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04 조회수741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늘의 복음 말씀은 네 복음서에 모두 등장합니다. 그만큼 비중이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니 네 복음서 저자들이 왜 이구절을 구태어 적었는지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께 누가 될 수도 있는데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느끼셨던 벽을 솔직하게 적어 놓았습니다.

 

  Mr 6,5-6 ; 그분은 거기서 아무런 기적도 행하실 수 없었고...

                 그분은 그들의 불신에 대해서 놀라워하셨다.

  Mt 13,58 ;  그리하여 거기서는 그들의 불신 때문에 많은 기적을

                  행하시지 않았다.

  Lu 4,28-30 ; 회당에 있던 이들은 모두 이 말씀을 듣고 분노로

                    가득 찼다...그분을 산벼랑에까지 데려가서 밀쳐

                    떨어뜨리려 하였다.

                    그러나 그분은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가셨다.

  Jh 10,39 ;  그들은 다시 그분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분은 그들의 손을 벗어나 떠나가셨다.

 

  예수님의 실패를 담담히 적는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을 받아들일 때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말라는 교훈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에게 걸려넘어졌다."  Mr, Mt

 

고향 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수근대었습니다.

  "이 사람이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글을 알고 있지?"  Jh

  "어디서 이런 지혜와 기적들이 내렸을까?"  Mt

  "우리는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알고 있지 않은가?" Jh

  "어떻게 그가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 고 말하는가?" Jh

 

  그들은 너무나도 익숙했던 사람이 갑자기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가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그분이 말씀하고 보여주시는 여러가지 표징들을 받아들이려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분들은 '고정관념'을 들어 이 구절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옳은 방법입니다. 고정관념이 새로운 눈이 열리는 것을 막는다는 것은 정말 바른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흔히 밖에서 무지개를 찾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찾아 헤메입니다. 미망에 빠져 헛 것에 공을 들이고 맙니다. 본래부터 자신이 갖고 있는 보물을 소홀히 합니다. 남보다 뛰어나고 특별한 재주를 가져야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합니다.

 

  " 찻 잔을 돌리는데 禪味가 있다."

  "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 상심시도(常心是道)"

  " 처처분명시도량(處處分明是道場)"

 

  굳이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무슨 말인줄 아시리라 봅니다. 평상 생활속에서 도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며, 평범속에 진리가 숨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 안에서 진리를 찾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일상 생활을 도를 닦듯 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를 둘러 쌓고있는 모든 자연의 풍광이며 피조물이 모두 우리의 벗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기적이나 비범한 것에만 눈 길을 돌립니다.

 

  어떤 결과에만 집착해서, 한 발 한 발 내딛는 가운데 주어지는 그분의 말씀을 소홀히 합니다.  참 인간으로 사셨던 그분이 보여 주신 행적과 말씀을 우리 안에서 재현해야 한다는 것이겠죠. 인간만 그 깨달음을 더디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에서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아들들이 영광을 받도록 기다린다." 고 말했나 봅니다. 피조물과 달리 마지막으로 인간들만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어서 깨닫고 하느님 나라를 이루자는 뜻이겠죠.

 

  루가 복음 저자는 4, 30 절에 " 그들의 한 가운데" (dia mesou)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우리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군중들을 정면 돌파하는 모습이며, 그들 내면의 양심을 일깨워 더이상 죄짓고 손대지 못하게 만드는 모습입니다. 예수께서 인간들의 분노를 지혜롭게 다스리시는 모습은 복음서에서 여러군데 나옵니다. 요한 복음서 '간음녀 이야기'가 대표적이죠.

 

  그분은 항상 우리에게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를 권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내면의 목소리를 단순히 양심의 소리에서 성령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이길 원하셨습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양심을 성령의 목소리로 바뀌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영을 우리 내면에 직접 모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했던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걸려 넘어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분의 말씀을 옳게 새겨들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양자가 되어 예수님과 한 형제, 같은 상속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럼으로 형제들을 찾아 고향에가셨던 그분이 다시는 놀라지 않으시게 해드려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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