과 기쁨은 오로지 주님께 되돌려 영광되도록 언제나 이웃과 나누고, 주심에 깊이 감사해야 하겠다.



  - 최형락·바오로 신부 / 광주대교구 전 운남동성당 주임(현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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