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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스승님 러끌레르끄 . . . . . [장 익 주교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03 조회수695 추천수8 반대(0) 신고

 

 

 

 

 

 

우리 동양에서 일컫는 오복의 하나로 이(치아) 성한 것도 친다는데

스승 잘 모신 것은 어디에 드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래저래 꽤 여러해 학창 생활을 하는 동안 절로 우러르고

마음으로 모시게 된 몇 분 스승 어른 중에서도

'러끌레르끄'신부님은 유다른 정을 심어 주셨습니다.

 

중국말로는 새파란 처녀 선생님도 교사면 일단 노사(老師)라고

부른다는 것을 들었을 때,

러끌레르끄 신부님이야 말로 어른이자 스승이라는 생각이 곧 떠올랐습니다.

 

생각할수록 은혜로운 만남으로 하늘이 베풀어 주신 분들 중에

한분이었다고 마음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육척의 묵직한 거구에 백발 상고 머리를 하고 당당한 풍채로

기둥처럼 우뚝 교단에 서신 홍안의 모습에는

마치 장자를 연상케하는 호협한 기상이 보였습니다.

 

듣기로는,

부유한 명문가의 자제로 젊어서는 다분히 반 종교적인 자유주의 배경의

법조인으로 매우 일찍 두각을 나타냈다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갓 시작한 변호사직을 버리고 회두하여

늦게 신학교에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제 1차 세계대전 후,

정신적으로도 피폐한 유럽이 악몽에서 깨어날 무렵,

크리스찬 철학 부흥의 일환으로 당시의 선각자 메르씨에(후일 추기경)교수가

벨지움 루뱅 대학교 내에 철학 연구소를 개설 후,

청년교수 러끌레르끄를 초빙하여 법철학, 윤리학, 사회철학 계통의

강의를 맡도록 하셨습니다.

 

그런지 몇 해가 안 된 어느 날,

조용한 뜰안에 자리한 연구소 이층 창문으로 부터 느닷없이

책, 신발, 옷가지, 기타 잡동사니가 무슨 난리라도 난듯

요란하게 마당으로 마구 쏟아져 내려오더랍니다.

 

조교가 깜짝 놀라 황급히 올라가 보니

러끌레르끄 교수가 웃도리를 걷어붙인 채

마구 물건을 마당으로 내던지고 계시기에 너무 놀라 까닭을 물은 즉,

 

"훨훨 다 털고 허허롭게 살려고 마음은 먹었는데,

 살다보니 주체할 수도 없이 물건이 방으로 하나 가득 쌓여

 몽땅 내버리는 중일세.

 이것 저것 가리다 보면 도로 뭣이 많아져서...

 층계를 씩씩거리며 자꾸 오르내리기도 뭣하고 해서

 우선 이렇게 던져 놓고,

 이따가 내려가서 치우기는 다 치울테니 아무걱정 말게나." 하며

호방하게 웃으시더랍니다.

 

얼마후,

자연법과 실정법에 대한 강의를 하시다가 갑자기,

 

"학생 여러분은 식사할 때 모두 국부터 들지요?"

 

하며 자문자답으로 물으시자 너무나 엉뚱하고 뻔한 말씀이라 멍하니 있는데,

 

"왜 국을 꼭 먼저 먹어야 하나요?"

 

하고 이번에는 답을 잘 모를 물음을 다그쳐 물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남학생들에게

 

"여러분, 그냥도 숨이 막히는 세상에 넥타이는 누가 시켰다고

 졸라 매고들 다녀요.

 양복도 모조리 똑같은 식으로 지은 것을 입고..

 

 중국사람들은 밥먼저 먹고 나서 국을 먹는답디다.

 우리 삶에서 소위 당연하다는 것들

 의문에 붙여가며 살아 갑시다."

 

하시며 크게 한숨을 쉬셨습니다.

 

은퇴 연령이 넘도록 교편을 잡으셨던 선생님이 막상 물러나시자

굵직하고 든든한 기둥이 하나 빠진 것만 같았습니다.

모두들 서운해하며 노경에 여생을 어떻게 혼자 보내실까 하고 은근히

마음들이 쓰였습니다.

 

얼마 있다가 선생님다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루뱅에서 기차로 한 시간 남짓 동쪽으로 가면

리에즈라는 공업도시가 있는데,  거기서 좀 벗어난 벌판에 있는,

이제는 농사에도 안 쓰이는 폐가  한채를 구해서 고쳐 쓰기로

하셨다는 얘기였습니다.

 

농민마저 다 떠난 쓸쓸한 시골 벌판에서 어쩌시려나 했는데..

좀 더 있으니까 그런게 아니라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계속 찾아가

며칠씩 묵고 오기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집은 아무 모양도 없는 낡은 농가였습니다.

그래도 안밖 단장을 새로하여 그런 대로 명랑해 보였습니다.

과연 어디를 가시나 명랑하고 건실하고 긍정적인 환경을

이루어 놓는 분이셨습니다.

 

출입문 설주 위에는 [ 흰 차 돌 ][ Le Caillou  Blanc ]라는 팻말이,

이를테면 우리네 당호 격으로 조촐하게 달려 있었습니다.

현관에 들어서면 몇 줄의 알림이 맞은 편에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하나.   이 집에서는 죄 이외에는 무엇이든

          허용됩니다.

 

   둘.   집 주인은 이층 복도 끝방에 계신데,

          인사 여쭙는 것이 예의일 것입니다.

 

   셋.   잠자리는 서넛 있는데,

          누가 이미 들어있지 않은 곳으로 마음대로

          택해 쓰십시오.

          방이 다 차있으면 벽장에서 침구를 내다가

          거실 또는 다른 곳에서 주무셔도 좋습니다.

 

   넷.   시장하시면 부엌에 있는 음식을 마음대로

          드십시오.

 

다섯.   집을 떠나실 때에는 다음 오실 분들을 위해

          정리을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여섯.   이 집에는 또 아무 소용없는 늙은이도

          하나 사는데,  만나셔도 좋고

          그만 두셔도 좋습니다.

 

 

                     -  편히 지내다 가십시오 -

 

 

 

집 주인은 소성당에 모신 감실이었고

늙은이는 선생님이시었습니다.

 

집 건사고, 빨래고, 음식이고,,,

아는 이, 모르는 이가 소리없이 앞을 다투어 가며 보살펴 놓아

늘 여유작작하였습니다.

소심하기로 이름난 그 나라(벨지움)에서는 실로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흰 차 돌]을 자유로이 찾아드는 이들 중에는

젊은이도 많고

낯모를 사람도 많고

괴로워하는 이도 많고

남 녀 친지와 제자도 많고

교회와는 멀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습니다.

 

       

         러끌레르끄 지음 [게으름의 찬양]중에서  - 장 익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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