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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의 변모 축일. 서공석 신부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07 조회수623 추천수3 반대(0) 신고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2006년 8월 6일


마르 9, 2-10.   다니 7, 9-10. 13-14


오늘 복음에 예수님은 제자 세 명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셔서 그 모습이 변하셨습니다.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베드로는 그 자리에 초막 셋을 지어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살면 좋겠다고 제안합니다. 이 제안에 대해, 마르코복음서는 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에 베드로가 엉겁결에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을 하였다고 변명합니다. 그러자 구름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라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예수님에 대해 초기 신앙인들이 믿고 있던 바를 한 폭의 그림으로 담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제자들을 비롯한 극소수의 사람들이 예수님 안에 어떤 비범함을 보고 그분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 결정적으로 알게 된 것은 그분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다음의 일이었습니다. 오늘의 복음은 그 말미에서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이 말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다음에야, 제자들이 비로소 그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였다는 사실을 반영합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였다는 오늘 복음의 이야기에는, 하느님이 나타나셨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구약성서가 사용한 표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높은 산, 구름 속에서 나는 소리, 모습이 변하는 것, 옷이 희고 빛나는 것 등이 모두 하느님이 나타나신 사실을 말하기 구약성서가 사용한 것들입니다.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생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초기 신앙공동체가 예수님에 대해 사용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모세와 엘리야를 등장시켰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은 그분의 삶을 회상하면서 그분 안에 모세와 엘리야가 믿었던 하느님의 일을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사실에 입각하여 이스라엘이 현실을 타개하도록 가르치고 실천하였습니다. 그것은 40년의 광야 생활과 같이 힘든 일이었지만,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이스라엘이 해방되는 구원을 갖다 주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스스로 자유를 찾아 노력할 때 함께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유대교의 율법과 제도에 억눌려, 노예와 같이 사는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일을 스스로 실천하는 자유를 그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초기 신앙인들은 그런 예수님 안에 모세가 가르친 하느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나타난 전설적 예언자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왕정(王政)을 시작할 때, 왕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통치하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왕의 대관식에서는 왕의 체구보다 훨씬 더 큰 곤룡포를 입혔습니다. 그것은 왕이 자신의 능력보다 훨씬 더 큰 사명을 받는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 보잘것없는 왕을 통하여 위대하신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신다는 사실도 선포하는 대관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왕이 된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해 잊어버리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받은 권한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억누르고 착취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여기에 반기를 들고 왕들을 비판한 인물입니다.


초기 신앙인들은 유대교의 율법과 제도에 대한 예수님의 비판적 자세 안에 엘리야 예언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기원전 6세기 바빌로니아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왕을 잃었고, 그 권력의 공백을 유대교의 율법과 제도가 메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시대 그 사회의 실세는 유대교의 율사와 제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사람들 위에 군림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가르치는 율법과 제도에 얽매여 자유 없이 살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회의 그런 현실을 비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제도는 사람이 자유롭게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며 사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믿으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가 6,36). “이 작은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조심하여라...이 작은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 18,10.14).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입니다. 하느님이 용서하신다는 사실도 예수님은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유대교의 경직된 율법 해석과 성전의 의례들은 많은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비록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제물봉헌에 게을러도, 하느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신다고 믿으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었고 구름 속에서 하느님의 소리가 들렸다고 말합니다. 구약성서에 구름은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휘장입니다. 이스라엘 신앙의 초기부터 구름은 하느님의 현존과 그분의 가까이 계심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가 제1독서로 들은 다니엘서(7,13)에는 메시아가 구름을 타고 옵니다. 신약성서에도 부활하신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오늘 복음이 구름을 언급하는 것은 초기 신앙인들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후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예수님을 세우고 비로소, 그분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분으로부터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휘장 위에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그분을 통해서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율법과 제도에 순종하며, 잘 지키고 잘 바쳐서 하느님을 감동시켜서 자기를 위한 혜택을 얻어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하느님의 일을 읽어내고, 그것을 실천하여 우리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오게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셨고, 유대교가 버린 이들에 대해 특별히 배려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자유롭게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게 합니다. 자기 한 사람 잘 되겠다는 자유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예수님의 모습을 띄워놓고, 그분의 자유를 보고 배워 실천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신앙인은 죽는 그날까지 그리스도 신앙인이 되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배우는 일이라, 배우고 실천하고 또 배우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과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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